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걷어낸 넷플릭스, 기대와 우려의 본질은?

성공할까, 혹은 실패할까

2016-01-13     최진홍 기자

미국의 OTT 서비스인 넷플릭스가 지난 7일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국내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예상보다 풍부하지 못한 콘텐츠와 상대적으로 낮은 국내 유료방송 비용을 고려하면 찻잔 속 태풍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나오지만, 빅데이터와 큐레이션으로 대표되는 사용자 경험을 무기로 삼아 매니아층을 사로잡고 안정적인 콘텐츠만 수급한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반론도 있다.

넷플릭스 무용론

우선 전제해야할 대목은 넷플릭스의 파급력을 두고 그 성공 가능성에 유난한 호들갑을 떨거나, 혹은 지나치게 시니컬한 비웃음을 날릴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아직 뭔가 보여주기에는 시간이 짧았다.

이런 전제에서 넷플릭스 무용론을 펼치는 쪽은 부족한 콘텐츠, 그리고 가격 경쟁력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사실로 보인다. 마블 데어데블과 제시카 존스, 나르코스, 센스8, 그레이스 앤 프랭키, 마르코 폴로 등과 같은 자체 제작 인기 오리지널 시리즈를 만나볼 수 있지만 생각보다 콘텐츠의 숫자가 적다. 가뜩이나 미국드라마 중심의 콘텐츠 강점은 국내 시청자들에게 한정적인 상황에서, 하우스 오브 카드마저 없다는 것은 다소 충격이다.

심지어 국내 킬러 콘텐츠인 지상파 콘텐츠는 무시해도 좋을 수준이다. 꽃보다 남자와 아이리스 등이 ‘최신 콘텐츠’로 올라와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 근간은 플랫폼 사업자지만 해외시장에서 ‘콘텐츠의 넷플릭스’로 불리고 있다는 점이 믿어지지 않는다.

사실 콘텐츠적 측면에서 넷플릭스가 약점을 노출할 것이라는 전망은 꽤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최근 다소 흔들리고 있으나 아직 국내 시청 환경은 지상파 콘텐츠의 강세가 매섭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영향력이 제한적인 미드만 내세우며 국내 지상파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도 어렵다면, 아무리 훌륭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한다고 한들 성공 가능성은 크게 낮아지기 때문이다. 이미 넷플릭스가 일본에서 처한 상황이다.

그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넷플릭스가 서비스 런칭만을 목표로 다소 ‘서두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통신사 등 다양한 플랫폼 사업자와 협상에 나서며 우위를 점하기 위해 자신들의 능력을 보여주려는 ‘무력시위’를 서둘렀다는 분석이다. 다만 이는 CES 2016에서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 CEO가 기조연설을 통해 한국을 포함한 130여 개의 새로운 국가에서 ‘동시’에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발표했기 때문에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서두른 분위기가 역력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유료방송 가입비와 비교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주장도 상당히 오래된 지적이다. 그리고 이는 사실이다. 넷플릭스 가격을 보자. HD는 월 9.99달러에 2명 동시접속 가능, 11.99달러는 4K까지 지원하며 동시접속을 4명까지 허용한다. SD급 화질 서비스는 월 7.99달러다. 낮은 가격임은 분명하지만 국내 유료방송 비용을 고려하면 ‘상대적 우위’를 가진다고 보기 어렵다. 여기에 인터넷과 전화, TV를 묶는 결합상품을 고려하면 넷플릭스의 요금적 매력은 크게 떨어진다.

높은 요금을 요구하는 유료방송을 끊어버리고 넷플릭스를 선택하는 서구의 코드 컷팅은 최소한 요금적인 문제로 국내에서 벌어지지 않을 전망이다. 여기에 푹과 티빙 등 국내 미디어 콘텐츠 및 플랫폼 사업자의 N-스크린 역량도 상당하다. 이러한 기조는 결국 ‘자연스러운 넷플릭스 소멸론’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넷플릭스, 한 칼 있다

반면 넷플릭스가 국내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쪽은, 실패할 것이라고 보는 진영의 주장을 반박하며 논리를 완성한다. 먼저 콘텐츠적인 문제는 시간이 해결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CES 2016에서 리드 헤이팅스 CEO가 2016년 31개의 신규 TV 시리즈와 시즌, 24개의 오리지널 장편 영화 및 다큐멘터리, 다양한 스탠드업 코미디 스페셜, 30개의 오리지널 키즈 프로그램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힌 것이 그 단초다.

결국 콘텐츠의 부족현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메워질 개연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지난해 11월 넷플릭스는 봉준호 감독의 신작에 <옥자>에 무려 5000만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콘텐츠를 채우겠다는 천명과, 국내 시장을 두고 대대적인 투자까지 약속했다. 이 지점에서 콘텐츠 생산자들은 어떤 판단을 하게될까? 상황을 모색하며 넷플릭스의 역량을 가늠하겠지만, 협력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협력의 가능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또 있다. 넷플릭스가 무리한 수익배분을 요구하고 있어도 끈질기게 협상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통신사 IPTV의 분위기가 단적인 사례다. 넷플릭스의 콘텐츠적 파괴력에 주목한 IPTV사들은 고착화된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는 절호의 카드로 여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한국이 넷플릭스에서 상당히 의미있는 베이스 캠프라는 점이다. 이는 IPTV도 잘 알고있다. 현재 넷플릭스의 서비스 출시국 중 중국은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거대한 내수시장을 가진 중국은 넷플릭스 입장에서 반드시 공략해야할 곳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을 중심으로 전진기지를 꾸린 넷플릭스는 중국에 대한 효과적인 공략을 시도하고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당연히 한국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시장이 매력적인 것이 아니라, 인터넷 인프라 등이 고도화되어 있으며 소위 ‘한류’로 불리는 콘텐츠적 강점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한국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의 배경이다.

여기서 넷플릭스가 한류 콘텐츠에 주목해 국내 콘텐츠 제공자와 가까워지면 어떨까?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지만 넷플릭스가 콘텐츠 제공자와 협력하면 서로 윈윈할 수 있다. 특히 콘텐츠 제공자의 경우 자신들의 콘텐츠를 중국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 뿌릴 수 있는 플랫폼을 확보하는 셈이다.

이러한 전략은 꽤 익숙하다.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미국 아마존의 국내 이커머스 시장 진출 시나리오다. 아마존이 이커머스 측면에서 국내에 진출한다면 국내 브랜드를 해외에 소개하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넷플릭스가 이러한 방식을 시도한다면 콘텐츠 사업자들은 당연히 ‘이득’이다. 그 과정에서 국내 IPTV도 투자를 단행할수도, 함께 다른 일을 찾아볼 수도 있다. 지상파를 비롯한 다른 콘텐츠+플랫폼 사업자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국내 기자간담회에서 나단 프리드랜드 넷플릭스 커뮤니케이션 총괄이 ‘흘린’ 멘트에도 힌트가 있다. 당시 그는 일본에서 콘텐츠 수급에 어려움을 겪지 않았냐는 질문에 “일본에서의 견제는 없었으며, 그들은(콘텐츠 수급자들은) 넷플릭스를 차차 인정하며서 자신들의 콘텐츠를 해외시장에 소개하는 것에 우리가 상당한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하며 “한국의 일반 시청자들이 VOD와 스트리밍에 익숙한 것도 넷플릭스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만약 협력이 이뤄지지 않아도 플랜B는 있다. 가장 중요한 수급 1순위, 바로 지상파 콘텐츠의 성격이 미묘하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유료방송과 CPS 논란을 일으키며 갑중의 갑으로 여겨지는 지상파 콘텐츠가, 이견의 여지는 있으나 의외로 모바일 시청환경에 있어서는 파괴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지난해 모바일 IPTV에 지상파 콘텐츠가 사라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다소 충격적인 사건이었으나 의외로 이용자들의 불만이 그리 크지 않았다. 당시 업계에 따르면 지상파 콘텐츠 중단에 의한 고객 문의·불만은 크지 않았으며 고객 게시판에도 불만의 목소리가 잦아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모바일 IPTV에서 지상파 콘텐츠가 50% 이상의 시청 점유율을 차지했던 것을 감안하면 업계에서도 ‘의외’라는 반응이다.

물론 콘텐츠 경쟁력 측면에서 지상파 콘텐츠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조용함’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견의 여지는 있지만, 인터넷과 모바일에 익숙한 소위 C세대는 생각보다 지상파 콘텐츠에 연연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들은 주로 10대에 분포되어 있으며, 자신이 미디어가 되거나 혹은 미디어와 소통하고 싶어하는 기본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다. 문자 그대로 연결의 가치를 중시하며 주로 동영상을 활용해 타인과의 접점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는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접속(Connection), 창조(Creation), 커뮤니티(Community), 큐레이션(Curation)의 특징으로 만들고 부수고 소통하고 연결하고 잡아내는 일에 익숙하다.

결론적으로 지상파 콘텐츠를 전통적인 방식(지상파 직접수신+유료방송)으로 보는 이용자들은 여전하지만, 인터넷과 모바일로 보는 이용자들은 나이가 어린 C세대며, 이들에게 지상파 콘텐츠는 ‘반드시 필요한 아이템’이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견의 여지는 있으나 이들이 초기 넷플릭스와 같은 OTT의 주 시청자층, 즉 초기 지지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개념이며, 넷플릭스가 쥔 카드가 하나 더 늘어나는 셈이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주목해야할 데이터가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11일 발표한 '2015년 방송매체 이용행태 조사'에 따르면 일상에서 스마트폰의 중요도는 전년 43.9%에서 지난해 46.4%로 높아졌다. 반면 TV의 중요도는 44.3%에서 44.1%로 0.2%포인트 떨어져 스마트폰에 처음으로 뒤졌다. 필수매체를 묻는 질문에는 10대부터 40대까지가 스마트폰을, 50대 이상이 TV를 꼽았다. 변하고 있는 시청환경, 그에 따른 콘텐츠 활용 변화가 의미심장하다.

요금적인 측면에 대한 반론도 탄탄하다. 국내 유료방송 요금이 낮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최근 유료방송 시청행태가 VOD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지상파가 VOD 정산에 CPS 방식을 고집하며 유료방송과 일전을 벌이는 배경도 결국 VOD 시장이 팽창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이는 곧 VOD가 돈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방송시장 VOD 매출액은 총 5674억원으로 2년전과 비교해 30% 이상 증가했다.

이는 필연적으로 유료방송 비용의 상승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넷플릭스도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도 나름 의미있는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

여기에 빅데이터와 큐레이션, 사용자 경험과 같은 새로운 시청환경 경쟁력이 더해진다. 물론 대책없는 빅데이터 환상론은 걷어내야 한다. 하우스 오브 카드가 빅데이터로 스토리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신빙성이 없다고 이미 알려졌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것은 말 그대로 시청 패턴의 변화다. 현재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넷플릭스는 진짜 OTT의 경쟁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C세대와의 콜라보까지 이어질 수 있다.

물론 마냥 밝은 긍정론도, 지나치게 어두운 부정론도 펼치기 어렵다. 미래는 예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넷플릭스로 무언가 국내에도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넷플릭스의 목표는 약간 다른곳에 있고, 우리도 다른생각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