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유산②] 사라지는 회색의 거리, 노량진 고시촌
줄어드는 공시생, 사라지는 컵밥 도처에 리모델링...양극화 우려 "새로운 바람" 불어올까
노량진은 한강의 남북을 연결하는 여러 나루터 중 하나였다.
오래전에는 노들나루로 불리던 곳이다. 누군가는 주변에 갈대가 많아 가을이 되면 그 일대가 노을빛으로 물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백로가 노닐던 나루였기에 노들나루라 불렀다고 한다. 누구 말이 맞을까. 잘 모르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곳은, 그러니까 노들나루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시간이 흘러 노량나루는 노량진이 됐다. 수산시장이 들어섰고, 고시촌이 생겨났다.
노량진에 고시촌이 생겨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정부의 정책 때문이다. 정부는 1970년대 종로 일대에 집중되어 있던 학원들을 분산배치시켰고, 그 중 하나인 대성학원이 노량진으로 이전하며 그 일대가 고시촌이 됐다고 한다.
노량진 고시촌은 재수학원의 메카로 한동안 군림했다. 그러나 본고사와 학력고사가 폐지되는 한편 대학수학능력시험 체제가 시작되자 빠르게 쇠락했다.
2000년대 들어 인터넷 강의가 성행하며 노량진 고시촌의 열기는 더욱 차갑게 식어갔다. 그나마 공무원 임용고시 시장이 커지며 부활의 날개짓을 시작했으나 이 역시 코로나 등을 거치며 최근 무겁게 가라앉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노량진은 꿈을 꾼다.
그 꿈 속을 묵묵히 걸어가는 노량진 고시촌의 청춘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호흡하고 있을까. 공부와 사회의 사이에 뻗어있는 이 회색의 거리에 살고있는 이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이야기는 더 나은 삶을 위해, 나를 믿고 기다려준 가족을 위해,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주린배 움켜쥐고 힘든 언덕길을 넘어 올라서던 많은 청춘들의 '달라진 이야기'다. 여러 번 사라지고 다시 생겨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끝나지 않았지만 미장셴은 영원하다. 오늘도, 사라지고 생겨난다.
컵밥과 청춘
노량진역을 나와 큰 길을 마주하고 왼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상점들이 우후죽순 붙어있는 곳을 지나 신호등을 건너면 길 건너 잡화점 사이로 그 유명한 컵밥거리가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손님이요? 말해 뭣합니까”
음식을 만들기 위해 정신없이 손을 놀리던 컵밥거리 상인 주명기(가명)씨는 별스러운 말을 한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나마 하루 중 가장 장사가 잘 되는 점심시간에 불쑥 찾아온 기자를 힐끔 본 그는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많이 줄었어요. 요즘은 정말 힘들다는 생각에 턱턱 숨이 막힙니다”
그의 말대로 팬데믹 여파로 노량진 일대 상권이 가라앉으며 컵밥거리의 매장 중 태반이 문을 닫았다.
기자가 찾아간 날도 절반 이상의 매장들이 굳게 닫힌 상태였다. 컵밥을 들고와 간단히 요기할 수 있는 쉼터도 한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문을 닫았고, 컵밥이 아닌 다른 음식을 파는 매장도 상황은 비슷해 보였다. “그나마 코로나가 끝나고 인근 회사 직장인들이 간단하게 요기하러 오니까...그걸로 또 먹고사는 거에요” 주명기 씨는 인근 신호등에서 우루루 몰려오는 직장인들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 사이로 커플로 보이는 청춘남녀 한쌍이 매장앞에 섰다. 익숙하게 4번 메뉴를 주문한 박수연(가명)씨는 군복을 입은 강민수(가명)씨가 신용카드를 내밀자 먼저 면박을 준다. “눈치 좀 챙겨” 검게 탄 얼굴의 강민수 씨는 겸연쩍은 얼굴로 신용카드를 집어넣고 현금을 꺼낸다.
“고향에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어요. 이제 제대로 공부준비를 하려고요. 남자친구는 군대갔다가 휴가를 나왔는데 달리 갈 곳이 없네요. 제가 있는 노량진 고시촌 컵밥거리를 궁금해 하길래 같이 왔어요”
컵밥이 준비되는 사이 박 씨와 대화를 나눴다.
그에 따르면 아직 사회로 나오지 않은 청춘들에게 컵밥은 단순한 끼니 이상의 의미라고 한다. 지갑이 얇아도 ‘언제든 뭔가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위안이라고.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요즘 매장이 많이 없어져서 걱정되기는 해요. 오랜만에 노량진에 왔는데 당연히 있어야 할 곳들이 없으니 마음이 좋지는 않죠. 여기를 걷기만 해도 든든했는데” 컵밥을 받아든 박수연 씨의 목소리가 텁텁하다.
노량진은 비워지는 중
컵밥거리를 지나 오른쪽으로 크게 돌았다. 고시원과 밥집, 술집들이 이리저리 뒤섞인 거미줄같은 골목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적지 않은 행인들이 오가고 있지만 묘하게 황량하다. 곳곳에 폐업, 임대 간판이 널렸기 때문일까.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곳도 수두룩하다.
“코로나 때문이야, 코로나” 인근 부동산 사무소 앞 간이의자에 앉아있던 강복구(가명)씨가 신경질적으로 손부채질을 한다. 인근 폐업과 임대 간판을 가리켰다. “고시원들도 코로나 겪으면서 많이 망했어. 요즘 괜찮아지고 있다는데 옛날 같지는 않아”
최근에는 허름한 고시원을 리모델링하거나 아예 원룸으로 영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실제로 거리 곳곳에는 건물 내부를 완전히 뜯어내는 공사를 하는 곳이 심심치않게 보였다. 평일 낮임에도 공사차량이 오가고 인부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문제는 그럼에도 옛날의 영광을 누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과, 일종의 양극화가 벌어지는 대목이다. 거리 곳곳에 붙은 ‘프리미엄 고시원’ 현수막의 정체를 파악하는 순간이다.
“리모델링하거나 원룸으로 공사하며 버티는 사람들은 돈있는 사람들이지, 그 마저도 어려운 사람들은 코로나 거치면서 많이 떠났어. 인근 상점도 사정은 비슷해” 강 씨는 오랫동안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았던 동네친구가 몇 달전 고향으로 돌아가고 말았다며 애꿎은 담배만 피워댔다.
“아르바이트생을 두는 식당은 이제 거의 없어요”
고시촌의 균열이 심해지고 있다는 것은 인근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심복희(가명)씨의 말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예전에는 맛집 반찬가게라는 소문이 퍼지며 멀리 사는 고시생들도 찾아오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매출이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고 한다. “학생들이 반찬을 포장해서 가고는 했는데, 지금은 완전히 옛말이 됐어요” 희미하게 웃은 심 씨는 나물을 데치고 있었다. “양을 더 줄여야 할까봐요”
반찬가게를 나와 큰 길로 나와봤다. 이제야 행인이 제법 많은 가운데 잠시 잊고 있었던 초여름의 냄새가 난다.
“요즘 유명강사가 왔다고 학원에 새벽부터 줄서서 기다리는 친구들은 거의 없어요”
거리에서 만난 공시생 박나래(가명)씨는 독서실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팬데믹 전후로 고향 청주에서 올라왔다던 그는 들고있던 테이크 아웃 커피잔을 들어보였다.
“집에서 공부하는 것 보다는 그냥 고시촌의 이 느낌을 살려 공부에 더 집중하려고 독서실에 가는 경우가 많아요. 이 마저도 많이 없어졌지만...학원들도 많이 없어져서 요즘에는 여기가 노량진이 맞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프랜차이즈 독서실로 향하는 박 씨의 모습 뒤로 헬스장과 대형 상점들이 노량진 거리를 채워간다.
다시 지하철 역 쪽으로 걸었다. 그 틈새 너머에 익숙하면서도 희끗한 그림자가 발걸음을 잡는다.
“저번에 TV를 보니 학생들이 줄어들어서 노량진 상권이 힘들다고 하대? 무슨 말이야. 학생들이 아예 말라버렸어”
거리를 빠져나오며 우연히 눈에 들어온 문구점. 오래된 상가 건물 1층 깊숙한 곳에서 그 역사 만큼이나 켜켜히 쌓인 잡화에 파묻혀 있던 김재익 씨는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코로나 이전과 비교하면 말할 것도 없고, 코로나 당시에도 가끔 있던 학생들도 다 사라졌어. 매출이 얼마나 차이가 나냐고? 비교할 수 없어. 지금은 거의 제로니까”
김 씨의 목소리에는 분노나 좌절보다는 체념의 정서가 강했다. 그는 기자가 사진을 찍기 시작하자 허겁지겁 마스크를 착용하며 중얼거렸다. “마스크를 쓰지않은 사진이 나가면 외지인들이 노량진을 욕하면서 코로나 무섭다고 안올 수 있어”
그럼에도, 그들은 살아간다
노량진 고시촌은 수험생에 이어 공시생이 거리의 활력을 책임졌지만 최근 코로나를 거치며 고시촌 분위기가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
거리에는 폐업이나 임대를 알리는 건물들이 즐비하고 상점의 숫자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내일의 더 나은 나’를 꿈꾸던 학생들도 자취를 감추고 있고 고시원은 프리미엄 고시원이나, 혹은 원룸으로 변신하고 있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기세를 올리고 있는 인터넷 강의가 대중화되며 고시촌의 의미가 퇴색됐으며 무엇보다 공시생의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올해 7급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42.7대1로 1979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할 정도로 국가직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하락하고 있다.
그 결과 노량진 고시촌은 빠르게 쇠락하고 있다. 거리에서 만난 이들은 새로운 정치권력에 기대하는 눈치도 있었지만 몇몇은 노량진 뉴타운 재개발 사업에 기대를 걸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역시 “어쩔 수 없지 않나”라는 반응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살아간다. 고시촌의 시끌벅적함에서 약간 멀어진 언덕 위 고시원으로 향하던 김하정 씨는 ‘할인’ 간판이 붙은 오래된 문을 열고 고시원에 들어가며 말했다. “수험생에 이어 공시생도 사라진다고 하지만 여기에는 그래도 꿈을 가진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시대가 변하면 뭔가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지 않을까요?
그의 마지막 말이 재미있다. ”학생들은 빨리 탈출하고 싶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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