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얼음판 글로벌 외교 ‘반도체’ 주도권 경쟁, 韓 대응 전략은

대만 vs 중국 안보 긴장감 고조 미국의 '반중 연대'에 일본, 대만 적극 참여 TSMC '52조 투자'로 삼성전자 추격 견제 전문가 "장기적 관점의 인력육성 시급"

2022-01-17     박정훈 기자

[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미국과 중국 간의 외교 갈등이 광범위한 영역에서 격화되고 있다. 이는 대만과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까지 영향을 미치는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다. 

미국 중심의 기술 공급망 구축에 동참하는 일본과 대만, 미국에 유리한 판세를 대만의 편입으로 반전시키려는 중국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우리나라는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 이러한 관계의 핵심에는 ‘반도체’가 있다.

中 반도체 굴기 실패 결정적 원인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자국 내 반도체 자급률 70% 달성”을 목표로 하는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며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었다. 넘치는 자본력과 인력 그리고 중국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강력한 지원 정책으로 반도체 굴기의 시작은 탄력을 받았다. 기술력의 도약을 위해서는 글로벌 반도체 업계가 요구하는 ‘초미세 공정’을 실행할 수 있는 첨단장비들이 필수였으나 중국은 이를 손에 넣지 못했다. 반도체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중국의 군사력 증강을 우려한 미국의 철저한 봉쇄 조치 때문이었다. 

미국 정부는 자국 반도체의 기술과 제품의 중국 유입을 전면 차단했다. 여기에 더해 미국은 초미세 반도체 공정의 필수요소인 ‘EUV(극자외선, extreme ultraviolet)’ 노광장비를 독점하고 있는 네덜란드의 ASML社에도 압력을 행사했다. ASML은 “중국에 우리의 장비를 판매하지 않을 것”을 선언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9일(현지시간) 보도에서 “2021년을 기준으로 중국 내 반도체 실제 자급률은 약 17%로 추산되고 있다”라면서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70%를 목표로 한 중국 정부의 계획이 이뤄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라고 전했다. 

중국 정부가 반도체 굴기 프로젝트에 투자한 자금은 최소 23억달러(약 2조7,600억원)로 알려져 있다. 이 자금들은 우한훙신반도체(HSMC), 취안신집적회로(QXIC), 칭화유니그룹 등 중국의 반도체 기업들에 투자됐다. 그러나 지난해 6월 HSMC는 폐업했고 QXIC는 영업을 중단했으며 칭화유니그룹은 지속되는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중국이 대만 자극하는 이유 

중국과 대만 간의 군사적 긴장관계가 조성되고 있다. 지난 15일 중국의 공군은 J-16 전투기 8대, Y-8 대잠기 1대, Y-8 원거리 전자교란기 1대 등으로 대만의 방공구역을 비행하며 무력시위를 진행했다. 이는 대만의 뚜렷한 찬미 노선 그리고 “대만을 수호할 것”을 강조하는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의지를 의식한 시도로 해석됐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군사적 긴장 관계에도 반도체 주도권이 관여돼 있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과거의 이데올로기 전쟁으로 완전히 다른 노선을 추구하고 있지만, 중국과 대만은 가까운 지리적 입지를 활용해 서로의 이해관계 충족의 목적으로 오랫동안 협력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친미(親美) 성향의 차이 잉 원(蔡英文) 총통이 정권을 잡은 2016년 이후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았던 대만의 정치-경제적 노선은 이전과 180도 달라진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중국은 대만을 압박하기 시작했고, 대만은 중국에 대한 투자를 철회함과 동시에 미국-일본과의 동맹 관계 구축에 박차를 가했다.
 
미국의 견제로 반도체 굴기를 망친 중국의 입장에서는 가장 아쉬워지는 부분이 있다. 바로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점유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TSMC를 필두로 한 대만의 반도체 기술력이다. 

일본, 미국과 대만 끌어들이다 

일본의 경우 미국의 중국 견제에 적극적으로 동참함과 동시에 전통적 우호관계인 대만의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는 등으로 나름의 ‘라인’을 형성하고 있다. 미국과 대만의 견제가 중국을 메인 타깃으로 하는 것과 일본의 행보는 구분되는 점이 있다. 바로 일본의 타깃에는 한국이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19년부터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반도체 제조 원료 수출을 규제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일제 강점기 조선인 징용공 문제에 대한 재판을 문제 삼았지만, 그 내면에는 과거 전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독식하던 일본 기업들을 끌어내린 한국에 대한 견제가 있다는 것이 지배적인 해석이다. 현재 일본은 한국의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대척점에 서 있는 TSMC의 공장을 자국에 유치를 확정짓고 지원금을 제공하는 등 파격 지원을 약속했다. 

여기에 일본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첨단산업 규제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読売新聞)의 지난 10일 보도에서 “미국과 일본 정부는 반도체 제조장비·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 분야의 對중국 수출 규제를 목적으로 하는 협의체 구성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대만 “삼성전자 추격 막아라” 

지난해 말 미국 텍사스 주 테일러 시에 제2 파운드리 공장 건립을 확정지은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분야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규모의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 내 3나노 반도체의 세계최초 양산과 2025년 2나노 반도체의 생산”을 내세우며 기술력 측면에서 TSMC와의 격차를 좁히고 있다.   

이에 맞서 TSMC는 지난 16일 역대 최대 규모인 400억∼440억 달러(약 47조5,000억원∼52조3,000억원)를 초미세 공정 설비에 투자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명백하게 글로벌 파운드리 업계 1위 자리를 맹추격하고 있는 삼성전자에 대한 견제였다. 이는 동시에 반도체 굴기의 실패로 상처를 입은 중국의 자존심을 자극하는 행보로도 해석됐다. 

지난해 K-반도체 전략 선포식에서 반도체 사업 확장 계획을 밝히고 있는 삼성전자 김기남 前 부회장. 출처= 청와대

우리나라의 선택은 

피아의 식별이 뚜렷한 미국·중국·일본·대만과는 다르게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은 각 나라들과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이는 곧, 어느 한 나라와의 관계가 어긋나면 반도체 산업에도 직접적 타격을 입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것을 의미한다. 

국내 여론에서는 미국 중심의 공급망 구축의 편에 서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유리하다는 의견이 우세하지만, 현실적으로 쉬운 결정은 아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실시한 ‘한․미․일 주요품목 對중국 수입의존도’ 조사에서 부품 및 소재를 포함하는 반도체 중간재의 중국 수입의존도는 한국이 39.5%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일본은 18.3%, 미국은 6.3%의 중국 의존도를 기록했다. 만약 중국이 반도체 소재 수출과 관련해 일본처럼 규제를 적용하면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은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여기에,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의 반도체 공장이 중국에서도 운영되고 있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출처= 전국경제인연합회

중국의 편에 노골적으로 서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판세는 이미 미국에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관련 학계와 업계 전문가들은 외교에 앞서 ‘장기적 관점의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인재의 관리’를 강조하고 있다.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강성철 선임연구위원은 “당장의 글로벌 정세가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의 명운을 좌지우지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반도체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인력들의 운영이며 이는 곧 외교 등 외부 조건과 무관하게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을 지켜줄 버팀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학교 반도체공동연구소 최기창 교수는 “미국, 대만, 일본 그리고 중국의 반도체 산업 성장 노선을 살펴보면, 여기에는 공통적으로 ‘인력 확보’에 상당한 비중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라면서 “필요하다면 학사 교육의 단계까지 반도체 산업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등의 방법론 수행과 여기에 대한 국가적 지원도 필요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덧붙여 최 교수는 시스템반도체 경쟁력의 근간인 국내 ‘팹리스 기업’들의 육성도 제안했다. 최기창 교수는 “기술 및 영업 경쟁력을 키워줄 수 있는 대기업 주도의 투자나 혹은 이를 법적으로 지원하는 정부의 정책도 검토될 필요가 있다”라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