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여도 좋은 노년의 여행

2014-05-18     이코노믹리뷰 컨텐츠기획팀

인천공항에서 탑승수속을 밟기 위해 한 무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줄지어 서 있다. 등에는 여행용도가 분명한 배낭을 메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음을 옮기는 그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입가에는 설레는 미소가 걸려 있고 걸음걸이는 건강해 보였다. 늘그막에 찾아온 여행이 그들에게 젊음의 영혼까지 되찾아준 듯이 보였다.

최근 TV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흐름이 ‘아빠와 함께하는 놀이, 여행’에서 ‘군대생활 체험’을 거쳐 ‘노년의 여행 버라이어티’까지 확장되고 있다. 칠순과 팔순의 현역 남자 탤런트로 팀을 꾸린 여행체험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건 우리나라 여행시장의 주역이 청장년층에서 중노년층으로 옮겨가고 있는 세태도 반영된 것이리라.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50대 이후 세대를 두고 ‘벌 줄만 알았지, 쓸 줄도 놀 줄도 모르는 세대’라고 했다. 하지만 이들은 젊은 날 통기타를 메고 낭만을 노래하며 야간열차에서 밤을 지새우던 세대들이다. 그러니 안락한 운송수단과 숙박시설에 익숙한 요즘 젊은이들을 향해 “니들이 여행의 참맛을 알아?” 하고 외칠 만도 하지 않은가.

중장년층의 해외여행, 고려할 점은?

한때 나라 밖 구경 한 번 하는 게 소원이던 시절도 있었지만, 1988년 해외여행 자유화가 된 이후로 이제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너무나 많은 시대가 됐다. 2012년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는 2011년 한 해 동안 총 9억 8천만 명이 해외를 여행했다고 발표했으며, 2013년 현재는 10억 명을 돌파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우리나라 해외여행객 수도 1,373만 명에 이른다. 그렇다면 이제는 여행의 양과 질을 꼼꼼히 생각해봐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1 되도록 여행 성수기를 피하자여행객이 몰리는 휴가철, 방학 시즌에는 경비가 오르고 나이 든 여행객에 대한 특별한 배려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시간이 자유롭다는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서 비성수기에 떠나면 여행비도 할인받고 대접도 그만큼 잘 받을 수 있다.

2 내가 주체가 되는 여행을 하자자녀가 보내주는 여행이라고 해서 모든 선택권을 그들에게 맡기지 말자. 대부분 효도여행상품은 안전제일주의로 여행지와 일정을 짠다. 그만큼 밋밋하고 재미없는 여행이 될 수도 있다. 경비는 자녀가 대더라도 여행의 목적을 스스로 정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자.

3 낯선 만남에 대한 설렘을 즐기자부부, 동창생, 친목회 등 꼭 익숙한 친지들과의 동반여행만을 고집하진 말자. 낯선 만남 속에서 새로운 활기를 찾고, 사교범위를 확대하는 것도 여행의 즐거운 보람이다.

4 멀고 길게 내다보고 장기적인 플랜을 세워보자요즘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관심사는 ‘휴식’과 ‘힐링’이라고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휴양지에서 푹 쉬기만 하는 여행이 진정한 휴식과 힐링을 보장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여행지를 선정하는 것은 나름 흥취를 주지만, 미술관·박물관 순례, 자원봉사 여행, 역사 유적지 탐방, 혹은 외국어 학습과 이어진 체험여행과 같이 구체적인 테마로 여행지들을 엮어서 순차적으로 하나하나 방문하고 나만의 경험정보를 글로 남겨보면 여행의 의미와 보람이 좀 더 커지지 않을까. 미국에서는 평생교육과 여행을 접목한 ‘에듀케이션 트래블(education travel)’이 신노년층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이 여행의 콘셉트는 여행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친구를 사귀는 것인데 무엇보다 ‘여행이 새로운 인간관계의 리(re)디자인’이란 점을 강조하고 있다.

낯선 여행지에서 행복의 의미를 되새기다

일찍이 바그너가 말했다. “여행과 변화를 사랑하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다”라고. 우리는 뭔가 이국적이고 낯선 곳에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그리하여 우리는 익숙한 곳에서보다는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많은 것을 받아들이게 되고,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에서 더 큰 위안과 더 큰 재미와 더 큰 감동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여행이 갖는 최고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보통 삶에서 뭔가 전기가 필요할 때 여행이나 한번 다녀와서 심기일전하라는 충고를 많이 하는데, 은퇴 이후 제2의 삶으로 도약하기 위한 준비과정에도 여행은 아주 효율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다. 젊은 시절 자신을 힘들게 채찍질하며 살아왔다면 이젠 나를 위한 휴식도 필요하다. 가족을 위한 희생양, 조직의 소모품 같았던 자신을 보듬어주고 사랑하며 스스로 자존감을 회복해야 한다. 은퇴 후에는 가족 간에 마찰도 많이 생기는데, 그럴 때 혼자 훌쩍 여행을 떠나서 새로운 관계설정을 고민해보는 것도 좋은 해결방법이 될 것이다.인생이 결과가 아닌 과정이듯, 여행도 목적달성보다는 과정에서 더 많은 의미와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여행지를 다니며 직접 얻는 견문도 물론 소중하지만, 그 이전에 온갖 정보를 뒤적이며 여행지를 정하고, 시기를 저울질하고, 각 지역의 맛집과 숙소를 탐색하며 느끼는 설렘과 흥분, 그것을 어떤 즐거움과 바꿀 수 있을까.혹시 당장 여행을 떠날 형편이 못 된다 하더라도 낙담할 필요는 없다. 언제든 여건이 허락될 때 주저 없이 떠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의 여행계획을 짜면서 짜릿한 행복감을 맛보면 될 일이다. 그리고 때가 왔을 때 망설임 없이 실행하면 된다. 준비된 자만이 언제든 떠날 수 있을 것이니.

본 기사는 건강소식 제 2013.8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