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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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외식물가 부담 완화 일환으로 소주 주정 원료에 할당 관세를 적용하기로 했지만 소비자들이 체감할 만한 가격 인하 효과는 나타나지 않을 전망이다. 주정 원료 관세가 면제되더라도 고환율 및 원자재 가격 급등 여파로 주정 제조업체들의 원가 부담이 지속되고 있어서다.

이에 이번 관세 면제 조치가 소주 가격 추가 인상폭을 상쇄할 수 있는지 등 면밀한 사후 관리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8일 주류·주정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이후로 국내에 통관 수입하는 조주정 원료에 할당관세(관세율 0%)가 적용되고 있다. 조주정은 소주를 만드는 정제주정 원료로, 주요 수입국은 브라질·파키스탄·캄보디아 등이다. 할당관세는 일정한 수입 물품 물량에 관세율을 일시적으로 낮춰주거나 초과 물량에는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제도를 뜻한다.

정부가 지난달 ‘고물가 부담 경감을 위한 민생안정 방안’을 발표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민생안정 방안에는 올해 말까지 기존에 10%의 관세가 붙던 조주정과 매니옥칩에 할당관세를 적용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조주정과 매니옥칩 전년 대비 수입단가 증가율은 각각 43.2%, 13.2%에 달한다.

그러나 이번 조치가 소비자 피부에 와 닿을 만한 수준으로 가격 인하 효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주류·주정업계 관계자는 “이미 환율이 크게 올랐고 수입 원자재 가격도 급증해 조주정 관세가 면제되더라도 제조단가가 낮아지기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조주정이 생산 과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은 편이고 또 수입 주정 가격 상승분 이 할당관세 적용으로 할인되는 비율을 초과하는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출처=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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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조주정 매입 가격은 올 들어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진로발효 1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조주정 수입가는 킬로리터(㎘)당 92만8000원으로, 지난해 말 77만3000원과 비교해 20% 뛰었다. 같은 기간 창해에탄올 조주정 수입가도 69만4183원에서 86만3580원으로 24% 증가했다.

또 다른 주류·주정업계 관계자는 “만약 할당 관세 적용이 없었다면 영업이익이 나빠지는 업체들이 생겨나고, 주정 제조 업체 영업이익 마이너스분을 메꾸기 위한 가격 조정이 선택지로 고려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면서 “이번 관세 조치는 향후 주정 원료 가격 인상을 미리 방어하는 역할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미 연초 주정 평균 가격 인상 여파로 ‘소주 가격 도미노 인상’이 현실화한 바 있다. 대한주정판매는 지난 2월 주정 판매가격을 평균 7.8% 인상했다. 이후 하이트진로를 비롯한 주요 소주 제조 업체들이 잇따라 소주 제품 출고 가격 인상에 나섰다.

대한주정판매는 진로발효, 창해에탄올 등 국내 주정 제조회사들이 지분을 참여해 설립한 주정 판매 전담 회사다. 주정 업체에서 제조한 주정을 일괄적으로 구입해 소주업체에 판매한다. 현재 국내 주정 제조기업은 창해에탄올, 진로발효, 풍국주정공업, 일산실업, 서영주정, MH에탄올, 롯데칠성음료, 서안주정, 한국알콜산업 등 총 9곳이다.

결국 주정 관세 면제 조치 이후 ‘사후 관리’에 무게가 실려야 한다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할당 관세 적용 이후 주정 제조업체 부담 경감에 따라 소주 제품 가격 인상 가능성이 사전에 차단됐는지 꼼꼼히 살필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결국 관세 인하 조치가 소비자 물가 안정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관리하는 정부의 사후 관리 역할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