[데스크칼럼] ESG 파시즘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을까

2022-07-16     최진홍 기자

1818년 헝가리에서 태어난 의사이자 과학자인 이그나즈 제멜바이스는 신출내기 시절 비엔나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며 한 가지 미심쩍인 현상을 발견했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의사들과 전통적인 산파들이 산모를 돌보는 병동이 분리된 가운데 의사들이 돌본 산모들의 사망률이 압도적으로 높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의사들이 돌보는 병동에서는 산모 1000명당 98.4명의 사망률이 나왔으나 산파들이 돌보는 병동에서는 1000명당 36.2명의 사망률만 기록했다.

당시 많은 의사들은 그 이유를 두고 "남자인 의사들이 산모를 다소 거칠게 다루기 때문"으로만 치부했다. 

제멜바이스의 생각은 달랐다. 주변인들 중 신체가 절단된 이들이 고열에 시달리다 죽는 것을 본 그는 이것이 죽어가는 산모들의 산욕열과 비슷하다고 봤다. 이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어딘가에 묻어있는 입자가 산모들의 죽음에 영향을 주는 것아 아닐까?'라는 가설을 세웠고, 특히 영안실에서 시체를 해부한 의사들이 산모를 돌볼 때 사망률이 치솟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멜바이스는 '손 씻기'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이야 수술실에 들어가는 의사가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상식이지만 당시만해도 아무런 보호장비 없이 시체를 해부한 의사들이 피 범벅이 되어 살아있는 환자들을 돌보는 것은 소위 '의사의 명예'로 여기던 시절이었다. 일종의 로망이었다. 그러나 제멜바이스는 그 상식을 깼고, 이후 그는 무수히 많은 산모들과 아이들의 목숨을 살린 인물로 역사에 남았다.

우리는 간혹 '당연히 무엇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강요당한다. 헝가리의 의사들이 피묻은 손으로 산모를 살피는 것이 당연했던 것처럼 말이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도 마찬가지다. 그 누구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ESG를 추구해야 한다는 강박이 절절하다.

문제는 '지금의 ESG가 과연 옳은 길일까?'라는 근원적 질문의 부재다. 물론 기후변화는 우리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고 환경오염을 해결해야 하는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금과옥조로 생각하는 ESG가 과연 옳은 길인지에 대한 성찰은 또 다른 문제다.

생각해보면 지금의 ESG는 허술한 것이 한 두군데가 아니다. 일단 ESG의 개념 중 S와 G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애교에 가깝다. 또 지금 ESG를 열심히 외치는 소위 선진국들의 행태도 거칠게 말하면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19세기와 20세기 초 산업혁명을 통해 잔혹한 환경파괴를 바탕으로 지금의 부를 축적한 이들이 이제 와 탄소중립을 외치며 개발도상국의 발전에 유리천장을 둘러치는 것은 그 자체가 횡포기 때문이다. 최근 유럽연합 유럽의회가 탄소배출권거래제(ETS) 대상을 확대하는 한편 해외에서 수입하는 제품에 대한 탄소배출량을 규제하는 내용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강화하는 장면이 못미더운 이유다.

더 심각한 것은 ESG, 특히 환경적 측면에서 맹목적 믿음이 유령처럼 떠도는 순간이다. 과연 종이책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친환경 행보일까? 미국의 비영리기구 그린프레스이니셔티브에 따르면 아이패드는 평균 생애주기에 287lbs(130k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만 종이책은 단지 8.851lbs(4kg)의 이산화탄소만 배출한다. 지금 내연기관차는 환경오염의 원흉으로 여겨지지만 그 이전 말(馬)이 교통수단일 당시에는 분뇨로 인한 환경오염이 더 심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ESG의 방향성은 옳다. 그러나 그 방향성이 지금 우리 주변을 횡행하는 ESG와는 괴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신중하고 입체적인 고민의 끝에서 지속가능한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ESG 파시즘에 빠져있다. 이 파시즘을 벗어나 더 의미있는 토론을 할 필요는 없을까?

산모들을 수 많은 죽음으로부터 구해낸 제멜바이스는 말년에 정신병원에 감금당해 간수들에게 맞아 죽었다. 손 씻기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가 '시체를 해부한 의사의 명예'라는 피투성이 맹목적 파시즘을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기득권을 가진 의사들은 자신들의 과실로 산모들이 죽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으리라. 결국 제멜바이스가 사망하고 10년 후 루이 파스퇴르가 세균의 존재를 발견하며 그의 명예는 회복될 수 있었다. 우리도 10년은 지나야 반성할 수 있을까.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진짜 ESG가 따로 있는 상황에서, 시체를 만진 피묻은 손으로 의사의 로망만 맹신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