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가계대출, 재개에도 실수요자 체감 ‘바늘구멍’

올해 대출총량·DSR 규제 더 강화 금리인상에 대출금리도 치솟아 실수요자 접근성 둔화에 대출잔액 감소 “가계대출·상환 은행 자율에 맡겨야”

2022-01-10     강민경 기자

[이코노믹리뷰=강민경 기자] 새해를 맞아 시중은행 가계대출 문이 다시 열렸지만, 전년 대비 대출 문턱이 더 높아지면서 실수요자들의 접근이 줄어들고 있다.

정부가 올해부터 가계대출 총량 관리와 차주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강화하는데다 금리인상기를 맞아 대출금리가 크게 오르는 등 대출 조건이 더욱 까다로워진 까닭이다.

이에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아진 정책상품 ‘적격대출’에 수요가 몰리면서 우리·농협 등 일부 은행에서는 판매를 시작한 지 1·2일 만에 한도가 마감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우대금리 복원도 잡지 못한 ‘대출금리’…올해 더 오를 듯

은행들이 연초 우대금리를 복원하며 대출을 재개했지만, 새해 들어 대출 시장은 잠잠한 모양새다.

이달 초 국민은행은 전세자금대출과 주택담보대출 우대금리를 최대 0.2∼0.3%포인트 올리고, 우리은행도 신용대출과 주택담보대출 우대금리를 최대 0.6%포인트 인상하는 등 은행권에서 적극적으로 대출 판매에 나섰다.

통상적으로 대출금리는 ‘기준금리+가산금리-우대금리’로 산정돼 우대금리가 높아지면 대출자가 실제 부담하는 최종 대출금리가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이들이 내세운 ‘우대금리 복원·인상’이라는 전략만으론 실질적 모객 효과를 얻지 못했고, 오히려 외형은 쪼그라들었다.

실제 은행권의 대출 잔액은 전년 대비 줄어들었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 총 잔액(지난 6일 기준)은 708조5,909억원으로 전년 말(709조529억원) 대비 4,619억원 감소했다.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은 각각 2,054억원, 845억원 줄었다.

연초부터 대출 잔액이 줄어든 배경으로는 금리 상승의 영향으로 큰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은행 신용대출 평균금리는 연 5.16%로 7년여 만에 처음으로 연 5%대를 넘었다. 지난해 초 연 3.46%와 비교했을 땐 1년 사이에 1.7%포인트 치솟은 수치다.

금융업계는 한국은행이 올해에만 2차례 이상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란 전망에 무게를 싣고 있다. 이에 대출금리 상승 속도가 더욱 빨라질 가능성이 커졌으며, 대출 실수요자들의 움직임이 더뎌지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금융당국 ‘거센 규제’ 기조 이어져…7월부터는 DSR 3단계

대출수요 감소세와 관련한 또 다른 요인으로는 정부가 가계대출 총량과 DSR를 비롯한 규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을 4~5%로 관리하기로 했다. 이는 지난해 5~6%대 보다 더 낮아진 수준이며, 이달부터 차주별 DSR 2단계가 시행돼 총 대출액 2억원이 넘는 차주에겐 DSR 40% 규제가 적용된다. 오는 7월부터는 3단계 시행으로 총 대출액 1억원을 초과하는 차주까지 적용 대상이 확대된다.

또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의 수장들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가계부채 관리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해 대출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고승범 금융위원장과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올해 가계 부채를 엄격히 관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일각에선 규제와 압박을 통한 대출수요 죄기는 장기적 관점에서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는 결국 ‘부동산 안정화’에 기인하는데 부동산 문제는 부동산 시장에서 해결해야 한다”며 “대출과 상환 등에 관한 세부적인 규제는 금융기관이 자율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선진화 된 경제문화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정부는 일관성과 예측가능성을 기반으로 거시적인 금융 정책을 실행해야 하는데 최근의 정책은 이러한 것들이 부재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책 대출상품인 ‘적격대출’의 금리가 주택담보대출 최저 금리보다 낮아지는 이자율 역전 현상이 벌어지면서 은행마다 한도가 조기 소진되고 있다.

적격대출은 10~40년의 약정 만기 동안 고정된 금리로 원리금을 매달 갚는 주택담보대출 상품으로, 은행이 일정 조건에 맞춰 대출을 실행하면 주택금융공사가 해당 대출자산을 사 오는 방식으로 공급된다.

적격대출은 금리변동 위험을 차주에게 전가하지 않는 대신 이자율을 조금 더 높여서 받는 구조다. 그러나 최근 적격대출 이자율이 시중은행 일반 주택담보대출 상품의 최저금리보다 낮아지면서 수요가 몰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3.51%, 적격대출 금리가 3.40%로 역전된 이후 이러한 현상은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일 기준 KB국민은행의 혼합형 주택대출의 최저 금리는 3등급 기준 연 3.72%로, 적격대출 금리 3.40%보다 높다.

이에 적격대출 신규 한도는 빠르게 동이 나고 있다. 월별로 판매한도를 관리하는 우리은행은 새해 첫 영업일인 지난 3일 오전 1월분 한도인 330억원을 모두 소진했다. 분기별로 한도를 관리하는 NH농협은행도 다음 날인 4일 1분기 한도 물량 접수가 마감됐다. 하나은행에선 지난 6일 취급 개시 후 다음 날까지 1분기 한도의 20%에 해당하는 대출 신청이 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