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농업인열전⑪] 서울도심 한복판에서...도시농업 특구의 꿈
행촌공터, 노원몬드라곤협동조합 고창록 대표 인터뷰
도시농업 인구 150만 시대다. 6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15만에 지나지 않았던 ‘도시 농부’들이 25개 지자체의 참여에 힘입어 10배가 넘는 성장을 했다. 도시농업에 가장 적극적인 지자체는 단연 서울시다. 2011년부터 텃밭 가꾸기, 옥상 농업 등을 시민들에게 적극 권유해 온 서울시는 도심 재생의 일환으로 도시 농업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무악재 일대 ‘행촌공터’는 서울시가 도시농업 시범 단지로 6년째 개발하고 있는 특구다.
이 특구를 가꾸는 데 앞장서 온 고창록 노원몬드라곤협동조합 대표를 만나봤다. 그는 농협대학 1기 졸업생이기도 하다. 고 대표는 자기 자신을 가리켜 “수십 년 간 농업계 밖을 방황하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탕아”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영어교육회사 시사영어사의 간부로 오랫동안 재직하며 ‘마음속에만 농사의 꿈’을 담아 두다 2010년 서울 노원구 하계동 한신아파트 단지에 도시농업 실험을 시작하면서 날개를 폈다. 고 대표를 따라 노원구 하계동 한신아파트 단지에서 서울성곽으로 이어지는 ‘긴 도시농업 이야기’를 들어 봤다.
‘일석삼조 아파트’ 만들려고 도시농업 시작했다
고 대표는 7년 전 시사영어사를 퇴직한 후 동네 주민들에게 뜻하지 않게 제의를 받아 하계동 한신아파트단지의 입주자대표가 됐다. 고 대표는 “그 동안 많은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가 경비용역, 청소용역의 발주 등 관리사무소의 행정에 개입하며 이권을 행사해 왔다”고 지적했다. “우리 아파트에서만큼은 주민들이 직접 관리비 징수, 환경 미화, 경비 직원 분들에게 올바로 지급되는 수당의 산정 절차 등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조금이라도 허투루 쓰는 비용을 아끼고 아파트에 식량 생산 기지를 만들어 주민들이 낸 관리비가 주민들의 농산물로 소비될 수 있는 환경을 꿈꿨다”고 말했다.
'관리비 편익을 100% 주민에게 돌려주는 아파트, 식량 자급이 가능한 아파트, 노인과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아파트'
고 대표의 ‘일석 삼조 아파트’ 비전은 이렇게 만들어 졌다. 노원 몬드라곤 도시농업 협동조합의 시작이었다. 나중에는 경비용역업체나 청소용역업체가 조합 가입을 문의해 올 정도로 ‘일석 삼조 아파트’가 활성화됐다.
고 대표는 “도시농업을 통한 일석삼조 아파트 비전이 주택법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다”고 말한다.
현행법 상으로는 주민들로 구성된 입주자대표회의가 직접 경비용역이나 환경미화 등에 관여할 수 없다. 경비, 환경미화 관련 행정 자격증을 지닌 관리사무소 직원이 해당 업무를 대행해야만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관리사무소 직원은 거주자가 아니다. 주인의식을 갖고 아파트 행정에 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고 대표는 “조합 중심으로 생산적인 아파트를 만들면서, 지역 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는 게 도시 농업”이라고 강조했다. “주민들이 행정 절차에 대해 더 알 권리를 주장하고, 관리비를 내는 만큼 편익을 누리게 해 주고 싶었다”.
서울 행촌마을로 확장된 도시농업 실험
고창록 대표는 노원구에서의 도시농업 실험을 서울 성곽 근처 행촌 마을로도 확장시켰다. 행촌마을도 2011년부터 서울시가 도시농업 특구로 지정한 곳이다. 구 한양도성을 끼고 있는 이 지역은 노후 저층주거지 밀집지역이다. 그렇지만 채광이 좋고 유휴지가 많은 편이어서 주민들이 화분을 집 앞에서 기르는 풍경을 종종 볼 수 있다.
행촌마을은 돈의문 뉴타운과 재개발구역 사이에 있다. 재개발 열풍에 내몰린 두 지역 사이에서 ‘도심재생’의 심볼로 떠오르고 있는 지역인 셈이다.
이 지역에서 도시농업 플랫폼으로 가동되는 ‘행촌공터’는 주민참여형 도시농업 플랫폼이다.
서울시는 행촌공터를 식량 농업을 위한 특구로 개발하지 않고, 교육·복지 차원의 사회문화 공간으로 바꾸는 데 주력했다. 주민들이 도시 농업에 참여하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컨설팅 공간인 식물약국을 세우고, 도시농업 컨설턴트와 주민들이 직접 소통하게 했다. 약초원, 엽채류 재배를 위한 공간 등 목적에 맞는 농장도 만들어 졌다.
고 대표는 “도심 속에서 녹지를 생활 공간에 끌어 들이려면, 스스로 식물을 키우는 습관이 되어 있어야 한다. 화분이나 다육식물을 집 밖에 내놓고 기르는 데 열심인 행촌권 주민들의 태도가 도시농업 특구 지정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경사면 활용한 생산적 도시농업’
행촌권 지역은 비탈이 심한 저층 주거지다. 농사를 지을 때 활용할 만한 땅이 많지 않다. 고 대표는 “전통적인 주택 옥상 말고도 산비탈의 텃밭, 서울성곽 인근에 있는 공터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공원과 같은 도시농업 공간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다”고 밝혔다.
고 대표가 행촌공터의 활성화 비결로 내세우는 또 다른 모델은 ‘교육 차원의 현장 견학 프로그램을 계속해서 만드는 것’이다. 행촌 공터에는 매 시간마다 지역 초등학교, 중학교 학생들이 학습 목적으로 탐방을 하는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고 대표는 “도시농업에는 치유 기능이 있고, 학생들의 감성 순화 등 교육적 기능도 있다"며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지금 실과 시간 비중이 많이 축소돼 있어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 농업을 통해 학생들이 직접 몸을 움직여 공부하고, 협동하는 과정에서 심성을 기르는 훈련이 더 중요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