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동진 칼럼 : CEO만 보세요] “어찌, 짐에게 하지 말란 말만 하느냐?”
‘옙!’ vs. “아니 되옵니다!”
예부터 뛰어난 리더십을 보인 성군들 뒤에는 항상 훌륭한 참모들이 있었다. 그 참모들은 대부분의 신하들이 왕에게 ‘예’ 하며 조아릴 때 목숨 걸고 나아가 ‘노’를 말했다. 그리고 왕의 개인적인 안락을 도모하기 보다는 왕이 수고로움을 아끼지 말도록 진언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오해의 질곡에서 목숨이 위태롭더라도, 때로는 멀리 내침을 당하거나 또 어떤 경우에는 오해를 풀지 못해 목이 잘려 나가더라도 한 사람을 위한 만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만인을 위해 한 사람을 보필했다.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장량’, 삼국지연의에서 유비에겐 ‘제갈공명’에 버금가는 몽고제국의 훌륭한 참모로 활약한 ‘야율초재’라는 신하가 있었다. 징기스칸이 눈을 감을 때 아들 오고타이에게 ‘하늘이 내려준 보물’이라며 공경하라고 유지를 남길 정도의 인물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를 잃고 살해의 위협에 늘 시달리면서 무섭게 자란 징기스칸의 명성은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이다. 12세기 말 무렵 그가 칸이 되면서부터 몽골의 기병을 몰아서 거대한 몽골 제국을 만들어 나가면서 유라시아 대륙은 공포의 도가니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살육을 앞세워 무시무시한 정복력을 과시하면서 아시아를 넘어서 유럽으로까지 진공을 멈추지 않았던 징기스칸이었지만,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나 이민족과의 전쟁이나 정사의 중요한 일은 무엇이나 야율초재와 의논하여 그의 말을 좇았다. 그는 몽골 출신이 아니라 한낱 피정복민의 지식인에 불과했다. 이런 야율초재를 두고 훗날의 중국 역사가는 살육으로 점철된 초원의 역사와 법도를 바꾸어 문명에 눈 뜨게 한 유일한 지성으로 평가한다.
예스맨이 훌륭한 신하였던 적은 없어
징기스칸의 뒤를 이은 오고타이칸 역시 아버지의 핏줄을 그대로 물려받은 탓인지 죽이고 빼앗고 뒤집어 엎는 것만 머리에 들어있었던 듯하다. 맨 먼저 대칸의 자리에 오르고 나서 “아버지가 세운 대제국을 개혁하고자 하니, 좋은 방안을 내 놓으라’고 명했다고 한다. 그러자 야율초재는 자꾸 새로운 제도나 법을 만들어 백성들을 번거롭게 하지 말고, 현재 시행되고 있는 것들 중에서 오히려 백성들의 삶을 힘들게 하는 불필요한 것부터 없애나가길 간청했다. 새로운 왕의 호기로운 시작부터 걸고 넘어졌으니, 웬만한 신하의 심성에서는 상상도 못할 것이 아니었을까?
1232년에는 몽골군이 금나라 수도인 개봉을 포위하고 맹공을 퍼부었다. 마침내 성은 함락되었고, 오고타이칸은 여세를 몰아 130만명이나 되는 성안의 백성들을 도륙을 낼 작정이었다. 이때 야율초재가 진언했다. “우리가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전쟁을 하는 것은 백성과 땅을 얻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땅을 얻는다 할지라도 백성이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재물은 풍족하겠지만, 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백성입니다.” 이 말로 수 많은 백성들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봐서 알겠지만, 야율초재가 징기스칸이나 오고타이칸의 말을 잘 듣기만 했으면, 오늘 날의 역사에까지 훌륭한 신하로 전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왕의 심기를 거스르는 말을 하면서도 그런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왕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아첨꾼 같은 신하들에게는 늘 드러난 표적이 됨은 당연하다. 당시엔 ‘전장에서 활 잘 쏘고, 칼 잘 쓰는 것이 으뜸이지 책상물림이 무슨 필요가 있냐?’는 말을 듣는 것은 예사였다. 하지만 그의 직언은 멈춤이 없었다. 그래서 오죽했으면 오고타이가 “짐은 그대가 하는 것은 뭐든지 들어주는데, 어찌하여 그대는 짐에게 하지 말란 말만 하느냐?”고 원망을 했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야율초재는 세 황제 4대를 거치면서 보좌를 했고, 거의 30년간 관직생활을 할 수 있었다. 원이 통일 왕조를 이루는 데 열정을 다 바쳤다. 유학의 부흥을 제창하고 법제를 제정했고, 생산 발전과 경제 번영에도 힘을 쏟아 백성들의 생활은 안정되어 갔다.
우리 선조들 중에도 야율초재와 같은 훌륭한 신하들이 많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왕의 말을 좇기만 한 예스맨이 역사에 길이 남은 경우는 없다.
징기스칸이나 오고타이칸이 가졌던 것처럼 카리스마가 경영을 해 줄 수는 없다. 액션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발산하는 카리스마는 대중으로 하여금 동경을 금할 수 없는 매력이 된다. 카리스마, 사전적인 의미로는 예언이나 기적을 나타낼 수 있는 초능력이나 절대적인 권위를 뜻하는 말이다. 신의 은총을 뜻하는 그리스 말에서 유래한 것인데, 보통 사람들을 따르게 하는 능력이나 자질을 말한다. 때문에 리더십을 카리스마로 일관하여 착각하는 사례가 종종 생긴다.
뛰어난 리더가 카리스마의 자질을 보유하고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세상의 모든 리더가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지는 않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리더들이 기본적인 리더십을 고민하기 보다는 쓸 데 없는 카리스마에만 매달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의 히로인인 조여정이 “넵!” 병에 걸린 중간 관리자로 나오는 커피 광고가 있다. 영화가 먼저인지 광고가 먼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티켓파워를 자랑하는 그녀가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눈길이 간다. 광고 속에서 그녀의 상사가 무엇을 얘기하든 “넵”으로 일관하는 우리네 일상을 보여준다. 후배들 앞에서 제 아무리 똑똑하고 잘 나 보여도 그런 그들의 최상위 포식자 앞에서는 영락없이 토끼 같은 먹이감일 뿐이기에 이렇게 허탈할 때는 커피라도 한잔하라는 뜻인가 보다.
북한산만 그런 것이 아니겠지만 단풍철을 맞아 주말마다 등산객들로 인파가 넘쳐나고 있다. 어제도 집 앞이 시끌시끌하여 내려다 보니 사람들이 서로 다투고 나중에는 경찰까지 출동하며 난리도 아니었다. 대개 그런 싸움은 아재급들이 일으킨다. 또, 그런 싸움의 대부분은 사소한 것에서 빚어진 것이 급기야는 “너 몇 살이야?”로 귀결된다. 그리하여 싸움의 원인은 온데간데 없고 ‘나이가 어린 사람이 버릇없다’는 이유 때문에 사단이 커진다.
고민! 혼자 하면 공상이지만, 함께하면 경영이 된다
어제 사건도 가만히 들어보니, 오후 나절에 하산하는 손님들을 태울 요량으로 등산로 입구 쪽에 택시가 몇 대 주차해 있었고, 그 앞 뒤로는 다른 등산객 및 그 인근에서 일하는 승합차까지 주차해서 복잡하게 된 것에 짜증이 난 등산객이 화를 냈기 때문이었다. 결국 한참을 옥신각신 하던 끝에 욕설이 오갔고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경찰까지 출동했다. 결론은 누가 나이가 많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이도 어린 것들이 어른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조차도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은근히 요구한다. 물론 요즘 세대에서는 받아들여지지도 않고 그래서 ‘아재’라고 평가 절하된다.
모르는 사이에도 ‘어린 놈은 입 다물어’라는 것이 강요되는데, 하물며 학연, 지연, 직급, 직위로 나뉘고 또 나뉜 조직사회는 훨씬 더 심하다.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동기라 하더라도 연줄이 없으면 입 다물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예전에 한석규와 송강호가 나와서 유명했던 영화 ‘넘버3’에서는 “토토토다는 새끼는 배반형이야, 배반형. 내가 하늘이 빨간색이라고 하면 빨간색이야! 현정화라고 하면 현정화야.” 하던 대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제왕의 양 옆으로 칼을 찬 장수들이 즐비한 가운데서도 직언을 하기란 실로 살 떨리는 일이다. 하지만 요즘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하기란 쉽지 않다. 예전 같으면 목이 잘린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남의 땅이라도 파 먹으며 생활이라는 것을 할 수 있지만, 요즘은 파 먹을 땅도 없지 않은가, 사실 알고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열악한 것은 매 한 가지다.
“생각은 내가 한다. 당신들은 시키는 일이나 열심히 해!”라고 강요하던 조직이 있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남의 사무실에 전화기 하나 달랑 놓고 시작했지만,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거치면서 조금씩 사세를 키웠고, 거기에 남들은 한번도 힘들다는 기적을 세 번 정도 맞고 나니 어느덧 천 여명의 임직원에 십 수 개의 기업들을 거느리게 되었지만, 회사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두를 스스로 결정해야 직성이 풀리는 듯 했다.
그 분야에서 국내에서는 본인이 가장 많은 고생을 했다는 자부심이 가득했기에, 그 회사만의 SOP 즉 표준 작업지침서를 직접 만들고 외부에는 엄밀한 비밀에 부쳤다. 직접 만든 귀한 자료였기에 사내 직원들 누군가가 함부로 열람하는 것조차도 허락을 받아야 가능했다. 귀하디 귀한 자료로 고이고이 모셔두었기에 생산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때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를 물어보고 확인하고 허락을 구해야 반영이 됐다.
영업도 매 한 가지여서 노출 할 수 없는 영업 비밀이 수두룩했다. 영업맨들은 당연히 고객들과의 만남 이전에 어느 선까지 어떻게 얘기를 전해야 할 지를 허락을 받았다. 문제는 허락 받은 선까지의 노출이 항상 고객들로 하여금 충분한 이해를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 상황에서는 오히려 고객들이 ‘멍청하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요즘 직원들은 하나 같이 말 귀를 제대로 알아 듣지를 못해!’라는 말을 달고 살다시피 한 그의 휘하에서는 직원들이 전문가로 성장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했다. 신입이든 경력이든 직원을 뽑을 때야 출신과 이력을 따져가며 똑똑하고 알아서 일 잘하는 직원들을 찾았지만, 그런 직원일수록 몇 달을 버티지 못했다. 알아서 일을 잘하는 것이 어찌 보면 가장 금기시되는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느닷없이 불려가서는 ‘어젯밤에 골똘히 생각해보니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어’라며 그저께 내린 결론을 뒤집고, 작은 일들은 직접 챙기고, 큰 일들은 뒤로 미루기만 한다면 결국은 뻔하다. 경영은 고민을 나누어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혼자만 고민한다면 그건 답 없는 망상이나 공상이 될 뿐이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필요한 것처럼 고민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조직은 성장한다. 만인지상 제왕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내게는 하지 말란 말만 하냐?’고 하면서도 그런 신하를 대우해줘야 왕국의 꽃이 핀다. 조직도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