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미국 등 서방에 대응하는 반서방 에너지 연대가 선명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조만간 시진핑 주석과의 통화 가능성을 시사하며 전선의 확장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과 만나고 있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 출처=연합뉴스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과 만나고 있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 출처=연합뉴스

반서방 에너지 연대
월스트리트저널 및 이란 국영 IRNA 통신 등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이란을 방문해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과 만났다. 이어 러시아 국영 에너지기업 가스프롬과 이란 국영석유회사는 400억달러에 달하는 천연가스 개발 및 투자 관련 협정에도 서명했다.

세계 천연가스 매장량 1위 러시아, 2위 이란의 만남이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 등 서방의 강력한 압박을 받는 러시아가 이란과의 밀착을 통해 반서방 연대를 구축하는 모양새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푸틴 대통령은 현장에서 세예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도 만나는 등 부쩍 대외행보를 강화하고 있다.

정상들과 만날 때 항상 지각을 하는 푸틴 대통령이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만날 때는 미리 장소에 나와 초조해하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실제로 더내셔널뉴스 기자가 공유한 트위터 영상에는 에르도안 대통령을 만나기 전 긴장한 것으로 보이는 푸틴 대통령의 모습이 게시되기도 했다. 

물론 러시아와 접점을 만들고 있는 이란, 튀르키예의 속내는 복잡하다. 이란의 경우 현재 미국과 핵협상을 벌이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미국과의 협상력을 키우기 위해 러시아와 밀착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튀르키예도 에르도안 대통령 재임 시절에는 러시아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나 사실 러시아와 튀르키예는 역사적으로는 오래된 대립관계다.

다만 현재의 튀르키예는 우크라이나 전쟁 정국에서 서방과 러시아를 넘나들며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튀르키예는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 회원국이면서도 우크라이나 전쟁에 있어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고, 오히려 중재자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것에 성공하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러시아와의 연대에도 신경쓰는 모양새지만, 미국과의 완전한 결별은 불가능하다는 평가다.

세 나라가 반서방 에너지 연대를 구축하고 있으나 각자는 동상이몽에 빠져있다는 뜻이다.

사우디 빈 살만 왕세자와 만난 바이든 미국 대통령. 출처=연합뉴스
사우디 빈 살만 왕세자와 만난 바이든 미국 대통령. 출처=연합뉴스

초조한 서방
문제는 이러한 전략적 도전에 직면한 미국 등 서방이 마땅히 대응할 카드가 없다는 점이다.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증산 요청을 했으나 빈 살만 왕세자의 사우디가 이를 거절하는 등 미국의 입지가 예전같지 않기 때문이다.

동상이몽에 빠져있기는 하지만 중동 국가들의 에너지 연대를 완성시킨 푸틴의 러시아도 반격을 거듭하고 있다.

미국 및 유럽의 에너지 제재가 이어지자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에너지 공급을 줄이겠다고 경고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실제로 로이터 등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독일로 이어지는 가스 공급이 재개될 것으로 보이지만 그 절대량은 기존 30%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은 비상이다. 27개 회원국에 천연가스 사용을 내년 3월까지 8개월 동안 최대 15% 줄일 것을 요청하는 한편 러시아 의존도를 최대한 낮춰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으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러시아산 원유의 경우 유럽연합이 제재의 의미로 스스로 감축에 나설 여지가 있으나 천연가스는 이야기가 다르다. 유럽연합은 연말까지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33%만 수입하자는 방침이지만 대부분의 난방을 천연가스에 의존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상황이 심각하다는 말이 나온다.

무엇보다 북반구에 겨울이 찾아올 경우 유럽연합 입장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질 수 있다. 난방수요가 높아지는 계절에 러시아의 에너지 반격이 시작될 경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크라이나 전쟁 확전 가능성도 제기된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20일(현지시간) 국영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군대의 작전목표가 동부 요충지인 돈바스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지금의 위기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뜻이다.

유럽연합이 곤혹스러워하는 가운데 서방의 대표격인 미국이 전면에 나서며 러시아의 반격을 끊어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복잡한 내부사정으로 동력을 상실하고 있다.

무엇보다 바이든 행정부의 자국 내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다. 퀴니피악 대학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재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31%에 그쳤으며, 민주당원들도 바이든 대통령의 재출마를 원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강력한 인플레이션이 시작되며 내수경기가 침체된 가운데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믿음이 깨지고 있다는 평가다.

러시아 기갑전력이 이동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러시아 기갑전력이 이동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전선의 재정비?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은 재차 승부수를 던지는 분위기다. 첫 단계는 내부 동력 끌어 모으기다.

현재 미국은 물론 전세계는 이상기온으로 신음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20일(현지시간) 미국 기상청 산하 기상예보센터는 트위터를 통해 "28개주 1억500만명이 폭염주의보와 폭염경보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런던은 지난 19일(현지시간) 40.2도를 기록해 역사상 최고치를 찍었고 프랑스에서는 산불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국가기후 비상사태 선포를 고려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가 백악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에너지 역점 법안이었던 '더 나은 재건'(BBB: Build Back Better Act)이 불발된 가운데 비상사태 선포를 중심으로 위기를 돌파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는 심각해지는 기후변화에 공격적으로 대비하는 한편 강력한 리더십을 통해 내부 동력을 키우겠다는 전략도 깔렸다는 것이 중론이다.

나아가 국제정치의 전선 재편성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러시아와의 대립전선과 선명해지는 한편 미중 패권전쟁의 신경전이 동시에 벌어지는 상황에서, 일단 중국과의 전선에서는 다소 힘을 빼려는 시도가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블룸버그에 따르면 20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은 "10일 내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남중국해 및 대만을 사이에 두고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지는 한편 지난달 G7 및 나토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중국과의 대결국면이 부각되고 있으나 당장은 대화의 여지를 남겼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이 인플레이션으로 고통받는 상황을 고려해 중국 수입품에 대한 일부 관세 철폐 결정이 이뤄질 수 있다. 미국이 전선 재편성에 들어간 '시그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