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아웃 걱정 없는 신재생에너지 다시 주목
전력난과 환경문제 해소는 물론 가스료ㆍ전기료 걱정 뚝
해마다 여름이면 전력난이 반복됐다. 특히 전국적으로 35도를 오르내리는 불볕더위로 전력수요가 급증하면서 전력공급 예비력이 350만㎾ 밑으로 떨어져 블랙아웃 위기까지 거론됐다. 이에 따라 반복되는 피크전력 문제를 해결하고 원자력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신재생에너지가 주목받고 있다.
강원도 삼척시에 위치한 ‘삼척그린파워.’ 2014년 3월 준공 예정인 이 공동주택은 외부 전력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자체 발전기능을 갖춘 건물이다. 냉ㆍ난방에 필요한 모든 에너지가 지하에 설치된 지열 시스템을 통해 충당된다. 지열 시스템에 필요한 전력은 건물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을 통해 공급되는데 여름에는 대기보다 상대적으로 차가운 땅속 온도를 냉방에 활용하고, 겨울철에는 따뜻한 지중열을 흡수해 난방하는 방식이다. 즉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건물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100% 생산한 것이다.
삼척그린파워, 에너지 100% 자족 꿈의 주택 눈앞
공동주택으로 설계ㆍ발주한 한국남부발전 측은 “국내 최초로 자체 에너지 생산시설만으로 100% 냉난방이 가능한 꿈의 공동주택”이라며 “여름철 폭염과 겨울철 강추위가 반복되는 최근의 기후 변화 속에서 냉난방 비용에 대한 걱정을 줄여줄 수 있는 친환경 주택이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건설업계 화두는 에너지 효율이다. 올 초 주택용 전기요금 인상에 이어 도시가스 요금과 하수도 요금이 각각 4% 이상 인상되는 등 향후 에너지 사용과 관련한 관리비 인상이 불가피해 ‘에너지 고효율 아파트’를 위한 설비를 적극 도입 중이다. 이에 따라 GS건설, SK건설, 두산 건설 등 주요 건설업체들은 태양광, 풍력 등 자연에너지를 이용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거나 단지 내 태양광 시스템 등 에너지 절감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실제 두산건설이 경기 고양 탄현동에 분양 중인 ‘일산 두산위브더제니스’는 태양광, 풍력 등 자연에너지를 이용해 표준주택 대비 37.6%까지 에너지를 절감한다.
전력 생산방식 신재생에너지로 바꾸는 선진국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고효율 에너지화는 해외에서도 높은 관심을 끌고 있다. 신재생에너지는 에너지 절감뿐만 아니라 환경문제와 성장, 고용을 동시에 해결해줄 수 있는 녹색성장(green growth)의 대표적인 신산업으로 2000년대 중반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미국의 경우 2003년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이후 전력 생산방식을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했다. 2003년 8월 14일 당시 뉴욕, 뉴저지 등 미국 동북부 전역과 캐나다 일부 지역이 최고조에 달한 전력 수요량과 노후된 전력망으로 전력 공급이 전면 중단된 것이다. 5000만 명이 넘는 시민이 사흘 동안 공포와 불편함에 시달렸으며, 60억달러(약 6조6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이후 미국 정부는 예상치 못한 블랙아웃의 위협을 피해가기 위해 전력 생산방식을 바꿨다. 유지비용이 많이 드는 석탄과 원자력 발전은 점점 줄어드는 반면에 풍력ㆍ태양광 발전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으로 지금까지 추진하던 ‘Sun Shot Initiative’ 프로그램 등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지원이 유지될 전망이고, 정부와 주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지원으로 2012년 1분기 태양광 발전량은 전년 대비 85% 급증한 506MW를 기록했다.
일본도 국가적 차원에서 신재생에너지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후쿠시마 재앙 이후 원자력 발전소의 가동이 잇따라 중단되면서 전력 확보를 위해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2011년 발전차액지원제도(FIT)를 기반으로 하는 신재생에너지 특별법을 시행해 민간 주도의 태양광 발전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재생에너지 보급 제도 덕분에 2011년 신축 주택의 58%가 태양광을 설치했고, 태양광 누적 도입량은 매년 30% 이상 성장하고 있다.
독일은 신재생에너지를 가장 잘 활용하는 나라로 꼽힌다. 2013년 7월 현재 독일 전역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 설비는 130만 대를 넘겼으며 발전용량은 34.6GW에 이른다. 독일은 위도가 높아 일조시간이 우리나라의 65%에 불과하지만 대규모 태양광 시설을 설치해 피크타임 전력부하를 줄이고 화석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있다. 독일에서 태양광 발전이 급속히 증가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2000년에 제정된 독일 재생에너지법(EEG)에 기인한다. 이 법의 핵심은 발전업자들이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원으로 생산되는 전기를 우선 구매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이런 정책적 지원에 힘입어 독일 내 태양광 발전 규모는 2004년 1.1GW에서 2012년 32.6GW까지 연평균 50% 이상 성장했다.
태양광 사업, 미미한 정부정책, 위기 속 투자하는 기업
2000년대 이후 태양광을 포함한 신재생에너지는 각국의 전력난과 환경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주요 에너지 자원으로 부상했다. 특히 여름철에 전력 과부하 문제를 해결하기에 적합한 전력원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각국의 중앙정부는 재생에너지를 통한 전력 확보를 위해 정책적∙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반면 한국은 다른 국가에 비해 재생에너지에 대한 지원이 미미한 수준이며 투자 또한 저조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 전체 전기 발전량 중 신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2002년 1.1%에서 지난해 2.3%로 10년 동안 1.2%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쳤다. 국자중 태양광산업협회 부회장은 “정부가 지난해부터 국내 발전사업자 13곳을 대상으로 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화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목표치가 너무 낮아 성장세가 더디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2027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12%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를 설정했지만 업계에서는 실질적인 지원 방안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2012년 국내 재생에너지 투자는 2010년 대비 42% 감소했고, 재생에너지 투자에서 지난 5년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에너지 전문가는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앞으로 재생에너지 산업의 주도권을 중국과 유럽에 넘겨줄 뿐만 아니라 전력난도 계속될 것이다”고 말했다.
정부와 달리 기업들은 재생에너지 사업에 적극적이다. 풍력은 아직 산업화 초기단계로 큰 진척은 없지만, 태양광 사업은 두드러진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실제 한화그룹은 세계 3위의 태양광 회사로 발돋움하며 글로벌 태양광 시장을 본격적으로 주도하고 있다. 한화는 큐셀 인수로 ‘폴리실리콘(한화케미칼)-잉곳ㆍ웨이퍼(한화솔라원)-셀ㆍ모듈(한화솔라원+큐셀)-발전(한화솔라에너지)’의 수직계열화에 성공했다. 2008년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로 태양광 시장이 극심한 침체기에 직면했지만, 태양광 사업의 수직계열화를 완성하며 차근차근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한화 관계자는 “태양광과 같은 미래 신성장사업은 장기적인 시각에서 투자가 필요”하다며 “지금 당장 눈앞의 이익이 불확실하지만, ‘사업보국(事業報國)’이라는 한화그룹의 창업정신에 따라 태양광 사업을 키워나갈 것이다”고 전했다. 이러한 지속적인 투자로 최근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3개 지역에 건설되고 있는 42.5MW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 건설 수주에 성공했고, 일본 스미토모(Sumitomo)와 일본전신전화주식회사(NTT)가 추진하는 태양광발전 프로젝트에 60MW 규모 G3 모듈을 공급하기로 하면서 글로벌 시장 개척에 속도를 내고 있다.
또한 태양광 사업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다보스포럼이 열리는 다보스시에 태양광 모듈을 기증해 다보스포럼의 친환경정신에 동참했고 전기와 전력 사용이 어려운 소외계층을 위해 2011년부터 전국의 사회복지 시설에 태양광 발전설비를 무료 설치해주는 ‘해피선샤인(Happy Sunshine)’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민간기업의 활발한 활동에 발맞추기 위해 정부도 재생에너지에 대한 정책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신재생에너지 활성화 방안’이 그중 하나다. 이번 정책 발표로 지난해 발전차액(FIT)에서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RPS)로 전환한 이후 미비점을 보완할 것으로 예측되며, 침체된 국내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