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현 금융위원장(왼쪽)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출처 : 연합뉴스
김주현 금융위원장(왼쪽)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출처 : 연합뉴스

은행권의 경쟁 촉진과 구조 개선을 위한 금융당국의 실무 회의가 매주마다 열리고 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충분한 검토를 통해 합리적 개선 방안을 찾을 경우에는 개혁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금융산업의 건전성이 훼손되고 금융소비자의 피해가 늘어나는 혼란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이 은행 산업 개편에 발벗고 나선 기점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5일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고물가·고금리 등으로 인한 서민 경제의 고통 분담을 위해 통신·금융·에너지 업계의 동참을 촉구하면서다.

윤 대통령은 "그간 가파른 물가 상승 여파로 취약계층과 서민들은 여전히 어렵다"고 지적하며 "정부는 모든 정책의 초점을 민생에 두고 비상한 각오로 서민과 취약 계층의 어려움을 살피겠다"고 밝혔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금리 인상기 서민들의 이자 부담 속에 돈잔치를 벌인 은행권의 과점 체제를 무너뜨려 은행 간 경쟁을 촉진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이 주문한 '상생금융'의 확산을 위해 은행권의 과점구도에 기댄 과도한 이자수익 의존도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금융위는 5대 시중은행 중심으로 경쟁이 제한된 과점 체제에 기대 은행권이 금리 인상기에 손쉽게 막대한 이자 수익을 벌어들이는 구조를 혁파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그리고 이같은 의지를 현실화하기 위해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켰다.

이와 관련한 금융당국의 실무작업반 회의가 이달 2일 시작됐다. 실무 회의는 6월말까지 매주마다 열릴 예정이다. 추진 방향의 큰 틀은 △신규은행 추가 인가 △은행과 비은행권간 경쟁촉진으로 요약된다. 

비은행업권, 은행업 진출…기대·우려 교차

실무작업반 회의가 시작되기도 전인 지난달 말부터 스몰 라이선스(인가 세분화)를 보험, 증권 등 기존 2금융사들에게 적용하는 등 현재의 금융권 구도에 상당한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방안들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실무작업반 회의가 열린 후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은행이 수행 중인 업무범위를 세분화하는 '스몰 라이선스'를 통한 특화은행 설립이다. 예컨대 중소기업·소상공인·벤처기업대출 전문은행이나 주택담보대출·지급결제 특화은행, 중·저신용자 전문은행 등이다. 은행업에 있어 신규 플레이어를 늘리기 위한 대책으로 꼽힌다. 

이를 위해 현재 1000억원인 시중은행의 자본금 규제를 지방·인터넷은행 수준인 250억원으로 완화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업무 영역은 단일 스몰라이선스 도입을 통해 특정 업종 또는 영업방식으로 제한을 두거나 몇가지 은행업무 및 영업형태를 선택해 조합하는 두 가지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은행권 경영 영업 관행 제도 개선 TF 회의’에 참석한 은행 관계자들. 출처 : 연합뉴스

시중·지방·인터넷전문은행의 추가 인가도 논의됐다. 인터넷전문은행의 경우 은행·은행지주 및 증권사, 보험사 등 비은행금융사·지주에 대한 설립·인가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에 따라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토스에 이어 제4의 인터넷은행이 나올 것이란 기대가 커졌다. 이에 과거 인터넷은행 예비인가에 참여하지 않은 네이버와 예비인가를 신청했으나 최종적으로 탈락한 키움그룹이 인터넷은행에 재도전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또한 실무회의에서는 필요에 따라 은행산업 경쟁도 평가를 시행해 실질적 경쟁도를 파악한 후 은행업 추가 인가 여부 결정에 활용한다는 방안을 논의했다.

자본금이나 지배구조 등 인가요건을 충족해 신청할 경우 '저축은행→지방은행' 또는 '지방은행→시중은행'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보험, 증권사 등 2금융 영역의 대형 플레이어들을 은행업의 유효 경쟁자로 끌어들여 은행 분야의 경쟁을 촉진하겠다는 구상도 제시됐다. 이같은 방안을 검토하게 된 배경에는 신규 플레이어가 대형 은행과 견줄 수 있는 실질적인 경쟁을 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구체적으로는 카드와 보험사에 대한 종합지급결제, 증권사 법인결제 등이 검토 대상에 올랐다.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 개정을 통해 간편결제·송금 외에도 은행 수준의 보편적 지급결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종합지급결제사업자(종지업)'에 보험·카드사를 포함시키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종지업이란 하나의 라이선스를 통해 대금결제업, 자금이체업, 결제대행업 등 모든 전자금융업 업무를 영위하는 사업자를 의미한다. 현재 보험, 카드사들은 독자적인 계좌 발급이 불가능하지만 만일 종지업이 허용되면 자체적으로 결제, 이체 등의 업무가 가능해진다. 이렇게 되면 삼성생명통장, 현대카드통장 등 수시입출금 통장을 보험사나 카드사에서 만들 수 있다.  

아울러 증권업계의 오랜 숙원사업인 법인 지급결제를 허용한다는 내용도 검토되고 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금융결제원 규약을 개정해야 한다. 법인지급결제를 허용할 경우 증권사는 기업의 제품 판매 대금, 하청업체 용역비 지급, 어음 교환 등이 가능해진다. 지난 2007년 자본시장법 제정 당시에는 증권사도 개인, 법인 모두 지급결제가 가능했다. 그러나 증권사는 은행과 달리 지급준비금이 없는 점, 금산분리에 어긋나는 점 등의 이유로 현재는 금융결제원 내부 규정에 의해 규제되고 있다. 

이외 비은행권에 보금자리론 같은 정책자금대출 및 정책모기지 취급을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중이다. 비은행권은 은행에 비해 금리 경쟁력이 밀리는 만큼 인센티브 제공도 함께 검토된다. 모든 금융업권에 대해 '적격 정책자금 취급기관'의 개념을 도입해 기준 충족시 정책자금 한도를 배분하는 방안도 제기됐다. 또 은행에 공적 보증기관 보증부대출 취급한도를 도입하고 비은행금융기관의 보증부대출 취급 확대를 유도하는 방안도 논의 대상에 올랐다.

엇갈리는 업계 반응 속 실현 가능성 '의문'

카드, 보험, 증권 등 제 2금융권은 은행이 해 온 일부 업무 영역을 자신들에도 허용하는 방안이 논의되는데 대해 일단은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업권별로 반응은 다소 엇갈린다. 

먼저, 카드사들은 종지법 허용에 대해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독자계좌 개설, 자금 조달원 확대 등 여러모로 영업 환경이 크게 개선될 것이란 기대에서다. 카드 업계 관계자는 “지급결제는 카드사들이 계속해서 주장해오고 있던 사업이다"라며 "업무가 허용된다면 모든 카드사가 참여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다만, 카드사가 계좌개설권이 생기더라도 여신전문금융사인 만큼 금융소비자에게 이자를 지급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시중은행과 겨룰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종지업 계좌는 결제·이체용으로만 사용할 수 있다. 아울러 은행예금과 달리 예금보험제도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 보호에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도 있다.

보험 업계는 당국의 논의에 대해 다소 회의적이다. 증권, 카드사와 달리 지급 결제를 활용할 수 있는 사업 모델이 많지 않다는 분석이다. 특별한 사업 모델을 정하지도 않은채로 지급 결제 업무를 떠안게 될 경우 금융결제원에 막대한 이용료만 지불하게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신사업 측면으로 접근했을 때 당장 고민할 수 있는 것은 지급결제 플랫폼처럼 자체 플랫폼을 만드는 것 정도인데 이미 시장에 강력한 기존 지배력을 가진 기존 회사들이 여럿 있는 데다 비용 자체도 많이 들어 메리트가 너무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반면 증권업계는 법인지급결제 허용에 환호하는 분위기다. 증권사에게 법인지급결제가 허용되면 기업은 증권사 종합자산관리계좌(CMA)를 직원에게 급여를 송금하는 계좌로 활용할 수 있다. 즉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등 증권사 계좌로 월급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은 이달 2일 금융투자협회와 금융감독원이 개최한 증권사 CEO 간담회에서 "법인 지급 결제 허용은 증권업계의 10년 묵은 숙원 사업"이라며 "농협, 신협, 새마을금고도 다 하는 상황에서 대형 증권사가 못 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서 회장은 "그동안 분담금을 4000억원 가까이 내고 있는 상황인데, (지급결제를) 개인만 허용하고 법인만 허용이 안 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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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업계의 반응이 교차되는 가운데 실무 회의는 실현 가능성에서부터 벽에 부딪혔다.

우선, 시중은행의 경우 자본금 등 진입 요건이 까다로운 만큼, 진입을 허용한다고 해도 플레이어들의 참여 수요가 미미할 것이라는 우려다. 은행업을 잘게 쪼갠 스몰 라이선스나 특화은행 역시 대형 은행에 밀려 '메기'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6년 전 출범한 인터넷 전문은행도 제대로 안착하지 못한 상황에서 새로운 은행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는 시선도 있다. 조급하게 은행 산업의 신규 플레이어들을 참여시켰다가 자칫 리스크 관리에 헛점이 생기고 금용소비자 보호도 뒷걸음질 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강영수 금융위원회 은행과장은 실무작업반 1차 회의에서 신규은행 진입 수요에 대해 "손들고 올 분들이 누군지 묻는 절차를 아직 안 밟고 있다. 수요가 없을 수도 있다"라며 "다만 미래 시점까지 감안해야 하고 제도를 만들어 놓으면 수요가 생길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한 전문가는 "금융소비자 보호와 금융산업 경쟁력 제고라는 두 측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즉흥적으로 조급하게 변화를 주려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저축은행의 지방은행, 지방은행의 저축은행 전환도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 한도 규제를 고려하면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은행법상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산업자본은 은행의 지분을 4% 넘게 보유할 수 없다. 지방은행의 경우 산업자본의 지분 제한이 15%로 은행보다 훨씬 높다. 저축은행은 이에 대한 규제가 아예 없다. 은행은 동일인 주식보유 한도(은행 10%·지방은행 15%) 규제도 맞춰야 한다. 시중은행 또는 지방은행으로 전환하려면 지분정리에 비용이 드는 만큼, 금융당국이 검토하는 대책의 유인 효과는 사실상 크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다.

카드·증권·보험사들은 대주주가 산업자본인 경우가 많다. 현재 은행의 업무인 지급결제 업무를 이들 업권에 허용하려면 당장 금산분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점구도, 은행이 만들었나?

"정부 주도로 메가뱅크(초대형 은행)를 만드는 것은 적절치 않다"

여권 인사인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2014년 금융연구원장에 취임하며 이같은 의사를 밝혔다. 그 당시 우리금융의 민영화를 서두르는 정부 정책에 대해 지적한 발언이다. 정부 주도의 메가뱅크에 대한 윤 의원의 비판이 나온지 9년이 지난 현재 정부는 이젠 반대로 메가뱅크의 과점을 깨기 위한 방안을 찾기에 분주하다.    

윤 의원은 당시 “국내에도 메가뱅크가 필요하긴 하지만 시장에 의해 자생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관(官) 주도로 탄생한 메가뱅크가 실패할 경우 정권 차원의 후폭풍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경고도 했다.

정부가 등을 떠밀어 이뤄지는 인수·합병(M&A)은 위험하다는 논리를 펼치며 당시 윤 의원은 “결혼(M&A)하기 싫다는 은행을 억지로 맺어준 뒤 아이(성과)를 낳으라고 해선 안 된다”고 비유하기도 했다."정부의 역할은 은행들이 연애(자발적인 협상)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그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지적이 나올 정도로 그간 정부는 등떠밀기 식의 은행간 합병을 지속해 왔다. 위기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흡수할 수 있을 정도로 은행을 대형화하자는 취지였다. 지금까지 정부가 은행에 대해 갖고 있는 철학은 한마디로 '메가뱅크(Megabank)'였다. 이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외환위기 직전 29개던 은행을 12개로 줄였다.

기존 은행간 빅딜을 위해 정부는 1991년 이후 약 30년간 신규 은행을 허가하지 않았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의 원전을 수주했을 때도 글로벌 50위권의 인지도를 갖춘 국내 은행이 없어 스탠다드차타드에 보증을 맡겨야 했던 당시 정부는 '메가뱅크'를 육성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즉, 정부가 현재 지적하는 은행 산업의 과점 구도는 은행이 아닌 정부가 만들어낸 결과물인 것이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 관계자는 "현재 시중은행의 과점 구도는 정부가 과거 은행의 합병을 유도하면서 생겨난 것이지 은행들이 스스로 만든게 아니다"라며 "스몰라이센스를 도입할 경우 자칫 과당경쟁에 따른 금융소비자 피해가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은행의 과점 구도를 깨기 위해 스몰라이선스를 통해 '꼬마은행'들을 여럿 만들어도 될 만큼 위기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의견은 지금도 찾아보기 어렵다.

최악의 인플레이션 속에 올해 연간 무역적자까지 겹쳐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대도 지키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은행권은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 등 3고 위기 속에 경제 안전판 역할을 맡고 있는 측면도 있다.

지난해 5대 금융지주는 95조원 규모의 채권시장 유동성 공급과 133조원에 달하는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출 연장과 상환 유예 등 취약 대출자 연착륙을 지원했다.

금융 선진국인 미국만 보더라도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방향과는 정반대의 흐름을 보이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대형은행의 시장점유율은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여왔다. 미국 전체 은행에서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 웰스파고, 씨티은행 등 4대 은행 대형 상업은행의 시장점유율은 2007년 40%에서 2019년 60%까지 상승했다.

이같은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금융위기 이후 은행들의 파산이 이어지고 금융규제가 강화되면서 은행업 신규 시장 진입 건수가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은행 건전성 강화 경향및 디지털 가속화는 미국 대형은행의 과점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는 유인으로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금융당국이 논의하는 챌린저뱅크의 롤모델을 만들어낸 영국 역시 성공한 사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영국은 새로운 은행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규제의 틀을 바꿨다. 그러나 이처럼 규제를 변경한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디지털뱅크 등 새로운 신규 진입자의 예치금은 전체의 1.2% 수준에 불과하다. 더구나 신규 플레이어 중에서 수익을 내는 곳은 많지 않다. 

"직무성과와 무관한 은행 돈 잔치는 성찰 필요하다"는 지적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은행의 과점 체제를 깨뜨리기 위해 적극 나서는데 대해 은행도 되돌아 볼 필요성이 제기된다. 특히 고금리로 역대 최대 실적을 내고 기본급의 300%가 넘는 성과급 잔치를 벌여 국민들에게 공분을 샀다는 점에 대해서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시중은행 행장을 지낸 한 인사는 "정말로 성과급을 받을만한 사람이 받았다면 이처럼 파장이 크지 않았을 것"이라며 "은행 내 모든 사람이 급여도 오르고 성과급도 받아가는 현재의 구조로부터 벗어나 직무성과급제를 확대 적용할 필요성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