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 전경.  사진=연합뉴스
전국경제인연합회 전경. 사진=연합뉴스

“좀비기업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재계가 벌써부터 우려하고 있다. 재계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의 폐기를 1년 앞두고 초조하다. 재계는 최근 기촉법의 존속과 상시화를 주장하고 나섰다. 코로나19로 인해 한계기업이 늘었다는 게 그 이유다. 늘어난 한계기업들이 구조조정 방식을 두고 다양한 선택지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목소리다. 

기업구조조정촉진법. 폐지냐 존속이냐가 항상 문제 된 법이었다. 없애자니 기업회생이 아직 불완전하고 유지하자니 시장에 맡겨야 할 기업 구조조정에 관(官)이 개입된다. 뻔한 논란보다 제3길의 길을 만들자는 주장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5년마다 입법으로 유지된 기촉법은 5년마다 어김없이 해묵은 논란을 가져왔다. 정치권은 이 논란이 내년에도 예외없이 불거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는 지금부터 이 논란을 쟁점화할 태세다.

전경련 산하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지난 13일 인천대학교 김윤경 교수에게 의뢰한 ‘기업구조조정 제도 개선방안’ 보고서를 통해 한계기업이 증가 추세에 있음을 밝히면서, 기촉법의 상시화를 주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한계기업 수는 총 2823개사다. 한계기업은 코로나 이전인 2019년 2283개사 대비 23.7%(+540개) 늘어났으며, 한계기업에 종사하는 종업원 수는 2019년 24.7만명에서 2021년 31.4만명으로 26.7%(+6.7만명)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계기업이 늘고 있다는 보고서와 달리,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한 한계기업은 계속 줄어드는 모양새다.

19일 대법원 사법통계에 따르면 지난 8월 17일 기준 전국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한 회사는 모두 344곳이다. 전년도 같은 시기 누적 신청 415곳과 비교하면 약 28%가 줄어든 셈이다. 기업회생 전체 신청 건수는 코로나19 이후 계속 줄었다. 2019년 1003건이었던 신청은 2020년 892건, 2021년 717건으로 감소 추세를 이어갔다. 

한계기업은 늘고 있는데 역설적으로 기업회생이 줄고 있다는 것은 회사가 회생을 피해 파산으로 직행했다고 풀이된다. 실제로 법인파산은 증가추세에 있다. 법원 통계에 따르면 2018년 699건이었던 법인파산은 2019년 931건, 2020년 1069건, 2021년 955건을 기록했다. 

또 회생으로 구조조정을 해야 할 기업이 버티고 있다고도 봐야 한다. 여기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만기연장 등 금융정책이 한몫을 담당했다는 게 일리 있는 분석이다. 이는 부실기업의 현재화가 시간문제라는 것과 같다. 

이렇게 어느 시점에서는 쏟아지는 한계기업을 한 가지의 방법으로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 더군다나 한계기업들이 기업회생의 구조조정 방식을 '원치 않아서' 회피하는 것이라면 기촉법 폐지는 정당성을 갖기 힘들다. 기촉법이 없어지면 실효성을 갖는 구조조정은 기업회생 제도가 사실상 유일해진다. 재계는 이것을 걱정하고 있다. 

한경연의 보고서는 한계기업들의 정상화를 위해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을 개선하고 상시화해 기업의 구조조정 활성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결론 맺었다. 기업회생 한 방향으로는 구조조정이 어렵다는 뜻이다. 

기촉법은 기업 워크아웃 제도의 근거 법률이다. 기업 워크아웃은 ‘채권금융회사의 주도’로 한계기업에 대해 △원금 상환 유예 △이자 감면 △신규 자금 조달 등 채무조정을 해 주는 제도다. 채권액의 75% 이상 채권자가 동의하면 채무조정이 가능하다. 적용대상도 부실기업뿐만 아니라 부실징후기업까지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한편 기업회생은 ‘법원 주도’의 부채 탕감 제도다. 채권액의 66%(담보채권자는 75%)에 해당하는 채권자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기촉법은 한시적으로 만든 법이다. 현행 기촉법은 내년이면 5년으로, 수명을 다한다. 2001년에 만든 이 법은 이렇게 5년마다 죽을 고비를 넘겨 현재 6차에 이른다.

기촉법을 한시법으로 두면서 일몰 시기마다 논란이 반복됐다. 논란의 내용은 이렇다. 

우선 관치금융의 폐해다. 구조조정 시장은 자본시장의 PEF가 디아이피(DIP)파이낸싱 등으로 한계기업에 투자해 퇴출과 회생이 선순환되어야 하는 곳이다. 현재 미국의 시장이 그렇다. 이미 구조조정 시장이 형성됐다.    

국내 상황은 다르다. 시장에서 이뤄져야 할 기업구조조정에 금융당국이 개입할 가능성이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하기도 했다. 과거 경남기업의 워크아웃이 그랬고 쌍용건설과 STX팬오션이 그랬다. 은행의 건전성을 관리해야 할 금융당국이 채권은행을 직,간접적으로 압박하는 모습에 여론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기촉법의 기업 워크아웃이 이와 같은 관치의 빌미를 제공했다. 

그런데도 기촉법을 매번 존치시키는 것은 무시 못 할 장점이 있어서다. 바로 ‘신규 자금의 지원’과 ‘속도’다. 이와 달리 법원의 주도로 부채탕감에 방점을 둔 기업회생은 신규자금 조달에 한계가 있다. 구조조정 기간도 기촉법의 기업 워크아웃이 기업회생보다 상대적으로 짧다. 재계는 기업 워크아웃을 더 선호한다. 기업 워크아웃 수요가 끊이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다. 게다가 국내외 경제사정도 기촉법의 폐지를 반기는 상황은 아니다.

박선종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기촉법은 한시법으로 제정되어 지난 20여 년간 일몰과 재시행이 반복되어 왔다"면서 "지난 20년간은 금리하락기였다. 기업경영의 기초 환경에 유리한 면이 있었음에도 재시행의 필요성이 반복적으로 발생하였다는 점은 상시화 필요성 주장에 타당성을 보강하는 면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 교수는 "한시법의 재시행 수요가 꾸준히 발생하는 경우에는 상시화 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 더욱이 현재는 금리상승기다. 기업경영의 기초환경이 상대적으로 악화된 점을 감안하면, 기촉법의 상시화 필요는 더욱 커진 것으로 이해된다"고 부연했다. 

기촉법은 항상 그랬듯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기업 구조조정 제도의 배열도. 자율협약은 채권단 100%의 동의가 필요하다. 강화된 워크아웃이 기촉법을 근거로 한 기업 워크아웃이다. 혼합형 워크아웃의 대표적인 제도가 자율구조조정이다(ARS). 자료=한국은행
기업 구조조정 제도의 배열도. 자율협약은 채권단 100%의 동의가 필요하다. 강화된 워크아웃이 기촉법을 근거로 한 기업 워크아웃이다. 혼합형 워크아웃의 대표적인 제도가 자율구조조정이다(ARS). 자료=한국은행

그래서 기업회생이 답?

학계 일각과 법조계에서는 기촉법을 없애고 채무자회생법의 기업회생으로 구조조정을 단일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기촉법을 한시법으로 연명해 두는 사이 기업회생 제도는 구조조정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쌍용차와 이스타항공 등 주요 회사들이 회생절차로 살아나면서 서울회생법원은 기업 구조조정의 메카가 됐다. 

기업회생 제도는 새로운 구조조정 기법을 도입해 기술적 발전도 이뤘다. 기촉법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자율구조조정 제도와 같은 하이브리드 워크아웃을 고안하는가 하면, 사전회생계획안 제도를 이용하는 기업의 사례도 나왔다. 자율구조조정은 회생신청 후 기업 워크아웃 형식으로 협약 하는 제도이고, 사전회생계획안은 채권단과 미리 협의하여 회생을 신청하는 제도다.

법조계는 채권자가 주도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기업의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반면 기업회생은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다.

박현근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회장은 “기업구조조정은 원칙적으로 공적으로 처리해야 하고 채무자회생법의 단점을 보완해 구조조정을 일원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회생절차가 풀어야 할 숙제가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회생에 들어간 기업은 구조조정에 기간이 많이 소요되고 매입처가 떨어져 나가는 등 기업가치의 하락을 막기 어렵다.  

현재로서는 기업회생 일원화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회생제도의 숙제는 또 있다. 

우선 법원마다 다른 운영 기준이다. 대체로 정형화된 기업회생 절차도 법원마다 다르게 운영되는 게 현실이다. 사법부의 강한 독립성 때문에 그렇다. 지역에 따라 회생 졸업시기가 서울회생법원 보다 두 배 이상 기간이 걸리는 법원도 있다. 

둘째 절차의 비효율성이다. 법률의 규정으로 회사의 지출과 계약, 고용 등 주요사항을 모두 법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상거래 처와 분쟁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워크아웃이 관치라서 문제라면 기업회생은 이와 같이 엄격한 법치라서 문제된다.

셋째 전문법원 법관들의 짧은 임기다. 전문법원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서울회생법원 법관들의 임기는 짧다. 이는 신속하고 연속성 있는 재판 진행이 어렵게 되는 원인이다. 현재 회생법원 법관의 임기는 3년. 일반 민,형사 법원의 법관보다 1년이 긴 정도다. 쌍용차의 회생기간이 약 2년이었다는 점에서 주요 회생사건 2건이면 임기를 다하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 파산법원 법관의 임기는 14년이다. 

박현근 회장은 "서울회생법원과 같은 전문법원을 각 지방에도 늘려야 한다"며 "판사들 역시 전문 법관제도를 통해 장기 근무하도록 해야 채무자회생법 실무 운용이 속도감 있게 진행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기업회생의 갈 길도 아직 멀다.

서울회생법원. 사진=이코노믹리뷰DB
서울회생법원. 사진=이코노믹리뷰DB

기업구조조정도 '중재'로 풀어야...제3의 길 모색할 때

기촉법 일몰 시기와 맞물려 입법과정에서 소모적인 논쟁을 하는 것보다 제3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중재를 동원해 채무조정을 하자”는 것이 그 대안이다. 일본의 기업 구조조정의 모델이기도 하다.  

일본의 기업구조조정은 중재를 통해 자율협약을 추진하되, 채권단 사이에서 협약이 이뤄지지 않으면 회생법원으로 직행하는 구조를 갖는다. 협약과정에서 나온 회생계획안은 회생법원의 인가로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 자율협약 과정에서 중재는 정부가 인가한 전문 민간단체가 나선다. 중재의 영역에서 자연스레 민간PEF의 투자와 파이낸싱, M&A도 이뤄진다. 

법원의 관여 없이 회생 실무가가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영국과 호주도 실질은 중재 역할을 하는 것이다. 법원과 연계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내에서도 기업 구조조정에 중재자 역할을 하는 단체가 있어 구조조정의 대안으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조붕구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 회장은 “협회는 법무부의 인가를 받은 사단법인으로 키코사태 당시 무너졌던 기업들을 회원사로 두고 있다”며 “기업구조조정을 채권의 회수(기업 워크아웃)와 채무의 탕감(기업회생)이라는 극단적인 면에서 취급할 것이 아니라 자본시장의 순리에 따라 방출과 회생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조 회장은 그러면서 “협회는 그동안 회원사 상호 간 M&A를 중재하거나, 채권단과 재무적 협상을 한때 회원사를 지원하고 중재해 많은 성과가 있었다. 최근에는 코코타투자조합을 설립하고 자산운용사와 협업을 통해 파이낸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정부는 중재의 공간을 열어주는 제도를 만들고, 협회와 같은 기능을 가진 단체나 회생 변호사 등 전문가들이 중재의 역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