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핀테크, 철저하게 후진적이다
"결제가 전부는 아니야"
핀테크는 금융을 뜻하는 파이낸셜(financial)과 기술(technique)의 합성어다. 모바일 결제 및 송금, 개인자산관리, 크라우드 펀딩 등 새로운 기술의 발전으로 금융 모델의 궁극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프레임이다.
현재 IT 및 금융업계는 핀테크 열풍으로 들썩이고 있다. 당장 국내만해도 대형 IT기업과 은행 및 카드사들은 서로의 이해득실에 따라 핀테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합종연횡을 거듭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3월 LG유플러스, SK플래닛등과 핀테크 업무협약을 맺었으며 이를 현대홈쇼핑과 맺은 전략적 업무협약의 시너지로 삼는 분위기다. 우리은행도 GS리테일과 손을 잡았으며 하나은행은 IBK 기업은행에 이어 다음카카오와 협력해 본격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다.
카드사들도 바쁘다. BC카드는 모회사인 KT와 빅데이터를 접점으로 협력하고 있으며 KB국민카드는 LG유플러스에 이어 중국의 유니온페이와도 손을 잡았다. 은행과 달리 카드사들은 빅데이터에 관심이 많은 분위기다.
전체 핀테크 합종연횡 전장은 더욱 복잡하다. 정리하자면, 다음카카오는 하나은행과 협력하고 KT는 BC카드와 손을 잡는 한편 우리은행을 우군으로 확보했다. 우리은행은 이러한 협력을 유지하며 GS리테일과 협력한다. 신한카드는 SK텔레콤, LG전자와 협력하고 NHN엔터테인먼트는 KB국민카드와 동맹을 맺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합종연횡을 긍정적인 현상으로 본다. 다소 보수적인 금융권이 IT기술의 발전에 과감하게 몸을 실었기 때문이다. 변신을 위한 결단은 그 자체로 평가받을만 하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아직 많이 부족하다. 이제 시작인 상황에서 다소 가혹한 평가지만 초반 집중 포인트가 너무 맹목적이다.
글로벌 핀테크 흐름은 '변화무쌍'
세계로 눈을 돌려보자. 온덱캐피탈(OnDeck)은 조금 특별한 대출정책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은행처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24시간 신속한 대출을 실시하는 곳이지만 대출을 결정하는 기준에 있어 일반적인 시중의 신용평가기준을 무시한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대출을 실시할까? 온덱캐피탈은 자체 가이드라인인 온덱 등급을 마련했다. 그런데 이 등급이 흥미롭다. 온덱 등급은 은행거래 내역 및 신용도, 현금 유동성 등을 고려하면서 대출을 받는 곳이 운영하는 SNS 댓글과 평점까지 평가한다.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사람이 대출을 요청하면 온덱캐피탈은 미국의 대표적인 레스토랑 리뷰사이트인 '옐프'에 접속해 해당 레스토랑의 평판을 살피는 식이다.
결론적으로 빅데이터를 활용해 대출 신청인을 직접 만나지 않아도 정교한 대출 알고리즘을 활용하는 셈이다. 현재 온덱캐피탈의 기업가치는 약 1조5000억 원으로 평가받는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 어려운 소상공인에게 커다란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담보는 필요없다. 대출금은 자동이체를 통해 매월 갚는 구조다. 물론 오프라인 매장은 없다.
트랜스퍼와이즈도 있다. 사람들이 은행을 통해 송금과 환전을 하면 수수료를 물지만, 개인이 이를 직접 하면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 착안해 설립됐다. 금융거래에 있어 신용도를 확보하는데 성공해 다수의 투자유치를 받았으며 최근 누적 송금액은 5조원을 넘겼다. 나쁘게 말하면 '환치기 회사'다.
랜딩클럽은 여유자금을 운용하고 싶은 개인과 돈을 빌리고 싶은 사람의 소규모 비즈니스를 연결해주는 플랫폼이다. 최근 국내에서 논란을 일으킨 P2P 방식을 지향하며, 금리가 낮아 은행에 돈을 넣어도 별 이득이 없는 여유 자산가와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운 사람을 연결해준다.
재미있는 점은 랜딩클럽의 방식이다. 돈을 빌리려는 사람은 그 이유를 랜딩클럽에 올리게 된다. 그러면 랜딩클럽이 일차적으로 이를 검증하고 자산가는 그 채권을 인수, 매달 이자를 받는 구조다. 모든 업무는 온라인에서만 실시되며 랜딩클럽은 4%의 부도율과 1%의 운영수수료를 차치해도 여유 자산가에게 무조건 8%의 수익률을 제공한다. 최근 뉴욕증시 상장에 성공해 10조 원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르노 라플랑쉬가 이끌고 있다.
2009년 독일에서 설립된 피도르 은행은 다소 충격적인 방식으로 은행을 운영한다. 기본적인 은행업무도 수행하며 크라우드 펀딩, 소셜대출까지 아우른다. 하지만 더욱 충격적인 것은 자사 홈페이지 페이스북 홈페이지에 '좋아요'가 많아질수록 예금금리가 점점 올라간다는 점이다. 시장상황과 전혀 상관없다. 피도르 은행에 돈을 예금한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를수록 예금금리가 올라간다.
미국의 모벤스와 비슷한 구조다. 피도르 은행은 '좋아요'가 많아질수록 사회적 신뢰도가 쌓이고 있다고 해석했으며 이는 곧 금융의 신용도로 이어진다고 보는 셈이다. 참고로 피도르 은행은 지난 3년간 7만5000명의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1억 2000만원을 마케팅 비용으로 지불했다고 한다. 고객 1인을 유치하는데 단돈 1600원이면 충분했다는 뜻이다.
학생의 학자금 대출에 특화된 대출업체도 있다. 루이스 베릴의 어니스트다. 어니스트는 첨단 알고리즘과 정보수집을 통해 신용등급이 낮아 합리적인 금리로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운 청년들에게 소액대출을 실시하고 있다. 기술로 리스크(위험)를 극복한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 아틀라스 벤처와 안드레센 호로위츠 등 유수의 벤처캐피탈로부터 투자를 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루이스 베릴의 어니스트 창립배경이다. 2003년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한 22세의 루이스 베릴은 모건 스탠리의 뉴욕본사에 취직했지만 이사비 8000달러를 모을 수 없었다. 모건 스탠리는 이사비용을 추후 환급한다고 말했으나 당장 돈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신용기록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울며 겨자먹기로 프린스턴 대학교 학생 재정지원 사무소에서 연이율 7%에 5년 만기로 8000달러를 대출받았다. 이는 6개월만에 모두 갚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6년 후 하버드 대학원에서 진행중이던 석사과정과 MBA 학비가 문제였다. 연방정부에서 연이율 6.8%에 2만500달러의 학자금 대출을 받아 급한불을 껐지만 추가대출을 받으려면 이자가 무려 7.9%로 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루이스 베릴은 대출연체 기록도 없었지만 은행에서는 무조건 높은 이자와 더불어 연대보증까지 요구했다고 한다. 그가 촉망받는 젊은인재이자 강력한 수입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셈이다.
결국 그는 청년의 미래잠재력을 정교한 기술력으로 판단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해 창업전선에 나섰다. 청년 학자금 대출기업 어니스트 창립배경이다.
이 외에도 흥미로운 글로벌 핀테크 기업은 많다. 어펌은 이름과 이메일, 전화번호 등만 기록하면 온라인에서 물건을 살 때 할부를 조건으로 대출을 실시한다. 어떻게 가능할까? 어펌은 이용자가 이름을 입력할 때 대문자로만 입력하는지, 소문자와 섞어서 입력하는지까지 파악하고 비공개DB까지 파악한다고 한다. 또 웰스프론트는 인공지능이 기술기반의 자산관리 솔루션을 제공한다.
글로벌 핀테크 흐름, '다르다'
글로벌 핀테크 시장은 국내와 약간 다르다. 아직 초기단계에 머물러 있는 국내 시장이 대기업을 중심으로 조금씩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면 글로벌 시장은 스타트업이 화두로 부상하는 분위기다. 글로벌 핀테크 기업들은 기존 금융회사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틈새시장을 노리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여기서 '기술'이 합류한다. 이러한 기술적 진보는 다양한 핀테크의 잠재력을 끌어 올리는 분위기다. 지금까지 없었던 빅데이터 및 다양한 솔루션을 알고리즘으로 체화시켜 스스로의 기준을 만들어낸 대목이 재미있다. 이러한 행보는 자연스럽게 틈새시장의 발견으로 이어지는 메비우스의 띠다.
이 지점에서 문제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불가능한가?' 현재 국내 핀테크 시장은 지나치게 간편결제 중심으로 쏠려있다. 하지만 간편하게 결제하는 것은 신용카드로도 충분하다. 그 이상의 '메리트'를 보장해 소상공인 및 청년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야 하지만 많이 부족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제조중심의 DNA다. 근거리 무선통신 기반의 삼성페이를 핀테크의 중심으로 삼는 우리의 풍토는 결국 제조업 마인드의 치우침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여기에 제도적 문제가 겹친다. 지나친 규제가 기술적 완성도를 자랑하는 국내 핀테크 시장을 가두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바일 결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삼성전자와 구글, 애플에 이어 MS도 슬그머니 '페이 쟁탈전'에 돌입한 사례가 극적이다. 알리페이는 대단한 기술이며, 알리바바는 그래서 더욱 무서운 기업이다. 하지만 지나친 '간편결제 쏠림'은 분명 문제다.
최근 삼성SDS는 생체인증 솔루션을 활용한 기업형 모바일 보안 솔루션을 통해 핀테크 시장을 노린다고 천명했다. B2B 기업을 지향하는 삼성SDS다운 행보다. 보안과 핀테크를 연결하는 부분도 긍정적이다. 이는 결국 양날의 칼이다. 보안과 결제를 연결하는 것은 정답에 가깝지만, 그 이상의 핀테크 인프라도 분명 나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핀테크는 철저하게 후진적이다. 기존의 금융권이 해내지 못하는 일을 수행하고, 더욱 편리하고 파격적인 솔루션을 개발(이미 기술력은 올라왔다)해 핀테크의 넓은 영역을 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쓸데없는 제약과 제도는 과감하게 털어내야 한다. 액티브엑스를 없애고 exe를 대신하게 만든 대한민국 정부의 '헛발질'이 핀테크 시장에도 계속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