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급 주택 29가구의 비밀①] 분양가상한제 피할 ‘묘수’
분양가상한제 등 각종 규제 비적용 공시가격 1위 청담동 ‘PH129’ 등 해당
“168억9,000만원”
올해 전국의 공동주택 가운데 가장 비싼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PH129(더펜트하우스청담)’ 전용 407.71㎡의 공시가격이다. 지난해 163억2,000만원 보다 5억7,000만원(3.5%) 오른 가격으로 2년 연속 전국 최고가 아파트에 등극했다.
통상 공시가격은 실거래가보다 낮게 결정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가격은 더욱 비싸다. 입주 이후 실거래 기록은 없지만 해당 물량의 분양가는 250억원으로 알려졌다. 국내 최고가에 걸맞는 최고급 주택으로 주목받은 이곳의 가격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바로 단 1개동, 29가구로만 조성됐다는 점이다.
전국 최고가 아파트 ‘29가구’뿐
국내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인 ‘PH129’는 영동대교 남단에 위치해 한강 조망이 가능하고 호텔급 입주자 서비스가 제공되는 최고급 아파트다. 부동산개발회사 빌폴라리스가 엘루이호텔을 인수해 그 자리에 지어 분양했다.
시공사는 현대건설로 2020년 준공됐으며 대지면적 2,588㎡에 1개동, 단 29가구로만 조성됐다. 이 중 공시가격 1위를 차지한 꼭대기층 펜트하우스는 2가구, 나머지 27가구는 전용 면적 273.96㎡다.
모든 가구를 복층식 구조로 설계해 지상 20층 규모이며 가구별 엘리베이터를 갖췄고, 지하에는 가구당 5대 이상 주차할 수 있는 주차공간이 마련돼 있다. 또 부대시설로 피트니스클럽, 실내 골프연습장, 영화관, 와인바, 로비 라운비 등이 들어갔다.
통상 부동산 시장에서 소규모 단지는 상대적으로 가격 방어에 취약해 선호하지 않는 형태다. 그러나 이곳은 나홀로 아파트임에도 오히려 적은 가구수로 인한 희소성과 고급화 전략을 통해 공시가 1위의 ‘명품 주택’으로 거듭났다.
이는 자산가나 연예인 등 사생활 보호를 중요시 하는 수요층을 가구수를 줄인 대신 넓은 면적을 갖추고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각종 부대·편의시설을 겸비한 고급 주택으로 흡수하면서다. 공식 분양 이전 입소문만으로 15가구가 팔렸고 배우 장동건·고소영(장고) 부부의 계약 사실이 알려지며 이슈가 됐다.
현재도 PH129는 배우 장고 부부가 사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는 이들 부부를 비롯해 골프여제 박인비, 메가스터디 수학 1타 강사 현우진, 채승석 전 애경개발 대표이사 등 유명인이 다수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PH129뿐만 아니라 최근 주택시장에서 내로라하는 부자들과 유명인들의 거주지로 29가구 단지들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가수 겸 배우 아이유가 분양받아 유명세를 탄 강남구 청담동 ‘에테르노 청담’ 역시 한강변 나홀로 아파트이자 29가구로 조성된다.
분양가 규제 피해 수익성 UP
‘29가구’가 고급 주거시설의 대명사처럼 굳어진 배경에는 분양가상한제, 전매제한, 청약통장 등과 같은 각종 부동산 규제가 얽혀있다. 특히 값비싼 강남, 한강뷰를 갖춘 땅에 더 많은 가구를 조성하지 않고 딱 29가구만 지어 분양하는 것은 일명 ‘30가구 룰’ 때문이다.
현행 주택법상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 민간택지에서 30가구 이상을 일반분양하는 주택은 분양가상한제나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고분양가 심사 적용 대상이다.
분양가상한제나 고분양가 심사 등은 분양가를 산정할 때 일정 수준 금액을 넘어서 책정하지 못하도록 강제하고 있는 제도다. 이를 적용하면 통상 주변시세보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분양가가 책정된다. 이에 신규분양은 주택가격 급등에 따른 피로감과 강도 높은 부동산 규제 속에서 내 집 마련을 위한 수단이자 때로는 수억원대의 시세차익을 노릴 수 있는 방안으로 관심을 받아왔다.
반면 사업자 입장에서는 분양가 관련 규제가 적용되면 더 높은 분양가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사라지는 것이다. 때문에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상한선인 30가구에서 딱 하나를 뺀 29가구를 조성해 분양하는 방식을 택하게 됐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사업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윤을 남겨야 하고 당연히 분양가를 비싸게 받고 싶지 않겠냐”며 “그러다 보니 분양가상한제 등 규제를 피해갈 수 있는 29가구를 맞추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단순히 가구수가 적다고 해서 분양가를 높게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29가구 단지가 위치한 청담동은 과거부터 고급빌라들이 즐비한 부촌으로 꼽히는 지역이다.입지가 좋지만 그만큼 땅값도 비싸다. 또 부지가 한정적이고 대규모 개발이 어려운데다 일조권 문제나 주변 경관 심의 등으로 인해 실제 건축 가능한 가구수에도 제약이 있다.
이에 가구수를 줄여 주택 상품의 희소성을 높이고 분양가 제한 규제를 받지 않는 점을 활용해 고급 자재 사용, 특화 설계 등을 도입한 고급화 전략으로 가구당 마진율을 높였다.
분양 관계자는 “29가구 하이엔드 주택이라고 해도 입지에 따라 수요와 평가가 갈릴 수 있다”며 “아무리 상품이 좋더라도 이를 소비할 수 있는 수요자들이 ‘내가 왜 굳이 그런 동네에 가야하나’라고 생각하면 물량이 소진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 특히 강남권에 고급 주거시설이 자리 잡고 주목받는 것은 입지 장점을 바탕으로 수요층 확인과 타깃을 정해 맞춤 상품을 비싼 가격에 공급하고 사업자는 그만큼 수익성을 높여가는 전략을 취했기 때문”이라며 “분양가 규제 때문에 나오는 공급 방식 중 하나지만 보편적인 상품은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임의분양 방식…청약통장, 전매제한 무관
29가구로 대표되는 고급주택은 분양가뿐만 아니라 분양 방식에 있어서도 규제가 덜하다. 임의분양으로 공급돼 공개청약 의무가 없고 입주자 모집공고를 하더라도 크게 제약이 없는 상태다.
청약통장이 필요없고 자격 제한이 까다롭지 않은 것은 물론이며 기존 주택 보유 여부에 따른 분양 자격 제한도 없다. 또 전매제한과 같은 부동산 규제에서도 자유롭다. 이에 자금력을 갖춘 자산가, 다주택자, 기업인, 연예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떠오른 젊은층의 인플루언서, 셀럽들도 이런 고급 주택을 매입하거나 거주하며 수요층을 넓혀가고 있다. 단순히 넓은 평수의 고급빌라와 같이 주거공간의 의미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물품이나 서비스를 잘 갖추고 있어 그냥 몸만 들어가도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소수를 타깃으로 한다는 희소성과 사생활 보호를 강조한 폐쇄적인 부분들까지 더해지면서 수요층이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 팀장은 “임의분양은 옛날부터 있었던 방식으로 브랜드있고 주거환경이 좋은 하이엔드 상품들은 일부고 소위 말하는 비인기 단지나 소규모 사업들도 많았다”며 “최근 이런 고가 주택의 공급 빈도가 늘어나는 것은 그만큼 주택에 대한 수요에 비해 공급 판로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분양규제를 피하기 위한 것뿐 아니라 자산가들의 세금문제나 증여, 상속 등을 원활하게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권 팀장은 “자식에게 일찌감치 증여나 상속 등을 위한 방안으로 현금이 아닌 부동산을 미리 준비해 놓는 케이스도 많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