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화-정유기업, 고유가 장기화에 나란히 ‘울상’
국제유가 초강세 속 실적 둔화 우려
[이코노믹리뷰=김보배 기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국제유가와 함께 원재료 가격이 치솟고 있다.
원유를 증류해 얻은 나프타(납사)를 원료로 사업을 영위 중인 석유화학 업계에 그늘이 짙어지고 있다. 올 1분기는 물론 2분기 수익성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작년부터 고유가 기반 정제마진 강세 효과를 톡톡히 누려온 정유사들도 불안에 떨고 있다. 지난달까지 역대급 호황기 수준을 나타내왔던 정제마진이 이달 들어 뚝 떨어진 것으로, 고유가 반사이익도 끝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고유가 반사이익 끝?…정제마진 손익분기 위협
8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3월 첫째 주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배럴당 5.7달러로 전주보다 1.2달러 떨어졌다. 정제마진은 지난 2월 평균 7.7달러로 2019년 9월 이후 최고점을 찍으며 강세를 나타냈는데, 이달 들어 2일 6.8달러에서 3일 3.7달러, 4일 3.2달러 등으로 급락했다.
정제마진은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가격과 수송·운영비 등 비용을 뺀 금액으로, 손익분기점(BEP)은 4.5달러 수준이다. 정유사가 원유 수입 후 정제 과장을 거쳐 제품을 판매하기까지는 통상 2~3개월이 소요되는데, 정제마진이 손익분기보다 높을수록 정유사의 제품 판매에 따른 마진(차익)이 커지는 구조다.
코로나19 여파로 2020년 마이너스(-)로 추락했던 정제마진은 지난해 국제유가와 함께 본격 상승을 시작해 최근까지 고점을 유지해왔다. 2020년 합산 5조원대 손실을 냈던 국내 정유 4사가 지난해에는 합산 6조원대 영업이익을 달성한 배경도 이 때문이다.
정제마진은 작년 9월 평균 배럴당 5.3달러를 비롯해 10월 7.5달러, 11월 5달러, 12월 5.8달러, 올 1월 6달러, 2월 7.7달러 등 높은 수준을 나타내오다 최근 하락 반전했다. 국제유가가 이달 들어 100달러 돌파에 이어 최근 120달러대에 거래되는 등 급등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국제유가가 상승하면 정유사는 재고평가이익을 얻게 된다. 그러나 지나치게 오르는 경우 글로벌 경기침체와 함께 석유제품 수요와 가격이 떨어져 정제마진이 오히려 감소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2012년 국제유가가 110달러를 웃돈 당시 정유 4사는 일제히 적자를 낸 바 있다.
황규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원유가격이 100달러를 넘어서면서 휘발유 등 석유제품 가격 상승폭이 이를 못 따라가기 시작했다”며 “초고유가에 따른 석유제품 수요 둔화 우려감이 동시에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NCC, 1분기 이어 2분기에도 실적 부진 예상
국제유가 상승세와 함께 LG화학과 롯데케미칼, 여천NCC, 한화토탈, 대한유화 등 국내 NCC(나프타분해설비) 업체의 수익성 둔화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납사 가격은 유가와 함께 천정부지로 치솟는데, 제품가격은 둔화해 스프레드(원료와 제품가 차이)가 축소된 탓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3월 첫째 주 납사 가격은 톤당 1,023.13달러로 52주 최고가를 경신했다. 납사 가격은 1년 전 톤당 620달러 수준이었는데, 올 1월 말 800달러를 뛰어넘었고 2월 마지막 주 900달러, 최근 1,000달러 돌파 등 급증하고 있다.
에틸렌 가격도 3월 첫 주 톤당 1,220달러로 지난주보다 30달러(2.52%) 오르며 52주 최고가를 찍었지만 납사 가격 급등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작년 10월 402달러 수준이던 납사-에틸렌 스프레드는 올 2월 마지막 주 279달러로 줄었고, 이달 들어서는 197달러로 더 축소됐다. 납사-에틸렌 가격 스프레드 손익분기점은 톤당 300달러 수준으로 본다.
황규원 연구원은 “러시아 경제봉쇄로 공급망이 악화하고 물가가 상승하면서 자동차, IT, 의류용 석유화학제품 구매자가 관망세로 돌아섰다”며 “NCC설비 업체의 적자 탈출은 2분기까지 불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올 들어 납사 스프레드가 줄곧 부진했던 탓에 국내 NCC 사업자들은 1분기부터 우울한 성적표를 받아들 전망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의 1분기 영업이익은 1,51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5.7%, LG화학은 8,496억원으로 39.7% 각각 감소가 예상된다.
한승재 DB투자증권 연구원은 LG화학의 1분기 영업이익을 7,810억원 수준으로 예측하고 “유가, 납사 추가 상승에 따른 원가 부담이 가중되고 중국 올림픽 영향에 따른 화학 다운스트림 수요 둔화 등으로 부진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