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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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공급망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갈등이 장기간 지속되는 가운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발발하면서다. 강대국 간 우위를 점하기 위한 경쟁 구도는 자원 안보 등의 차원에서 글로벌화를 배제하고 로컬화를 중시하는 자국 우선주의를 촉발했고, 신냉전 구도를 본격화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프렌드쇼어링’ 등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다양한 법안을 마련하면서 중국과의 경제 단절을 심화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 패권을 둘러싼 파워게임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시절부터 본격화됐다. 지난 2017년 기존 ‘미 301조’ 규정을 강화한 ‘슈퍼 301조’를 내놓으면서 미국의 무역에 제약이 생길 경우 광범위한 영역에서 보복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무역조치를 통한 중국 제재를 시작했고, 현재 바이든 행정부는 갈등 구도를 진영화해 우방국들도 참전하게 만든 것이다. 이러한 진영화된 갈등 양상은 공급망을 무기화하는 전략으로 드러나고 있다. 미래 핵심 산업군에서 중국을 철저히 배제함으로써 경제 패권 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에서다.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 키워드가 바로 ‘프렌드쇼어링’이다. 가치 공유 국가 간 공급망과 첨단기술 개발에 협력함으로써 미국의 글로벌 경제 및 지정학적 리더십을 확대하는 전략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중국과의 갈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전 세계 공급망을 흔드는 사안에 대한 대처로, 동맹국 간 협력을 통해 잠재적 공급망 위험을 최소화한다는 것이다.

실제 중국은 희토류 등 독과점하고 있는 자원을 무기로 삼는 전략을 사용해 왔고, 러시아는 천연가스와 곡물을 무기화해 글로벌 에너지 및 식량 대란의 단초가 됐다. 한국은 지난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인 단체관광 금지부터 한국 대중문화 금지인 ‘한한령’을 보복으로 받은 바 있다.

코트라에서 발간한 ‘미국 프렌드쇼어링 정책 심층분석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바이든 정부의 프렌드쇼어링 정책은 △자유무역 국제분업 효율성은 지향하되 지정학 리스크는 최소화 △중국, 러시아로부터 자유시장 경제 및 민주주의 수호 동맹 결성에 공감대를 형성 △제조업‧공급망‧기술 교류 등 전 무역‧투자 활동을 블록 내 한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미국이 수입한 중국산 첨단제품 수입은 13.1% 줄어든 반면 대만과 인도네시아에서의 수입은 각각 119.1%, 98.4% 늘어났다. 미국이 주도한 4개국 안보 협의체 ‘쿼드’ 회원국인 인도산 제품 수입도 50% 이상 늘면서 프렌드쇼어링이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지난해 6월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정상회담에서 미-EU 간 무역‧기술 협력 확대를 위한 TTC 설립에 합의했고, 바이든 정부는 TTC를 미국과 EU를 주축으로 한 서방 중심 경제협력체제로 출범, 대 중국‧러시아 봉쇄 견제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다. 실제로 TTC 합의문 내 중국 경제를 견제하기 위한 직간접적인 조항들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협상, 북미‧중남미 경제협력 체제 강화, 중동‧아프리카 경제협력 증진 등 지정학 경제협력체제 구축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미국 중심의 프렌드쇼어링, 새로운 팍스 아메리카나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한국은 중요한 위치에 있다. ‘IPEF’와 ‘칩(Chip)4’라 불리는 반도체 공급망 네트워크 등에서다.

한국은 지정학적 측면뿐만 아니라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감안할 때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에서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중국을 견제하는 의도가 큰 프렌드쇼어링이 우리나라의 대(對)중국 통상 마찰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우려가 있지만 본격적인 통상 마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노동길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중국 경기 상황이 녹록치 않고 △교역에 서로 의존한 분야가 많아 규제 수단이 마땅치 않으며 △IPEF와 칩4 참여가 중국에서 설정한 레드라인을 위협한 조치로 보기 어렵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또 2차전지 소재 및 재료 관련 분야에서는 밸류체인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공급망 다변화와 내재화 노력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내재화는 과정에서 기회(반도체 및 2차전지 소재, 부품, 장비 관련 기업)가 발생할 수 있으며, 중장기적으로는 설비투자가 증가하는 과정에서 수요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 국내 주식시장에 큰 화제였던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관련 국내 기업들에 큰 호재로 작용했다. 설비투자와 관련된 기업은 물론 신재생에너지, 전력 인프라, 철강 강관, 2차전지, 자동차 등에 큰 반등을 보인 바 있다. 이 외에도 조선과 신재생에너지 관련주들도 신냉전 구도로 인한 수혜주로 주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