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쿠팡의 ‘미국 갈래’ 사건

2021-02-19     김진욱 편집국장

 

[이코노믹리뷰=김진욱 편집국장] 쿠팡의 뉴욕증시(NYSE) 상장계획 소식에 경제계는 물론 정치권까지 떠들썩하다. 국내 최대 온라인쇼핑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쿠팡이 왜 하필 국내 증시가 아닌 미국 증시를 택했냐는 이유에서다. ‘한국에서 돈을 벌면서 투자 관문은 미국에서 연다’는 비난도 적지 않다.
   
쿠팡의 미 증시행(行)을 뜨거운 감자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차등의결권’이다. 앞서 쿠팡은 12일(현지시간)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면서 창업자인 김범석 이사회 의장에게 차등의결권을 부여했다. 이에 따르면 상장 후 김 의장은 2%의 지분만 가져도 58%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차등의결권은 창업주나 경영자가 자신의 주식 1주 당 여러 개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로, 흔히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된다. '1주 1의결권' 원칙을 따르는 국내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쿠팡이 미국 증시를 택한 계기로 경영권 방어에 유리한 차등의결권을 꼽고 있다. 

하지만 반대 진영에선 애초부터 미국기업인 쿠팡이 미국증시에 상장하는 건 자연스런 수순이란 입장을 편다. 그도 그럴 게, 상장예정 회사는 국내 쿠팡 법인이 아닌 쿠팡의 지분 100%를 보유한 쿠팡의 미국법인 ‘쿠팡LLC’(현재는 쿠팡INC로 사명 변경)다. 김 의장을 비롯해 이사회(12명)를 구성하는 대부분이 미국인이기도 하다.

쿠팡이 쏘아올린 ‘탈(脫) 한국증시’ 행보에 경제계와 정치권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특히 정치권에선 ‘제2의 쿠팡’을 막겠다며 차등결정권에 해당하는 ‘복수 의결권’에 대한 전면 재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쿠팡의 뉴욕 상장과 관련해 “금융위가 반성이나 개선할 부분이 있는지 보겠다”며 자세를 낮췄다.

왜 미국증시를 선택했는지 쿠팡은 공식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로 떠오른 차등의결권이 일정부분 영향을 끼친 것은 맞을 것이다. 하지만 투자유치를 통한 기업성장 차원의 상장을 목표로 삼았던 쿠팡이라면, 상장처의 선택기준은 결국 증시 환경(시스템)이다. 한국보다 미국 증시 환경이 ‘진입’과 ‘사후 관리’에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현재 쿠팡은 막대한 규모의 자금조달이 필요하다. 지난해까지 누적 적자만 4조5000억원, 작년 한해 영업손실만 5800억원이다. 적자 규모를 최근 몇 년 사이 줄여가고 있지만 대규모 자금조달을 위해선 상장심사가 까다로운 국내보다는 미국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들어 중대재해처벌법 등 대기업 대상의 규제 강도가 더해진 것 또한 목적지를 미국으로 잡는 요인이 됐을 수 있다. 실제 쿠팡은 금융당국으로부터 여러번 제재를 받은 경험이 있다. 2019년 전자금융업자의 자기자본 기준(20% 이상)에 미달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경고를 받았고, 쿠팡캐시로 지급한 ‘로켓머니’ 마케팅은 유사수신 행위로 취급받았다.  

쿠팡이 이번 상장신고서에 담은 내용에서도 정부의 규제에 대한 부담감을 드러낸 대목이 있다. 
“한국정부가 규제를 가한다. 경영진은 형사책임을 질 수도 있다.”

국내 1호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기업 쿠팡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은 기업가치를 500억 달러(약 55조1100억원)로 판단했다. 만약 국내증시에 상장했다면 이 정도 가치는 어림없었을 터. 쿠팡의 '미국갈래' 사건을 보면서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과연 한국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