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큐레이션] SKB와 넷플릭스, 승리의 여신은 누구 편일까
용어의 차이부터 인터넷 서비스 개념도 달라 인터넷 환경 둘러싼 각축전
[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신경전이 점입가경으로 흐르며 오는 25일 법원의 최종 선고에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SK브로드밴드가 지난 4일 재판부에 변론제기 신청서를 제출하며 최종 선고일이 연기될 가능성도 있으나 큰 틀에서 2년을 끌어온 법적 공방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극적 합의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아직 망 이용대가를 두고 벌어지는 양측의 입장차이가 크다. 운명의 25일, 승리의 여신이 미소를 지어 보일 곳은 어디일까? 법원의 최종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들을 자세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무임승차, 그리고 개념의 문제
양측은 망 이용료와 관련된 주요 쟁점에서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있다.
국내 CP(콘텐츠공급자)들은 ISP(인터넷제공사업자)의 관계설정부터 이견이 충돌한다. SK브로드밴드는 국내 CP들은 착실하게 망 이용대가를 지급하고 있으나 넷플릭스는 말 그대로 무임승차하는 중이라 비판하기 때문이다. 반면 넷플릭스는 국내 CP는 SK브로드밴드로부터 인터넷 접속 서비스 등을 제공받는 반면, 넷플릭스는 어떠한 서비스도 제공받지 않고 있다고 반박한다.
여기서 접속과 전송의 개념이 등장한다.
미국 기업인 넷플릭스는 한국 시장에서의 서비스를 위해 로그인 및 인증 등 비교적 가벼운 서비스를 지원할 때 퍼블릭 네트워크로 미국 시애틀의 AWS와 도쿄 및 홍콩 OCA(캐시서버)를 활용한다. 그러나 대용량의 스트리밍 서비스는 도쿄 및 홍콩 OCA를 국제회선으로 제공하는 중이다.
넷플릭스는 접속과 전송의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쉽게 말해 CP가 최초 연결된 IAP A, 그리고 ISP A와 연결된 ISP B를 통해 이용자인 B로 콘텐츠가 이동한다고 가정하면 CP인 넷플릭스가 ISP A와 연결되며 '전송료'는 지불해야 하지만 ISP A와 ISP B 사이에서 전송되는 콘텐츠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는 주장이다. 넷플릭스는 도쿄에서 OCA를 설치, 유지하는 데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받고 그 대가를 지급하고 있지만 접속료를 지불하지는 않고 있다.
인터넷 접속과 전송은 구분되는 개념이 맞고, 이미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개념이라는 주장이다. 나아가 특정 ISP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한 이용자가 요청한 콘텐츠의 전송(착신)은 이용자에 대한 해당 ISP의 의무가 맞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SK브로드밴드는 접속과 전송의 개념을 나누는 것 자체가 의미없다는 입장이다. 법적으로, 산업적으로 접속과 전송을 나눌 수 없고 그런 선례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미국에서 도쿄로 스트리밍이 넘어와 SK브로드밴드에 연결되는 단계를 수행하는 OCA가 CP의 개념이기 때문에, 넷플릭스의 주장대로 CP가 ISP A에게 전송료를 지불해야 한다면 ISP A를 SK브로드밴드로 봐야 하고, 당연히 망 이용대가는 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넷플릭스는 OCA에 도착하기 전을 CP의 개념으로 보고 미 현지 통신사 및 OCA가 움직이게 하는 ISP A기 때문에 그들에게 전송료를 낸다는 주장이지만 SK브로드밴드는 OCA에서 SK브로드밴드로 넘어오는 단계를 CP로 보고 "넷플릭스 주장대로 CP에서 ICP A로 넘어오는 전송료를 제공하라"는 주장이다.
상황에 대한 개념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접점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한편 양측은 접속과 연결에 대한 개념에 접근하는 방법도 다르다. SK브로드밴드는 이 역시 의미없는 분류라는 입장이지만 넷플릭스는 FCC, EU, 망 중립성 연구반 등이 규정한 인터넷 접속 개념에 의하면 인터넷 접속과 전송을 위한 연결은 구분되는 개념으로 논의할 대상조차 아니라는 입장이다.
넷플릭스가 해외 ISP에게는 전송료를 제공하면서 국내에서는 반대하고 있다는 주장도 첨예한 대립이 벌어지는 곳이다. 실제로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가 컴캐스트 등 해외 ISP에게 망 이용대가를 지급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만 정당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뉴차터 판결, Orange Case에서 CP의 망 이용대가 지급의무가 인정된 사례도 있다는 입장이다.
SK브로드밴드의 주장처럼 넷플릭스는 지난 2014년 미국 컴캐스트와의 비슷한 분쟁 이후 망 이용대가를 주기로 계약했고, 이어 AT&T, 버라이즌, 타임워너케이블 등과 잇따라 망 이용대가를 지급하는 계약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넷플릭스는 "현재 해외 ISP에게 망 이용대가를 지급하고 있지 않고 있다"며 "과거 지급 사례도 합의에 기하여 지급한 것"이라 반박한다. 해외 ISP에 망 이용대가를 제공한 것이 아니라 계약에 따라 합의한 사례기에 시스템의 관점에서 '망 이용대가 지급'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차터의 TWC 및 브라이트 하우스 인수 사례인 뉴차터는 CP의 망 이용대가 지급의무를 인정한 사례가 아니라는 지적도 이어지는 중이다. 당시 계약 상황이 비공개로 진행되어 정확한 내막은 아무도 모르지만, 이를 국내 법원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관건으로 보인다.
전송료 무상 원칙을 두고도 양측은 평행선을 달린다.
넷플릭스 주장은 선명하다. 전송료 무상은 인터넷을 구성하는 기본 중 기본원칙이며 이용자가 요청한 콘텐츠의 전송은 ISP의 의무로 볼 수 있고 이를 위해 ISP는 이용자로부터 요금을 징수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CP는 그전송을 위한 대가를 추가로 지불할 의무가 없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넷플릭스가 접속과 전송을 구분해 전송의 단계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CP가 책임질 수 없다는 주장의 근거이자, ISP의 책임을 CP에 부당하게 강요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무정산의 원칙이자 망 중립성 원칙과도 관련이 있다. 여기에는 인터넷 시장은 양면시장이기에 CP가 ISP의 고객이라는 점도 명확히 했다. 여기에 SK브로드밴드는 전송료 무상 원칙 자체가 없다고 반박하는 중이다.
비용과 관련해 가장 첨예한 대립 포인트인 SK브로드밴드의 망 증설도 논란이다. 넷플릭스 트래픽 급증으로 SK브로드밴드의 망 증설 비용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넷플릭스는 "망을 증설하는 것은 이용자들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나아가 SK브로드밴드가 ISP의 전반적인 트래픽을 확대해 회원들로부터 요금을 징수하기 위해 망 증설에 나서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고수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대용량 트래픽으로 SK브로드밴드가 망을 증설하는 것은 ISP의 책임이고, ISP의 이득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당연히 이를 넷플릭스가 책임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해상도, 그리고 망 이용대가의 전선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충돌은 다소 감정적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 가장 의미있는 포인트가 바로 넷플릭스 해상도 문제다. 이용자 입장에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목인데다 그 책임을 누가 지느냐에 따라 대중의 여론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양측 입장은 다르다. SK브로드밴드는 망 상황에 따라 넷플릭스가 해상도를 결정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콘텐츠 해상도의 경우 ISP가 감당할 수 있는 망의 화질에 따라 결정되며, SK브로드밴드의 경우 역시 해당 ISP의 망에 따라 화질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넷플릭스는 약관에서도 ISP 망 상태에 따라 화질이 영향받음을 명시하고 있다.
한편 양측의 충돌이 전방위적으로 벌어지며 잘못된 정보가 횡행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부 언론에서도 보도된 '넷플릭스가 KT와 LG유플러스에게는 망 이용료를 제공한다'는 정보다. 구독료 일부를 KT와 LG유플러스에 망 이용료 명목으로 제공한다는 잘못된 정보가 의외로 상당히 퍼져있다.
사실과 다르다. 넷플릭스는 파트너사를 통해 판매한 넷플릭스 서비스의 수익을 배분할 뿐이고, 망 이용대가를 지급한 적은 없다.
전쟁의 터닝 포인트는?
양측의 충돌은 망 이용대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신경전, 혹은 CP와 ISP의 범위를 두고 벌어지는 개념 정립의 혼란기로 볼 수 있다. 접속과 전송의 불분명한 개념과 망 중립성 원칙을 얼마나 지켜야 하는가, 나아가 전송료 무상 원칙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지루한 전쟁의 끝이 결정될 전망이다.
양측의 주장이 망 이용대가를 두고 치열한 격전을 나누는 가운데, 업계 일각에서는 ISP가 CP로부터 걷어가는 망 이용대가의 적절성부터 따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2017년 소위 페이스북 망 이용료 분쟁의 여진이 이어지던 2019년 8월, 코리아스타트업포럼과 한국인터넷기업협회, 구글, 네이버, 넷플릭스, 왓챠, 카카오, 티빙, 페이스북은 성명을 발표해 망 비용 구조의 전면 쇄신을 주문한다.
이들은 2016년 상호접속고시 개정안을 비판하는 한편 망 이용료의 합리적인 조정이 필요하다고 봤다. ISP의 우월적인 환경이 고착화되며 CP들에게 과도한 망 이용대가를 가져가는 상황을 타개하고 CP에게 ISP의 부담을 전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비판이다.
당시 주장은 이례적으로 평가됐다. 한 때 네이버가 구글과 핏대를 올리며 '기울어진 운동장'을 비판하는 분위기가 고조됐으나 갑자기 모든 CP들이 대동단결해 ISP와 날을 세우는 장면이 연출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불합리한 망 비용 구조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IT 스타트업, 국내 CP, 글로벌 CP, 그리고 인터넷과 통신을 통해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용자들 모두가 지속해서 피해를 본다"면서 "정부는 CP 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논리를 중단하고 인터넷 이용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근본적인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이 서로 견제구를 날리며 글로벌 기업과 토종 기업의 다툼을 벌이다가 갑자기 CP의 이름으로 대동단결해 뭉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ISP에 들어가는 망 이용대가 수준이 상호접속고시 개정안으로 급격히 높아지자 손을 잡은 것도 있지만, ISP인 통신사들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탈통신 전략을 바탕으로 CP의 역할을 침범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핵심이라는 말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그 동기가 어떻든, 지금 CP들이 다시 나눠져 싸우며 2019년 당시 대동단결하는 이미지는 현재 많이 희석됐으나 망 이용대가 수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인터넷의 환경 및 개념을 정립하고 CP와 ISP의 역할을 분명하게 만들 이번 분쟁의 다음 단계라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