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親)게임 진영마저 등돌려...게임사 사면초가
'확률형 아이템' 논란 일파만파 “게임 업계 건강한 토양 만들어야” 여론 거세져
[이코노믹리뷰=전현수 기자] 그동안 게임 업계를 향한 규제 칼날에 합심해 맞서던 친(親)게임 진영이 ‘확률형 아이템’ 규제와 관련해 사분오열하고 있다. 건강한 게임 문화 형성을 위해서는 확률형 아이템 공개를 법제화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며 게임 업계에 묘한 분열이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23일 게임 업계에 따르면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공개 법제화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논란의 시작은 지난해 12월 이상헌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전부 개정안’이다. 개정안에는 게임사가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해야하며, 이를 어길시 처벌을 받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현재 게임 업계는 ‘자율규제’를 통해 자발적으로 확률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게임 업계는 반발했다. 한국게임산업협회는 확률 정보는 자율 규제를 통해 스스로 공개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는 한편 확률형 아이템과 게임 내 아이템 수급의 밸런스를 연관지으며 이는 게임사들의 대표적인 영업비밀이라고 주장했다. 또 경우에 따라 아이템 획득 확률이 변동 확률 구조를 가졌다고 말하며 정확한 확률 공개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반면 게임 이용자들은 업계의 입장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자율 규제를 통해 확률이 공개되고 있다고 하지만, 일부 게임에서는 자율 규제의 내용을 피해가는 방법으로 확률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게임사가 공개한 확률 역시 믿기 힘들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이러한 연장선에서 최근 게임사들을 향한 불만의 표시로 '트럭 시위'도 번지고 있다.
지난 16일엔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공개를 요구하는 내용을 담은 국민 청원이 올라왔다. 해당 국민 청원은 이날 기준 참여인원 1만7000명을 돌파했다. 청원 내용은 게임법 개정안에 담긴 내용에서 더 나아가 게임사가 중요한 게임 내 정보를 수치화하고 이를 공개할 의무가 있다고 촉구했다.
학회 역시 게임 업계를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게임학회는 22일 성명서를 통해 게임 업계가 지난 6년간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자율적으로 공개하는 노력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게임법 개정안에 담긴 확률형 아이템 관련 법제화에 힘을 실었다.
나아가 학회는 “확률형 아이템은 영업 비밀”이라고 개정안에 반박한 한국게임산업협회를 향해 게임 업계가 스스로 모순에 빠졌다고 날을 세웠다. 해당 논리는 업계가 그동안 자율 규제를 통해 확률 정보를 스스로 공개해온 행보와 상반되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또 확률형 아이템의 핵심 논쟁 중 하나인 ‘변동확률’과 관련해서도 게임 이용자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친게임 진영으로 분류되던 게임 이용자와 학회까지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서는 날선 비판에 앞장서고 있는 양상이다. 이들이 그동안 “게임은 문화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게임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 정부 및 기관의 규제 등에 맞섰던 걸 감안하면 온도차가 느껴진다는 평이다.
실제로 게임 이용자와 학회 등은 WHO(세계보건기구)의 게임 질병 코드 등재, 국내 청소년 게임 셧다운제 등 게임 업계에 불이익이 되는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 움직임을 보인 바 있다. PC 온라인게임 결제 한도 규제의 경우에도 일부 논란의 소지가 있기도 했으나 게임에 대한 차별과 성인의 소비 자유 제한에 반대하는 기조가 형성됐고 결국 문체부가 이를 폐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확률형 아이템 규제 논란의 경우 친게임 진영마저 입을 모아 “규제가 필요하다”고 외치고 있는 형국이다. 이에 대해 이용자들과의 신뢰 관계 형성에 미숙했던 게임사에 ‘원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게임법 개정안에 대한 지지 분위기가 확산되는 가운데 오는 3월엔 셧다운제 개정안 발표가 계획돼 시선이 모인다. 셧다운제는 게임 업계에 대한 대표적인 차별적 규제로 꼽힌다.
셧다운제는 게임 중독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만 16세 미만 청소년은 밤 12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온라인게임에 접속을 할 수 없도록 한다. 지난 2011년 시행돼 2년 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여성가족부가 협의해 재고시하고 있다.
올해 재고시 내용에 셧다운제의 범위가 기존 PC 온라인게임, 콘솔 게임에서 모바일 게임으로 확장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정영애 여가부 장관이 모바일 게임을 셧다운제 대상에 포함시킬 것을 검토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번 게임법 개정안의 내용이 지나치게 확률형 아이템에 쏠리고 있어 경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실제로 이번 개정안에는 확률형 아이템 규제 외에 게임사에 대한 실태조사 의무 부여, 게임 불법 환전 발생에 대한 처벌, 이행강제금 신설, 게임 광고·선전 제한 등 여러 신규 규제가 포함됐다.
한국게임산업협회 관계자는 “앞서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언급은 없었고 그외 다른 (불합리해 보이는)규제에 대한 반박 내용을 중점적으로 담았다. 해당 내용들도 중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