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재계 ‘젊은 총수시대’ 명암?
안정적 경영은 긍정… 경영능력 검증은 숙제
[이코노믹리뷰=김동규 기자]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지난 5월 20일 별세함에 따라 구광모 LG전자 상무가 LG그룹을 이끌어 나가게 됐다. 국내의 다른 주요 그룹도 창업주 3세, 4세까지 내려오면서 한층 젊어진 총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재계에 따르면 구광모 상무는 LG그룹의 4세로 주요 그룹 중 가장 젊은 나이에 총수가 될 것으로 점쳐진다. 삼성그룹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공정거래위원회가 총수로 지정하면서 본격적인 3세 시대를 맞이했다.
SK는 이미 30대에 그룹 총수에 오른 최태원 회장이 2세지만 50대로 ‘젊은 총수’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역시 2세인 정몽구 회장이 있지만 40대인 정의선 회장의 경영 보폭이 넓어지고 있다. 롯데그룹은 60대인 2세 신동빈 회장이 그룹을 이끌고 있다. 국내 주요 5대 그룹 중 롯데만 제외하고는 ‘젊은 총수’ 시대가 열렸다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효성도 조석래 회장에 이어 50대인 조현준 회장이 그룹을 이끌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도 현대가 3세이자 30대인 정기선 부사장이 본격적으로 경영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재계는 올해 안으로 경영권 승계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화그룹 역시 2세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가 30대 기업인으로 차기 한화그룹 총수가 될 것이 유력해 보인다. 특히 그룹 차원의 주요 사업인 태양광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한화큐셀을 이끌고 있어 경영권 승계에서 한화그룹의 다른 2세들보다 앞서고 있다는 평이다.
상속세 부담·경영능력 검증 등 부정의 시선도
이처럼 재계에 젊은 총수 시대가 열리고 있지만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대부분의 재산은 주식이기 때문에, 주식을 물려받을 때 천문학적인 액수의 상속세를 내야 한다는 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의 상속세율은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상속세율인 26.6%보다 2배 가까이 높다.
구광모 LG전자 상무는 ㈜LG의 지분 6.24%를 보유하고 있다. 고(故) 구본무 회장이 보유 중이던 ㈜LG의 지분 11.28%를 상속하려면 약 9300억원의 상속세를 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창업주 3세와 4세들의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도 젊은 총수들이 극복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경제개혁연구소가 지난 2015년에 발간한 <재벌총수일가의 경영권 세습과 전문가 인식도 분석>은 재벌 3세와 4세의 경영세습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보고서는 “무능한 경영인은 자신뿐만 아니라 선의 투자자와 근로자, 공급망이나 유통망 등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면서 “특히 대기업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은 현실에서, 세습경영인의 능력 문제는 경제 시스템을 위협하는 불안요인이 될 수 있기에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창업주 3세, 4세로의 경영권 승계 문제점에 대해 ‘경영능력 검증이 안됐다’는 것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불법·편법 상속, 경쟁 없는 승계, 승계 과정의 불투명성도 우려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재벌 창업주나 2세까지는 그래도 그룹의 성장과정을 함께 해와 경험이 풍부한 반면, 3세와 4세들은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하고 어렵지 않은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많다”면서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재벌 총수는 새로운 형태의 오너리스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한편으로는 젊은 총수들이 교육을 잘 받고, 참신하고 새로운 역동성을 재벌에 가져올 수 있다는 기대도 있지만 리스크가 더 크다고 본다”면서 “국내 주요 재벌그룹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3세와 4세로의 세습이 일어나고 있는 만큼 리스크도 크다”고 덧붙였다.
이런 이유에서 젊은 총수가 있는 그룹은 당분간 ‘전문경영인’ 체제로 갈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부족한 경영능력을 선대 회장을 보필한 전문경영인들로 메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가 “구광모 LG상무의 경우 구본무 회장 옆에 있던 인사들과 함께 당분간 총수 경영과 전문경영인 경영으로 공존해서 갈 수도 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3세 4세 경영권 승계의 긍정 영향은?
창업주 3세와 4세 승계를 보는 긍정의 시각도 있다. 회사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고, 장기 계획을 세워 실적에만 급급해 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개혁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경영권 자녀승계에 대한 장점으로는 △경영권 안정에 기여한다 △해당 기업의 예측가능성에 도움을 준다 등이 꼽혔다.
윤덕균 한양대 명예교수는 “재벌 3세와 4세로의 경영권 승계를 보는 부정적인 시선이 많지만 아예 나쁘다고는 볼 수 없다”면서 “오히려 3세와 4세들이 준비가 잘 돼 있다면 전문경영인 위주로 그룹 경영을 하는 것보다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자본은 오너가 갖고, 경영은 전문경영인이 하는 것이 좋은 형태지만 모든 것이 전문경영인 위주로 가면 단기실적에 급급해 그룹의 10년, 20년 장기계획을 세울 수 없다는 맹점이 있다”면서 “재벌가의 3세, 4세 경영권 승계도 준비만 충분히 돼 있다면 괜찮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윤 교수는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면 한진그룹처럼 재벌 3세로 인한 오너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유럽 가족기업 ‘엄격한 시스템’으로 승계 결정
스웨덴 발렌베리 그룹, 가구업체 이케아, 덴마크 기업인 머스크, 레고, 칼스버그, 노보 노르디스크 등의 북유럽 가족기업들은 저마다의 지배구조와 시스템을 발전시켜 창업자가 설립한 재단이 최대 주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한국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일례로 세계적인 운송·에너지 기업인 AP 묄러머스크는 가족재단이 의결권의 60% 이상을 갖고 있다. 창업자의 개인지분을 재단에 귀속해 가문의 공동재산으로 관리한다. 이를 통해 후계자들의 지분 싸움을 방지하고, 기업의 경영권도 효율적으로 방어하고 있다. 유럽 가족기업 대부분은 가족이라고 해서 무조건 경영 세습을 하지 않고, 엄격한 후계자 선발 시스템을 통해 경영권이 승계되고 있다는 점을 우리 재계는 깊이 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