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6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애플 파크에서 열린 ‘세계 개발자 컨퍼런스(WWDC) 2023’를 통해 애플 비전 프로(Vision Pro)를 전격 공개했다. 9년 만에 등장한 애플의 'one more thing'이자 증강현실(AR)을 넘어 혼합현실(MR)을 아우르는 공간 컴퓨팅 카드다.

애플은 비전 프로를 통해 메타버스를 포함한 플랫폼 전략을 가동하면서 MR을 통한 컴퓨팅의 미래까지 정조준했다. 메타버스라는 개념을 미래 컴퓨팅의 타깃으로 설정한 메타 등과는 또 다른 파격이라는 평가다.

애플 WWDC 2023. 사진=연합뉴스
애플 WWDC 2023. 사진=연합뉴스

애플 비전 프로는?
애플 비전 프로는 스키 고글 형태며 새로운 운영체제인 비전OS를 바탕으로 가동된다. 아이클라우드를 바탕으로 다양한 애플 생태계와 연결되며 별도의 콘트롤로가 없어도 디지털 콘텐츠를 자유자재로 즐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고글 형태의 애플 비전 프로를 착용하면 온라인의 다양한 콘텐츠를 생생하게 즐길 수 있으며, 이를 오프라인의 생산성 증가에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다. 4K 디스플레이와 공간 음향을 지원하며 멀티 태스킹도 가능하다. 아이 사이트 기능을 통해 비전 프로 활용을 방해받지 않는 기능도 있다.

마이크로OLED로 디스플레이 부분을 메웠고 자체 제작한 M2칩을 탑재했다. 여기에 12밀리초 안에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R1칩도 들어갔으며 글래스 자체가 하나의 폼팩터로 연결될 것도 특징이다. 가격은 3499달러부터 시작되며 2024년 미국을 시작으로 출시된다. 

애플 비전 프로. 사진=애플 홈페이지
애플 비전 프로. 사진=애플 홈페이지

 

"컴퓨팅의 미래"
비전 프로는 증강현실에 바탕을 둔다.

증강현실은 컴퓨터 그래픽 등을 통해 어떤 특정한 환경이나 상황을 그대로 본떠 실제와 아주 유사하게 만드는 가상현실과는 개념이 약간 다르다. 가상현실이 현실세계와 완벽하게 차단된 개념이라면, 증강현실은 가상의 세계를 현실과 연결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현실 세계를 배경으로, 그 위에 컴퓨터로 만든 3차원의 가상 이미지를 겹쳐 하나의 영상으로 보여주는 기술을 말한다. 영화 <아이언맨> 주인공이 쓴 헬멧도 증강현실 기술을 적용한 것이다.

영화 아이언맨의 장면. 사진=갈무리
영화 아이언맨의 장면. 사진=갈무리

한 발 더 나아가면 혼합현실이라는 개념을 만날 수 있다. 1994년 폴 밀그램(Paul Milgram)과 푸미오 키쉬노(Fumio Kishino)가 처음으로 정의한 용어이며 일반적으로는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모두를 지원하는 개념으로 통용된다. 일각에서는 증강현실과 혼합현실의 개념이 같다고 보지만, 혼합현실은 증강현실에 바탕을 두면서도 가상현실까지 포함한다는 개념으로 이해하며 편하다.

애플은 증강현실에 집중한 바 있다. 2013년 이스라엘 회사 프라임센스는 물론 플라이바이미디어(FlyBy Media), 메타이오(Metaio) 등 관련 스타트업을 인수했으며 2017년 애플 직원이 증강현실 기반 스마트글라스 프로토타입 제품을 시험하다 눈에 부상 입었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언론을 통해 유출되기도 했다. 

아이폰을 통해서도 꾸준히 가능성을 타진했다. 2017년 아이폰8에 들어간 A11과 GPU, CPU 모두 아이폰의 증강현실 인프라를 지원하기 시작했으며 2020년에는 가상현실 전문 스타트업 넥스트VR(NextVR)까지 인수했다.

애플은 여세를 몰아 이번 비전 프로 공개를 통해 혼합현실의 판으로 진격하고 있다. 증강현실 기초체력을 착실히 쌓아올린 상태에서 혼합현실을 통한 다양한 가능성 타진에 나선 셈이다.

그 파괴력 전망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린다. 우선 비전 프로가 애플의 강력한 콘텐츠 생태계를 통해 발 빠르게 안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현재 애플은 애플TV, 애플뮤직은 물론 최근 일본을 시작으로 웹툰 사업에 뛰어들정도로 콘텐츠 전략에 드라이브를 거는 중이다. '탈' 하드웨어 아이폰을 끊임없이 모색하는 가운데 강력한 디지털 콘텐츠 생태계를 창출할 수 있었으며 이를 비전 프로의 혼합현실로 연결하면 단기간에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마이크로LED와 공간 음향 등의 기능을 바탕으로 TV의 시대를 새롭게 정의할 것이라는 과감한 전망도 있다. 

다만 3499달러라는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에 완충시 2시간 사용이 한계라는 점은 우려스럽다. 나아가 애플의 디지털 콘텐츠는 '이제 시작'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아직 증명해야 할 것들이 많으며 마이크로LED 등을 통한 TV 시대의 종말을 운운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만만치않다. 대다수의 가정에서 TV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거실에 주로 위치하며, 개인화 TV 시대의 비전은 3DTV의 실패로 이미 타격을 입은 바 있기 때문이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메타버스, AI 뛰어넘다...공간 컴퓨팅
비전 프로는 애플의 첫 혼합현실 하드웨어 플랫폼이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으나 아직은 보여줘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았다. 다만 싸움이 장기전으로 흘러갈 경우 애플의 비전 프로 카드는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낼 수 있는 회심의 카드가 될 가능성도 있다.

WWDC 2023이 끝난 후 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은 비전 프로를 통해 애플이 메타버스 시대에 진입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하는 중이다. 부분적으로는 사실이지만 큰 그림으로 보면 잘못된 표현이다. 애플은 메타버스를 포함한 공간 컴퓨팅, 나아가 '미래 컴퓨팅 진화'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애플은 메타버스에 회의적이다. 팀 쿡 애플 CEO는 2022년 9월 네덜란드 RTL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메타버스를 정의할 수 조차 없다"면서 "솔직히 메타버스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발언한 바 있다. 시장에서는 애플이 소프트웨어를 제작하는 것보다 아이폰이라는 하드웨어를 판매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며, 증강현실이라는 기술을 자사 콘텐츠 생태계 전반의 '지원 플랫폼'으로 생각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021년 12월 미국 특허상표청(USPTO)에 리얼리티 OS(RealityOS) 상표를 제출한 바 있으며 2022년 8월말에는 페이퍼 컴퍼니 이머시브 헬스 솔루션 명의로 리얼리티 원(Reality One), 리얼리티 프로(Reality Pro), 리얼리티 프로세서(Reality Processor) 등의 상표를 연이어 신청했으나 이는 모두 증강현실과 관련된 준비물들이라는 점에 무게가 쏠린다.

애플의 길이 메타 퀘스트 시리즈를 쏟아내는 메타버스의 메타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은 생태계 전략의 차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당장 메타는 SNS 정체성을 바탕으로 연결에서 커뮤니티로 진화하는 그림을 메타버스로 투영시키려 한다. 한 때 가상자산 플랫폼을 통해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하려고 했으나 규제의 벽에 부딪친 후 그 또 다른 세계의 목표로 메타버스를 점지한 상태다.

이에 반해 애플은 증강현실을 기반으로 하지만 하드웨어에 더 집중하며 메타버스 전반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나아가 메타는 메타버스 전략을 가동하며 메타 퀘스트 프로를 통해 개방형 생태계를 지향했으나 애플은 특유의 폐쇄형 생태계를 통해 개인화에 방점을 찍은 증강현실에만 우직하게 집중했다.

애플이 그럼에도 비전 프로와 같은 증강현실에 기반을 둔 플랫폼을 개발한 것은, 메타가 지향하는 메타버스와는 상관이 없는 더 큰 전략인 미래 컴퓨팅의 미래라는 상위 개념에 주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MS의 홀로렌즈로 마인크래프트를 즐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MS의 홀로렌즈로 마인크래프트를 즐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실 미래 컴퓨팅이라는 개념은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가 지향하며 크게 주목받던 가치였다.

당시 개인으로 시작된 사용자 경험이 불특정 다수와도 연결되지만 핵심은 결국 '개인'이며, 이를 통해 강력한 몰입감을 제공하는 '컴퓨터를 사용하는 법'이 바로 미래 컴퓨팅이라는 점이 재확인됐다. 그 연장선에서 미래 컴퓨팅의 핵심으로 부상한 공간 컴퓨팅은 언제 어디서든 자유로운 컴퓨팅 환경을 통해 몰입감이 넘치는 온라인에 접속할 수 있는 개념으로 여겨진다. 말 그대로 내가 속해있는 물리적인 공간의 제약을 무시하고 온라인 공간을 펼쳐내거나 혹은 중첩시킬 수 있다. 

스마트폰의 한계를 원천적으로 파괴한다는 점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개념이다. 증강현실 글래스가 지향하는 것이 바로 '스마트폰을 주머니에서 꺼내 확인하는 과정 환경마저 무시하고 안경을 착용하고 있는 일상에서 온라인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것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공간 컴퓨팅은 곧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완벽하게 만나는 세상에서의 '컴퓨팅 방식'이라는 뜻이다.

그 연장선에서 애플의 비전 프로는 증강현실도, 혼합현실도, 메타버스도 아닌 컴퓨팅의 방식을 바꿔버리는 플랫폼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몰입감 넘치는 강력한 디스플레이와 애플의 강력한 생태계와 연결되는 기능, 특히 콘트롤러가 없어도 시선만으로 조작할 수 있는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애플이 비전 프로를 통해 공간 컴퓨팅에 '올인'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애플 비전의 방향성이 증강 및 혼합현실과 메타버스의 형식과 방식에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팅의 패러다임 전체를 집어삼켰다는 뜻이다.

팀 쿡 애플 CEO. 사진=연합뉴스
팀 쿡 애플 CEO. 사진=연합뉴스

팀 쿡 애플 CEO의 멘트에도 힌트가 있다. 그는 WWDC 2023 기조연설에서 "컴퓨팅 방식에 있어 이번 행사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라며 “맥이 개인 컴퓨터, 아이폰이 모바일 컴퓨팅의 시대를 열었던 것처럼 애플 비전 프로는 우리에게 공간 컴퓨팅을 소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많은 경쟁자들이 기차와 자동차, 비행기, 전지 자전거 등 다양한 이동수단을 고민할 때 애플은 비록 기술적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순간이동 기술을 시장에 내놓은 셈이다. 여기에는 애플이 지금까지 출시한 혁신적인 하드웨어가 세상의 규칙을 바꿨던 성공적인 경험도 녹아있다. 일종의 자신감이다.

애플은 이번 프로를 통해 미래 컴퓨팅의 '비전'을 공간 컴퓨팅에 투영시켰고, 9년 만에 아이폰처럼 새로운 인터넷 시대의 '글로벌 기준'을 발표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성공 여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애플의 공간 컴퓨팅이 개인화에 방점을 찍은 상태에서, 과연 3DTV와 실패한 증강현실 제조사들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 때문이다.

한편 애플은 WWDC 2023에서 글로벌 빅테크를 강타하고 있는 AI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없었다. 애플이AI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애플의 이러한 계획된 무관심은 오히려 AI가 모든 서비스에 작동되고 스며드는 '일상의 공기'가 되고 있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