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반기부터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체감하기 시작했습니다. 엄살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제는 정말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말 그대로 생존이 최대 화두에요"

최근 만난 디지털 전환 지원 스타트업 관계자의 말입니다. 그의 말대로 현재 스타트업 업계는 위기, 그 자체입니다.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투자유치에 나서거나 예정됐던 상장을 줄줄이 취소하는 한편 직원 복지와 사무실 복지를 줄이는 스타트업의 이야기는 이제 식상할 수준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 스타트업의 구조조정 소식도 심심치않게 들려옵니다.

스타트업 업계의 위기를 보는 시장의 시선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합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공포로 소위 '돈 줄'이 말라 업계 전반이 신음하고 있다는 분석은 일관됩니다. 다만 스타트업 업계의 옥석 가리기가 시작됐다는 시각과, 과도하게 부풀려진 거품이 제거되고 있다는 엇갈린 시각이 혼재합니다. 실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로의 이행이 벌어지고 있다는 메시지도 있고, 지금의 위기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론도 있습니다.

지금의 스타트업 위기가 일시적인지, 혹은 업계의 건전한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스타트업 업계 스스로가 자초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지금 현재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스타트업을 불필요하게 흔드는 손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뺨을 때리는 자들

계속 강조하지만 스타트업 업계의 공포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박재욱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의장(쏘카 대표)는 지난해 컴업 2022에 이어 올해 초 코스포 신년행사에서도 "생존이 최대 화두"라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당장의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스타트업의 속을 긁어(?)버리는 일들도 종종 벌어집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걸핏하면 등장하는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라'는 메시지입니다. 

맞습니다.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는 것 매우 바람직합니다. 한국의 스타트업도 글로벌 진출 능력이 있습니다. 한국무역협회가 '포천 글로벌 500' 기업 중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인텔 등 102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이들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 스타트업의 기술 경쟁력을 7.4점으로 높게 평가한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생존을 위해 달려야 하는 스타트업들에게 "여기서(국내 시장) 이러지 말고 글로벌 시장으로 가라. 성공할 것"이라고 등을 떠미는 것은 다소 황당한 일입니다. 현실적이지 않고 개연성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글로벌 시장 진출. 아름답지요. 그러나 서비스의 매력은 차치하더라도 글로벌 시장 진출에 대한 준비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그것도 심각한 위기로 고통받는 스타트업이 갑자기 '글로벌로 진출하겠다'고 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구두선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한국무역협회의 설문조사 결과 한국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 준비도는 6.1점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입니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글로벌로 진출해 씩씩하게 성공해라'며 호기롭게 말잔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의 생존을 위한 체계적인 지원과 더불어 '제대로 된 글로벌 진출 준비'를 입체적으로 돕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스타트업의 비전으로 스스로를 치장하는 것도 좋지만, 이제 인스타 감성에서 벗어나 더욱 현실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고 천에 하나 나올 수 있는 한국 스타트업 업계의 글로벌 진출을 거론하며 '세계에 길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한국 스타트업 전체에 대한 모욕입니다.

한편 '못 먹어도 규제'를 외치는 이들도 스타트업 업계의 뺨을 때리는 자들입니다. 로톡, 강남언니 등 많은 스타트업들이 보여줄 수 있는 디지털 혁신을 거부하는 기득권의 그림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디지털 혁신이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무런 고민도 없이, 최소한의 가능성마저 무시하고 디지털 혁신의 싹을 밟아버리는 것은 그 자체로 사회적 낭비입니다. 타다 베이직 사태에서 시작된 현재의 기형적인 한국 모빌리티를 보면서도 우리는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것일까요?

출처=갈무리
출처=갈무리

업계의 문제
스타트업 업계 내부적으로도 문제가 있습니다. 각각의 스타트업 이야기가 아니라, 업계의 큰 그림을 그려야 하는 단체 및 포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진실 여부에 대해서는 차치하더라도 정치 등용의 발판으로 스타트업 단체를 이용하려는 이들의 이야기가 회자되고, 단체 내부에서 소위 '인싸'와 '아싸'의 구분이 명확해지는 '스타트업 카스트 제도'에 대한 불만이 커지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진지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해당 단체가 단순한 친목단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으나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곳이라면, 이 문제는 매우 심각해지기 때문입니다.

최근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모 포럼의 경우에는 '깜깜이 의장 선발'로 곤혹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전임 의장사가 투자한 스타트업이 갑자기 차기 의장으로 선발되고 이 과정에서 '밀실담합' 등의 논란이 터져나왔기 때문입니다. 

전임 의장이 차기 의장을 일종의 아바타로 삼아 포럼에 대한 지속적인 영향력을 키우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포럼이 전임 의장의 스타트업에 유리한 역할만 수행했다는 노골적인 불만이 나오고 있었기에 나온 말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비판에도 포럼은 귀를 닫았다는 점입니다. '현장추대' 방식으로 예정했던 차기 의장을 그대로 추진했습니다. 박수로 뽑았다고 하더군요. 지속적인 취재를 위해 여러가지 자료를 모으는 상황에서 특히 많은 생각을 들게 합니다. 

"돕지 못한다면, 방해하지는 말자"

스타트업 업계가 갖은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곳은 아닙니다. 다만 국가경제 기초체력 등 다양한 관점에서 육성할 필요성은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입체적인 관점에서 탄탄한 지원 솔루션을 구축해야 합니다.

이러한 흐름에서 돕지는 못할망정 방해를 하는 것은 무슨 생각일까요? 심지어 몇몇 방해는 '선의'에 바탕이 된 행동이라 더 섬뜩합니다. 차분하게, 또 진지하게 스타트업 업계의 존재 이유를 돌아보며 과연 무엇이 옳은 길일까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