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관련한 배터리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가장 앞서가던 일본 기업들이 신중론을 펼치는 사이 K배터리3사가 질주하다, 최근 중국 기업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업계는 앞으로 4년이 배터리의 미래를 좌우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LG에너지솔루션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 1분기에도 세계 1위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CATL이 중국 외 시장에서도 크게 성장하며 LG에너지솔루션과의 점유율 격차를 지난해 1분기보다 절반 이상 줄였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가 5월 8일 발표한 올해 1분기 중국을 제외한 세계 각국에 판매된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이 19GWh(기가와트시)로 세계 1위를 고수했다. 이어 CATL이 15.6GWh, 파나소닉이 11.9GWh, SK온이 7GWh, 삼성SDI가 6.5GWh로 그 뒤를 이었다. 전체적으로는 64.2GWh로 지난해 44.2GWh보다 45% 늘었다.

세계 1위와 4위, 5위 자리를 한국 기업이 차지했지만 이들의 점유율은 계속 줄고 있다. 반면 중국 업체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K배터리3사 올해 1분기 점유율은 49.1%로 지난해 1분기 54.1%에서 5.0%포인트가 하락했다. 일본 기업 파나소닉과 PEVE도 같은 기간 19.5%로 20.4%에서 0.9%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중국 배터리 회사인 CATL과 BYD, AESC, Farasis, Sunwoda는 같은 기간 29.4%로 23.8%에서 5.6%포인트 상승했다.

중국 시장 제외시 K배터리3사 세계 1‧4‧5위

1위인 LG에너지솔루션은 같은 기간 28.0%로 29.4%에서 1.4%포인트 준 반면, 2위인 CATL은 24.3%로 19.7%에서 4.6%포인트 올랐다. 1위와 점유율 격차는 2022년 1분기에 9.7%포인트에서 2023년 1분기 3.7%로 무려 6%포인트가 줄었다. 이 같은 추세라면 올해 하반기에 순위가 바뀔 가능성도 높다.

K배터리3사는 다른 나라 기업과 비교해 성장도 더딘 것으로 확인된다. K배터리3사의 올해 1분기와 지난해 1분기를 비교하면 32% 성장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일본 2개 기업은 39%, 중국 5개 기업은 무려 80%나 성장했다. 수치만으로 보면 K배터리3사 성장이 가장 더딘 셈이다.

SNE리서치는 “중국 외 시장에서 LG에너지솔루션이 1위를 유지하고 있으나, CATL을 포함한 중국 업체가 빠르게 점유율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며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유럽의 핵심원자재법(CRMA) 같은 불확실성 속에서 국내 업체의 시장 점유율이 어떻게 변할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중국 시장을 포함하면 세계 배터리 시장은 중국 업체들의 강세가 더욱 두드러진다. SNE리서치가 지난 4월에 발표한 2023년 1분기 세계 각국에 판매된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에 따르면 CATL이 46.6GWh로 압도적 1위다. BYD가 21.5GWh로 2위, LG에너지솔루션은 19.3GWh로 3위, 파나소닉이 11.9GWh로 4위, SK온이 7.1GWh로 5위, 삼성SDI가 6.5GWh로 6위다. 7위부터 10위까지 모두 중국 기업이다. K배터리3사를 모두 합해도 32.9GWh로 1위에 근접하지도 못하는 수준이다.

중국 시장을 포함한 올해 1분기 세계 배터리 시장에서 CATL의 점유율은 35.0%로 LG에너지솔루션 14.5%, SK온 5.3%, 삼성SDI 4.9%를 합한 24.7%보다 10.3%포인트가 더 높다. K배터리3사 점유율은 24.7%로 2022년 1분기 26.1%에서 1.4%포인트 하락한 상황이다. 일본 파나소닉도 같은 기간 점유율이 9.1%에서 8.9%로 0.2%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중국 6개 기업은 같은 기간 점유율이 56.2%에서 60.9%로 4.7%포인트 상승했다.

중국 시장을 포함한 세계 배터리 시장에서 K배터리3사의 올해 1분기와 지난해 1분기를 비교하면 32% 성장한 것으로 나타난다. 중국 시장이 K배터리3사에 그다지 영향을 주지 않는 셈이다. 반면 일본 파나소닉은 37%, 중국 6개 기업은 50% 성장했다. 중국 기업들이 올해 중국 시장보다 미국과 유럽 등 세계 시장 진출에 더 집중하고 있음을 수치로 추정할 수 있다.

과감한 투자와 도전이 만들어낸 K배터리

기후변화에 따른 친환경 흐름을 타고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배터리 시장도 크게 성장하고 있다.  SNE리서치가 2022년에 발표한 세계 전기차 수요 전망을 보면 2019년 232만 대에서 연평균 33%씩 성장해 2030년에는 5568만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차용 배터리 수요는 더 가파르다. 2019년 118GWh 수준의 수요량이 연평균 37%씩 증가해 2030년에 3647GWh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변두리에 있던 중국은 자동차 산업 강화 정책으로 전기차 시장 강화 정책을 펼쳤다. 자동차 산업에서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전략이다. 최근까지 세계 전기차 시장과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 기업의 성장과 활약상을 보면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K배터리3사가 조금씩 다른 전략에 따라 과감하게 투자하고 도전하면서 세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정부 지원도 있었지만 중국과 비교하면 매우 부족한 수준이다. 반면 일본 기업들은 배터리 시장의 미래를 조심스럽게 예측하며 안정적으로 준비하다가 최근 순위에서 크게 밀리고 있다. 

SNE리서치가 발표한 2015년 세계 각국에 판매된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에 따르면 세계 1위는 점유율 36.6%를 차지한 파나소닉이고, 2위는 BYD 9.8%, 3위는 PEVE(일본) 9.6%, 4위는 AESC(일본) 8.6%였다. K배터리3사인 LG에너지솔루션의 전신인 LG화학이 7.8%로 5위, 삼성SDI는 5.3%로 6위, SK온의 전신인 SK이노베이션이 3.2%로 8위였다. 이어 일본 LEJ가 4.0%로 7위, ATL(중국)이 1.5%로 9위, Guoxuan이 1.3%로 10위를 기록했다.

이때 일본 4개 기업 점유율은 58.9%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반면 K배터리3사는 16.3%, 중국 3개 기업은 12.6%로 이제 성장을 위해 기지개를 켜고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K배터리3사는 각 기업들이 미래 배터리 시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공격적으로 투자에 나서며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높여갔다. 중국 기업들도 중국 정부의 지원이라는 초고속 비행기를 타고 비상했다. 이에 K배터리3사는 2020년 합계 점유율 34.6%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후 중국 기업 성장세에 밀리며 점유율이 계속 하락하는 추세다.

LFP에 밀리는 삼원계, 함께 하락

제2의 반도체라고 부르는 배터리 산업에서 앞서가려면 기본적으로 기술력이 뛰어나야 한다. 배터리 분야에서 기술력이 뛰어나다는 의미는 똑같은 크기와 무게로 배터리를 만들었을 때 에너지 밀도가 높다는 얘기와 일맥상통한다. 기본적으로 삼원계 배터리(이하 삼원계)가 기술적으로 뛰어나 그동안 K배터리가 세계에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K배터리3사 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다. 이들이 선택한 삼원계가 중국 기업이 선택한 LFP 배터리(이하 LFP)와의 경쟁에서 밀리면서다. 삼원계보다 못하다고 알려진 LFP가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K배터리도 덩달아 주춤하고 있다. 세계 1위 배터리 업체 CATL을 포함한 중국 기업 대부분은 LFP를 주로 생산한다. 올해 3월 기준 중국에서 생산하는 배터리 70%가 LFP다. 미국과 유럽 등 완성차 기업들도 LFP를 선호한다. 테슬라와 BMW, 폭스바겐 등 다수의 기업이 LFP를 쓰겠다고 밝혔다. 블룸버그는 2030년까지 미국 전기차의 40%를 LFP가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널리 쓰고 있는 배터리 기술 중에서 삼원계 밀도가 가장 높다. 반면 LFP는 밀도가 낮아 상대적으로 불리하다고 평가받는다. LFP가 삼원계와 같은 에너지 밀도를 가지려면 더 많은 양을 필요로 하는데, 원래도 무거운데 양까지 많아지니 효용성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삼원계가 100이라는 에너지를 내는데 10kg이라고 했을 때, LFP는 원래도 15kg 정도로 더 무거웠는데 양까지 늘어 20kg에 이를 수 있다는 얘기다. 왜 기술력이 더 뛰어나고 가벼운 삼원계보다 LFP를 선호하는 것일까.

두 배터리는 양극재를 구성하는 광물이 다르다. 삼원계는 니켈 N과 코발트 C, 망간 M을 양극재로 쓰고, LFP는 인과 철을 넣은 인산철을 쓴다. 니켈과 코발트, 망간은 가볍고 밀도가 높은 반면 희귀 금속으로 가격이 높고 가격 변동 가능성이 크다. 인산철은 무겁고 밀도가 낮은 반면 흔해서 가격이 낮고 가격 변동 가능성도 작다.

이것만이 아니다. LFP는 정체가 상대적으로 쉬운 탄산리튬을 쓰는데, 삼원계는 탄산리튬을 한 번 더 가공해야 얻을 수 있는 수산화리튬을 쓴다. 가공을 한 번 더 하니 단가가 올라간다. 게다가 들어가는 리튬 양도 LFP가 더 적다. 이렇게 LFP는 인산철과 더 싼 리튬을 사용해 가격 경쟁력이 매우 우수하다. 이처럼 사용하는 광물 차이가 밀도와 무게, 가격 등으로 이어지며 큰 차이를 만들고 있다. 그런데 현재 시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이 가격이다.

기술 차이 적으면 결국은 ‘가격’

물론 CATL을 비롯한 중국 기업들이 LFP가 가진 단점을 보완해 삼원계와 비슷한 수준의 에너지를 낼 수 있도록 배터리 팩을 제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것도 주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모든 사항이 결국은 가격으로 귀결되고 있다. 같은 거리를 갈 수 있는 배터리라면 가격이 저렴한 배터리가 우선한다는 얘기다. 일반적으로 LFP는 삼원계보다 30% 저렴하다고 알려져 있다.

차량 가격이 5000만원이라고 가정할 때 배터리로 인해 가격이 100~200만원 달라진다고 하면 소비자들은 저렴한 배터리 차량보다 우수한 배터리 차량을 선호할 수 있다. 하지만 가격이 500~1000만원까지 벌어진다면 소비자들은 저렴한 배터리 차량을 우선할 가능성이 높다. 한 대라도 더 많은 차를 팔려는 완성차 기업이 저렴한 배터리를 선호하는 이유다.

이런 시장 흐름 때문일까. K배터리3사 중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이 LFP 개발과 생산에 나설 예정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애리조나에 3조원을 투자해 LFP 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SK온은 올해 3월에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국내 최대 배터리 전시회인 인터배터리에서 LFP 시제품을 전시했다. LFP 시제품 공개는 K배터리3사 중 SK온이 처음이었다. 아직 양산 시점은 밝히지 않았으나 SK온도 글로벌 공장 일부에서 LFP 양산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SK온이 3월 15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국내 최대 배터리 전시회 인터배터리에서 LFP 배터리 시제품을 전시했다. 사진=SK온
SK온이 3월 15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국내 최대 배터리 전시회 인터배터리에서 LFP 배터리 시제품을 전시했다. 사진=SK온

업계에서는 K배터리3사의 LFP 양산에 대해서 “세계적인 시장 흐름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며 지금이라도 서둘러서 좇아야 한다”는 의견과 “우리가 잘하는 것에 더 주력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린다.

업계 관계자 A씨는 “세계적인 흐름을 모른 척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며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LFP에서도 앞서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 B씨는 “(시장이 요구한다고) 보여주기식으로 나설 필요는 굳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잘하는 걸 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삼원계를 더 우수한 기술로 보고 있을 뿐 아니라 국내 기업들의 뛰어난 기술력도 인정받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기(삼원계)에 집중해 기술격차를 더 벌리는 것이 낫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