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궁금증] 이커머스 진출 늦은 롯데, 메타버스로 판 뒤집을까

결제 시스템 구축된 ‘초실감형’ 가상 세계 구현

2022-02-25     김동일 기자
롯데정보통신과 자회사 칼리버스가 구현한 롯데 메타버스 세계. 출처=롯데지주

[이코노믹리뷰=김동일 기자] 롯데그룹이 ‘초실감형’ 메타버스 사업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신동빈 롯데 회장이 신사업으로 메타버스를 콕 집은 건데요. 앞으로 열릴 메타버스 세상에서 롯데가 그 기준이 되자는 당부의 말까지 남겼습니다. ‘초실감형’ 메타버스라는 새 칼을 차고 이커머스 격전지로 나서겠다는 의지로 풀이됩니다.

신 회장은 지난 22일 메타버스 회의를 열고 주요 경영진들과 함께 그룹 주요 현안과 사업 전략을 논의했는데요. 이날 회의는 노준형 롯데정보통신 대표의 메타버스 시장 현황과 사업 방향성 발표를 시작으로 2시간 동안 이어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신 회장은 “두려움을 극복하고 앞서가면 우리가 기준이 될 수 있다”며 “화성보다 먼저 살아가야 할 가상융합 세상에서 롯데 메타버스가 기준이 되도록 노력하자”고 강조했다고 하네요.

사실 유통업계에서 ‘메타버스’라는 이름은 더 이상 새롭지 않습니다. 유통 라이벌인 신세계를 비롯해 이미 수많은 유통업체가 메타버스를 활용해 브랜드를 알리며 고객 마케팅에 나서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롯데가 준비 중인 메타버스는 궤가 조금 다른데요. 앞에 붙은 ‘초실감형’이라는 수식어 때문입니다.

왜 ‘초실감형’인가

2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롯데정보통신은 지난 24일 주주총회소집결의안에서 제 2호 의안으로 ‘정관 일부 개정의 건’을 올렸다고 공시했습니다. 사업 목적에 ‘디지털 자산 제작 판매 및 중개업’을 추가하기 위함인데요. 이는 메타버스 내 전자화폐 및 결제시스템 구축, NFT(대체불가능토큰) 발행 등과 관련 있습니다.

롯데는 메타버스 플랫폼을 고객들이 실제로 결제까지 할 수 있는 쇼핑 공간으로 꾸밀 것으로 관측되는데요. 롯데그룹 관계자는 “이르면 올 2분기 중 결제 기능을 갖춘 메타버스 플랫폼 베타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게 바로 롯데가 ‘초실감형’을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롯데에게 메타버스는 단순히 브랜드 이미지를 홍보하고 재밌는 고객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이 아니라는 거죠. 롯데 메타버스에서는 아이템 하나하나가 고객이 구매를 위해 꼼꼼히 살펴보는 ‘상품’인 겁니다. 그러니 코트 하나를 만들더라도 색상, 질감, 봉제선 등 ‘진짜’ 같은 디테일을 구현해야겠죠.

CES2022에서 공개된 버추얼스토어. 출처=롯데정보통신

롯데는 ‘초실감형 메타버스’의 중간 결과물을 공개하기도 했는데요. 롯데정보통신은 지난달 자회사 칼리버스와 함께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2에서 초실감형 메타버스를 활용한 ‘버추얼스토어’와 ‘버추얼 피팅룸’ 등을 선보였습니다. 칼리버스는 롯데정보통신이 지난해 7월 인수한 메타버스 플랫폼 업체지요.

롯데 메타버스는 VR(가상현실) 기기를 통해 체험할 수 있는데요. 버추얼 스토어에서는 실제와 같은 매장 디테일은 물론 제품 기능이 궁금한 경우 양방향 인터랙션을 통해 안내 직원에게 설명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버추얼 피팅룸에서는 가방, 액세서리부터 셔츠, 바지 등 상품을 확대하면 실밥까지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데요. 마네킹과 본인 캐릭터 모두 시착 가능하고 친구나 부모님을 연결해 상품이 어울리는지 실시간으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능도 탑재됐습니다.

김동규 칼리버스 대표는 “버추얼 스토어 안에서 현실처럼 쇼핑을 즐길 수 있다”며 “이번 CES에서 선보인 부분은 롯데 인수 직후 만든 아주 작은 요소에 불과하다”며 자신감을 드러냈습니다.

늦은 만큼 큰 보폭으로

그렇다면 롯데가 관련 업체를 인수하면서까지 메타버스를 통해 온·오프라인 융합 비즈니스를 추진하려는 이유는 뭘까요? 업계에서는 롯데가 이커머스 경쟁에 한 발 늦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선두를 차지하기 위해선 메타버스를 발판 삼아 스퍼트를 올려야 하는 상황이라는 거죠.

실제로 롯데의 이커머스 시장 진출은 늦은 편입니다. 그룹 내 이커머스 플랫폼인 ‘롯데온’은 2019년 3월 론칭했는데요. 그 당시 이미 시장 상황은 네이버와 쿠팡, 이베이코리아 등이 먼저 치고 나가고 있었습니다. 신세계그룹도 롯데와 같은 시기 ‘SSG닷컴’으로 이커머스 시장 진출을 본격화했지만, 이듬해 업계 3위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하면서 롯데에 앞서게 됐죠.

진출이 늦은 만큼 시장에서의 입지도 크지 않은데요. 2020년 기준 롯데온의 연간 거래액은 7조6,000억원으로 시장점유율 약 5%에 그쳤습니다. 지난해 거래액도 8조5,000억원으로 소폭 증가하면서 유의미한 점유율 확대를 이뤄내지 못했죠. 그만큼 롯데에게는 이커머스 사업에 ‘뾰족한 수’가 필요했습니다.

다만, 일각에서는 롯데 메타버스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데요. 사업의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커머스 시장이 채 안정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업계 최초로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는 것이니 만큼 수익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거죠.

어찌됐든 롯데그룹의 메타버스 사업은 업계에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먼저 걷고 있기 때문이겠죠. 흔들리고 있는 전통의 유통 강자 롯데가 ‘초실감형’ 메타버스를 통해 새로운 발돋움을 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