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아 전 부사장 지분 사들인 KCGI, 경영권 분쟁 카드로 판 흔들까
KCGI, 조현아 전 부사장 지분 일부 사들여 시장 “3자연합 와해 보단 상속세 마련 차원일 것” 한진칼 몸값 높이려면 경쟁권 분쟁 나설 듯
[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한진칼을 중심으로 한 한진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조원태 회장의 백기사로 분류되는 산업은행이 한진칼 3대 주주로 올라선데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도 보유 중이던 한진칼 지분 일부를 매각한 데 따른 영향이다. 3자 연합(KCGI·반도건설·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핵심 축인 KCGI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조현아 전 부사장, 경영권 분쟁서 손 뗄까?
1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전날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한진칼 보유주식 5만5,000주(0.08%)를 KCGI에 장외매도했다.
조 전 부사장이 처분한 주식은 주당 6만1,300원으로 33억원에 달한다. 주식 매각 후 조 전 부사장의 지분율은 5.71%로 낮아졌고 KCGI의 지분율은 17.54%로 확대됐다. 다만, 3자 연합 전체 지분율은 종전 40.41%로 변동 없이 유지된다.
조 전 부사장의 갑작스러운 지분 매각을 바라보는 재계의 의견은 분분하다. 이런 가운데 조 전 부사장이 경영권 분쟁에서 손을 떼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해 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이 결정되면서 산업은행은 대한항공이 아닌 한진칼의 유상증자로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한진칼의 지분 10.7%를 확보한 3대 주주로 올라서게 됐다. 산업은행이 조 회장 측의 우호지분으로 분류되면서 조회장 측은 47.4%의 지분율을 확보, 단숨에 3자연합의 지분율을 앞지르게 됐다. 자연스럽게 3자 연합이 경영권 분쟁의 동력을 상실했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렸다.
더불어 산업은행이 경영 감시와 견제 역할을 맡기로 하면서 분쟁 명분도 모호해졌다. 조원태 회장 체제의 불합리한 경영권 행사를 비판하던 3자 연합이 이달 26일 예정된 한진칼 정기 주주총회에서 주주제안을 포기한 이유다. 일각에서는 3자 연합의 불화설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조 전 부사장의 지분 매각은 경영권 분쟁에서 물러나겠다는 것도, 3자 연합의 와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조 전 부사장이 단순히 상속세 납부 재원 마련 차원에서 지분을 매각했다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고(故) 조양호 전 회장의 별세로 한진가 3남매가 납부해야 하는 상속세는 각각 600억원 가량이다. 5년간 분납하기로 함에 따라 매년 120억원에 가까운 상속세를 내야한다.
문제는 현재 조 전 부사장이 마땅한 수익을 올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땅콩회항 직후인 2015년 12월 그룹 내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기 때문이다. 현재 조 전 부사장의 수익원은 대한항공, 정석기업 등으로부터 받는 10여억원의 배당금이 유일하다.
그런 이유로 매각한 지분이 소량에 불과하다는 점, 3자 연합이 지난해 상호 합의 없이 주식을 매도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담은 계약을 체결했다는 점, 한진칼이 올해 무배당을 선언하면서 배당 수익이 줄었다는 점도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싣는다.
자연스럽게 업계에서는 3자 연합의 핵심축인 KCGI가 추후 어떤 전략을 내놓을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시장에서는 KCGI가 장기전을 대비한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한진칼 주가가 상승할 여력이 있다고 판단해 엑시트(투자금 회수) 대신 수익 실현을 위한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해석이다. 실제 KCGI는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조 전부사장의 지분을 매입했다. KCGI가 매입한 금액은 당시 종가 5만8,600원의 1.05배 높은 금액이다.
KCGI도 당장 엑시트(자금회수)에 나서지 않겠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강성부 KCGI 대표는 지난달 <이코노믹리뷰>와의 통화에서 “일각에서 제기되는 3자연합 해체설 및 불화설 등은 사실 무근”이라며 “다만 한진칼의 추가 지분 확보에 나설 계획도 없다”고 언급한 바 있다.
경영권 분쟁때 한진칼 주가 뛴다… 숨고르는 KCGI
시세 차익이 목적인 사모펀드 입장에서 웃돈을 얹어 지분을 사들이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미 통합 항공사와 산업은행의 경영 참여로 인한 기대감이 상당수 반영됐다는 점을 감안해도 한진칼의 주가에 추가 상승 여력이 있다고 봤을 가능성이 높다.
KCGI가 한진칼 주가 상승을 기대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우선 경영 환경 악화로 인해 주가의 자체 부양 능력은 기대하기 힘들다. 코로나19로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과 진에어의 상황이 녹록치 않아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연결기준으로 지난해 대한항공은 1,465억원의 영업이익을 냈고, 진에어는 1,84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대한항공은 17%줄었고, 진에어는 278% 늘어났다. 코로나19 백신 공급에도 당장 수요 회복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당장 실적 등 수익성을 기대하긴 어렵다.
그나마 또 다른 주력 계열사 물류회사 ㈜한진의 상황은 좀 낫다. ㈜한진은 지난해 연결기준 1,11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22.4% 늘어난 수준이다. 코로나19로 택배업이 특수를 느린 덕분이었다. 아울러 사모펀드 운용사이자 2대 주주(9.8%)인 HYK파트너스와 경영권 분쟁 조짐도 있어 한진칼의 주가 반등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HYK파트너스는 작년 12월 ㈜한진에 첫 공식 서한을 보낸데 이어 지난달 22일에는 의안 상정 가처분에 관한 소송을 제기하는 등 압박에 나선 상황이다. 그 결과 ㈜한진은 오는 25일 예정된 정기 주주총회에서 조현민 부사장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을 상정하지 않았다. 반면 HYK파트너스의 주주제안은 모두 받아들였다. 아울러 ㈜한진은 오는 2025년까지 매출 3조5,000억원을 달성을 목표로 하는 중장기 경영전략도 발표했다. HYK파트너스를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한진이 오는 9월까지 6개월에 걸쳐 2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사들이겠다고 공표함에 따라 분쟁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게 업계 안팎의 시각이다. 이 경우 한진칼 주가 상승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즉, 한진칼의 주가는 내부 요소가 아닌 경영권 분쟁과 같은 외부 요소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말이 된다. 이에 KCGI가 숨 고르기 후 상황을 봐서 다시 경영권 분쟁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실제 경영권 분쟁이 한창이던 작년 한진칼 주가는 고공행진하며 비싼 몸값을 자랑한 바 있다. 한진칼 주가는 2019년 12월부터 작년 2월 초만 해도 3만~4만원 초반대였다. 그러다 그해 2월 중순 이후 한진그룹 경영권을 두고 조 회장과 3자 연합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9만~10만원대까지 뛰었다. 4월 20일 한때는 11만1,000원을 찍기도 했다. 코로나19 여파로 항공업계가 휘청이는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18일 한진칼은 5만9,800원에 거래를 마쳤다. 1년여 만에 46.2% 하락한 수준이다. KCGI가 당장 자금회수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그간 3자 연합의 대표성 등 측면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지분 매각은 자칫 3자연합의 동력이 잃은 것 처럼 보일 수도 있어 섣불리 이행한 것은 아닌 걸로 본다. 자금이 급해서 현금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산은이 한진칼의 유상중자에 참여하면서부터 사실상 시장에서는 경영권 분쟁이 끝났다고 보고 있다. 그간 주가가 40% 이상 빠진 게 분위기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이어 “조원태 회장은 어려운 시기 좋은 성과를 낸데다 산은이라는 든든한 우군을 얻어 지분도 안정화 됐다. 3자연합이 바로 엑시트가 어려워 후일을 기약하는 제스쳐를 내고 있지만 그러기엔 상황이 너무 어려워 보인다. 공격할 틈이 보이지 않아 전략을 짜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