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와 현대제철이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회사 채권 발행 의사를 타진한 결과 투자자들이 발행액보다 몇 곱절 많은 자금을 들고 문을 두드렸다. 올해 이후 글로벌 철강업계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제기된 상황에서 나온 반전의 결과다. 각 사는 최근 수 년 동안 코로나19 시국, 공급망 이슈 등 악재에 맞서온 동안 다져온 ‘맷집’을 인정받아 미래 불확실성을 걷어냈다.

포스코·현대제철 원화 무보증사채 수요예측 결과. 출처=각 사
포스코·현대제철 원화 무보증사채 수요예측 결과. 출처=각 사

11일 철강업계와 증권업계 등에 따르면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최근 원화 무보증 회사채에 대한 수요예측을 실시했다.

포스코 3500억원, 현대제철 2000억원씩 발행규모를 공개한 뒤 매수주문을 접수했다. 이 결과 기관투자자 등이 포스코 3조9700억원, 현대제철 1조8050억원 등 규모로 매수 주문했다. 발행 규모보다 각각 11.3배, 9.0배 많은 액수다.

지난해 10월 국내 최상위 신용도(AAA)를 달성한 공기관 한국전력(AAA)이 2000억원 규모의 3년 만기 공사채를 발행하려 했지만 투자자를 찾지 못해 발행 무산(미매각)된 것과 대조된다.

양사의 회사채 신용등급과 전망도는 한국신용평가(KIS)의 최근 평가결과 기준 포스코 ‘AA+/안정적’, 현대제철 ‘AA/안정적’ 등으로 한국전력보다 낮다. 통상 회사채 신용등급이 높을수록, 해당 기업이 채권을 매수한 투자자에게 제때 자금을 갚을 능력을 충분히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회사채에 대한 투자 수요가 더욱 돋보이는 이유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위치한 포스코 본사 포스코센터. 사진=최동훈 기자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위치한 포스코 본사 포스코센터. 사진=최동훈 기자

잘 벌고 빚 적어…채권상환 신뢰도↑

양사는 최근 수년동안 각종 시장 변수 속에서 양호한 영업실적을 달성하고 재무건전성을 유지한 점으로 채무상환능력을 인정받았다. 포스코의 경우 지난해 1~3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 6조8698억원을 거뒀다.

실제 현금흐름과 별개로 재무제표상 영업이익을 감액시키는 비용인 각종 감가상각비가 1조원을 넘는 점을 고려할 때 포스코가 실질적으로 기록한 영업이익(세전영업이익·EBITDA)은 8조원을 넘는다. 해당 기간 매출액 26조9140억원의 30% 수준으로, 100만원을 벌어 30만원을 남긴 셈이다.

재무건전성도 우수하다. 지난해 3분기말 기준 포스코의 부채비율과 차입금의존도는 각각 41.3%, 21.5%로 산출됐다. 자산 대비 부채액의 비율인 ‘부채비율’과, 자본 대비 장기·단기 차입금의 비율인 ‘차입금의존도’는 각각 100%, 30% 등 수치를 기준으로 이보다 낮을수록 기업의 재무 건전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제철도 같은 기간 2조원에 육박하는 영업이익을 거뒀을 뿐 아니라 부채비율 94.2%, 차입금의존도 35.1%씩 기록하는 등 양호한 수준의 재무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다.

전세계 철강수요 추이 및 전망. 출처=한국철강협회, 세계철강협회(worldsteel)
전세계 철강수요 추이 및 전망. 출처=한국철강협회, 세계철강협회(worldsteel)

양사의 채권 수요에는 올해 이후 실적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도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세계철강협회(worldsteel)는 올해 글로벌 철강 수요가 전년(17억9700만톤) 대비 1.0% 증가한 18억1500만톤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철강 생산량 1위 중국이 경기부양책을 펼치는 한편 철강 가격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공급량을 통제할 것이란 전망이 반영된 수치다. 세계철강협회는 지역별로 중국(9억1400만톤)이 지난해와 동등한 수준의 수요를 보이는 한편 신흥국(5억600만톤), 선진국(3억9500만톤) 등지에서 수요가 소폭 증가할 것으로 봤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입장에서는 중국이 생산량을 줄일수록 가격을 비교적 유리하게 책정할 수 있는 여건을 확보할 수 있을 전망이다.

공문기 포스코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 위기 경험으로 볼 때 현재 경제적·지정학적 충격을 입은 철강수요가 회복되기까지 상당기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높다”며 “올해 철강 수요는 중국의 역할에 따라 글로벌 철강 경기 흐름이 중단기 회복이냐 장기침체냐의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당진제철소. 사진=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사진=현대제철

한신평 “포스코·현대제철, 이익창출력으로 중장기 대응”

이 같은 시장 전망은 포스코와 현대제철에게는 호재로 꼽힌다. 올해 전세계 철강 수요가 지난해와 동등한 수준을 보일 경우 제품 가격이 높을수록 양사 실적에도 이롭기 때문이다. 양사는 이를 고려해 올해 각종 비용을 줄이고 생산 효율을 개선하는 동시에 공급망 관리 안정성을 높일 방침이다. 각종 방안을 총체적으로 전개해 사업 수익성을 강화하려는 취지다.

양사는 이번에 회사채를 발행해 확보한 자금으로 사내 각종 프로세스를 개선하거나 대내외 돌발 변수에 대응할 방침이다. 그동안 기초체력(펀더멘탈)을 탄탄히 다져온 결과 미래 불확실성에 더욱 탄력적으로 맞설 수 있는 계기를 확보한 상황이다.

정익수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포스코는 단기적으로 포항제철소 침수 피해로 인한 부정적 요소가 중첩되면서 수익성이 저하할 전망”이라면서도 “최근 중국의 공급 통제가 유효한 가운데 우월한 사업경쟁력을 바탕으로 수익성 저하폭을 최소화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안정적으로 이익을 창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익수 수석연구원은 또 “대외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글로벌 경기 둔화세가 뚜렷해짐에 따라 현대제철의 수익성이 단기적으로 저하할 전망”이라면서도 “중국 철강공급 통제, 전방산업 수요 개선 등 요인으로 인해 양호한 이익창출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