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VR), 게임시장에 미칠 '나비효과'는

'하드웨어'부터 '비즈니스 모델'까지…지각변동의 조짐들

2016-04-04     조재성 기자

딱히 와 닿지는 않지만 올해가 가상현실(VR) 원년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아직 가상현실을 일상생활에서 충분히 체험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일부 IT 마니아만이 가상현실에 접속하고 있다. 가상현실은 엄밀히 말해 아직 현실이 아니다.

‘가능성’만 놓고 보면 가상현실로 당신이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은 한둘이 아니다. 게임은 물론 영화도 보고 쇼핑도 하고 여행도 갈 수 있다. 실사를 방불케 하는 포르노를 즐기는 것도 가능하다. 모두 당신 거실 소파에 앉아 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이 모든 걸 즐기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가상현실이 현실이 되기에 아직은 벽돌만한 헤드셋을 목에 힘주며 머리에 이고 있어야 하는 시대 아닌가. 콘텐츠를 이야기하기 전에 하드웨어부터 진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린 초기 가상현실 시대를 지나고 있다. 가상현실 생태계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발전할까. ‘게임’이 초창기 가상현실 산업을 이끌고 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가상현실 게임으로부터 시작해 무궁무진한 가상현실 세계가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PC와 콘솔 게임, 가상현실 딛고 모바일 밀어낼까

게임시장은 가상현실의 출현으로 어떤 변화를 맞이할까. 일단 게임 하드웨어 플랫폼의 지각변동이 예고된다. 최근 가상현실 세계에 접속하기 위한 필수 장비인 가상현실 헤드셋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자체 컴퓨팅 기능이 있는 제품보다는 모바일이든 PC든 다른 기기와 연결해 작동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삼성전자 ‘기어VR’이나 구글 ‘카드보드’는 본체에 스마트폰을 결합해 작동하는 제품이다. 중국의 '폭풍마경'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반면 소니 ‘플레이스테이션(플스)VR’, HTC-밸브의 ‘바이브’, 오큘러스VR의 ‘오큘러스 리프트’는 PC나 콘솔 게임기와 연결해 사용 가능하다.

모바일 가상현실 헤드셋 시장은 이미 열렸다. 시중에서 제품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반면 PC나 콘솔과 연동되는 제품들은 앞서 언급한 3종 모두 올해 중에 출시될 전망이다. 이 제품들은 전자보다 게임에 특화된 장비로 여겨진다. 그런 만큼 게임 유저들 관심은 이 제품들에 쏠려 있다.

가상현실의 핵심이 무엇인가. 현실을 방불케 하는 ‘가짜 현실’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놀라운 그래픽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강력한 성능을 자랑하는 하드웨어가 필요하다. 이런 부분에 있어 PC나 콘솔 연동 제품이 모바일보다 더 유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상현실의 등장이 PC와 콘솔게임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너도나도 ‘모바일 퍼스트’를 외칠 만큼 모바일게임 진영이 기세등등한 상황과는 별개다. 현재 가상현실 게임을 원활하게 돌릴 수 있는 고사양 PC는 전 세계에 1300만 대 정도 보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가상현실이 대세로 떠오르면 추가 PC 수요도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엑스박스 원’이나 ‘플레이스테이션4’의 수요도 이끌어낼 걸로 보인다.

'게임사 vs 비게임사' 가상현실 하드웨어 경쟁

가상현실 게임이 높은 수준의 하드웨어 퍼포먼스를 요구하는 만큼 하드웨어 기술 선점 경쟁도 뜨거워질 전망이다. 아직 초기 시장인 만큼 시장을 평정한 사업자는 등장하지 않았다. 그런 만큼 여러 업체가 하드웨어 플랫폼 주도권 경쟁을 펼칠 수 있는 상황이다.

특히 게임 관련 업체와 무관 업체 사이의 대결 구도가 흥미진진하다. 소니의 플스VR은 플스4와 연동해 사용하는 주변기기 개념이다. 소니는 맞춤 게임 콘텐츠를 시의 적절하게 배급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계획이다. 플스4는 시리즈 중 최고 수준인 3500만 대의 판매고를 올린 게임기다. 그만큼 가상현실 유저로 끌어들일 수 있는 대상이 많다는 얘기다.

HTC와 밸브 역시도 게임이랑 떼어놓고 볼 수 없다. HTC는 스마트폰을 선보여 이름을 알린 업체이지만 밸브의 경우 게임 플랫폼 ‘스팀’으로 유명한 회사다. 둘은 가상현실 게임 플랫폼 ‘스팀VR’을 준비해 역시 영향력을 행사할 예정이다. 닌텐도 역시도 가상현실 사업 진출 가능성을 시사했는데, 관련 사업에서 비슷한 이점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페이스북 자회사인 오큘러스VR은 직접적으로 게임과 연결고리가 있는 업체는 아니다. 다만 엑스박스 원과 PC를 아우르면서 가상현실 게임시장 주도권을 쥐겠다는 방침이다. 구글과 애플도 고사양 VR 헤드셋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마찬가지로 게임 사업에 관심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대세 장르'의 변화부터 '가상현실 오락실'까지

가상현실은 게임 장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대세 장르는 무엇인가. 모바일 쪽에서는 캐주얼이나 RPG가 높은 매출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PC나 콘솔의 경우 장르의 폭이 기본적으로 넓다.

가상현실 게임의 경우 1인칭 시점의 게임들이 인기를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FPS(1인칭 슈팅게임)이나 시뮬레이션 장르가 대세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다. 유저들은 가상현실로부터 ‘마치 게임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을 얻고 싶어 하는 까닭이다. 물론 가상현실 게임이 자리를 잡으면서 장르 다변화의 시도가 이어질 것은 분명하다.

가상현실과 게임의 만남이 새로운 비즈니스를 탄생시킬 수도 있다. 예컨대 PC방처럼 가상현실 오락실이 등장하지 않을까. 이미 비슷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일본 반다이남코는 오는 15일부터 도쿄에서 가상현실 오락실 ‘VR 존 프로젝트 아이 캔’을 운영하기로 했다.

VR 테마파크를 준비하는 업체도 있다. 더보이드가 그 주인공이다. 이 업체는 전투기나 자동차를 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모션 시뮬레이터를 설치한 공간을 구축하려 한다. 1호점은 내년 여름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오픈한다. 이후 북미, 아시아, 유럽 등으로 시장을 확대할 계획이다.

'모바일 퍼스트' 공허한 외침 될까

그렇다면 우리 게임업계는 가상현실 시대를 맞아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국내 업계 최대 화두는 ‘모바일 퍼스트’다. 지난해 넷마블게임즈가 모바일게임을 앞세워 PC온라인 전통강자 엔씨소프트를 제치고 국내 매출 규모 2위로 올라섰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모바일이 대세인 시대가 온 것이다.

국내 게임업계는 해체와 재편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게임 생산 생태계가 모바일 맞춤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몇몇 게임사는 가상현실 게임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최근에는 정부가 나서 가상현실 게임 개발을 지원해주겠다고 나섰다.

그렇다면 국내 게임업계는 가상현실 트렌드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한 전문가는 말한다. “가상현실 게임 개발은 자본·기술 집약적인 분야입니다. 모바일보다는 PC나 콘솔 게임 개발 공정과 더 어울립니다.”

국내 게임사들이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이유다. ‘모바일 퍼스트’를 향해 달려나가고 있는 국내 게임사들이 가상현실 시대에 어떤 선택을 내릴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그 선택에 따라 국내 게임업계 생태계의 구조 변동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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