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이 설립 20주년을 맞은 올해 기업 경영의 새로운 막을 열었다. 기업을 성장시키기 위해 수년 간 국내 기성 수입차 업체들 사이에서 유례없던 신규 브랜드 론칭 전략을 단행했기 때문이다. 한국지엠은 그동안 외국계 기업 중에서는 독보적 규모로 경제에 기여해온 역사를 이어 앞으로도 시장을 발전시키는데 일조할 방침이다.

지난 23일 오후 인천 중구 소재 파라다이스 시티의 1층 중앙 홀은 노랑, 파랑, 빨강 등 순서로 빛났다. 이날 한국 사업을 전개한지 20년 만에 세 번째 완성차 브랜드를 출범시킨 지엠이 행사 현장에서 세 가지 브랜드를 강조하기 위해 활용한 조명 퍼포먼스다.

로베르토 램펠 한국지엠 사장이 23일 인천 중구 파라다이스 시티에서 열린 지엠 미디어 데이에 참석해 한국 사업 성과를 발표하는 모습. 사진= 박재성 기자
로베르토 램펠 한국지엠 사장이 23일 인천 중구 파라다이스 시티에서 열린 지엠 미디어 데이에 참석해 한국 사업 성과를 발표하는 모습. 사진= 박재성 기자

지엠의 한국지사인 한국지엠은 이날 현장에서 지엠 브랜드 데이를 열고 국내 세 번째 브랜드인 GMC를 국내 도입하기로 공식 선언했다.

한국지엠은 고급 픽업·SUV 모델을 제품 라인업으로 갖춘 GMC의 120년 역사와 함께 브랜드의 국내 첫 출시 차량인 대형 픽업트럭 시에라 드날리를 공개했다. GMC는 과거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이 쓸 군용트럭을 만들었고, 이후 한국군에도 군용트럭을 공급하는 등 한국과 연을 맺어왔다. 과거 ‘지에무시’로 불리기도 했던 GMC의 차량은 지금도 개인이나, 일부 지자체에의 관용차량으로 쓰이고 있다.

GMC 시에라 드날리가 중앙무대로 입장하는 모습. 사진= 최동훈 기자
GMC 시에라 드날리가 중앙무대로 입장하는 모습. 사진= 최동훈 기자

시에라 드날리는 지난 2019년 출시한 콜로라도보다 더 큰 제원을 갖추고 있는 프리미엄 모델로서 차별적 상품성을 갖췄다. 한국지엠은 이날 구체적인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시에라 드날리의 실물만 취재진에게 보였다.

카를로스 미네르트 한국지엠 부사장이 GMC 브랜드와 차량 시에라 드날리를 소개하는 모습. 사진= 박재성 기자
카를로스 미네르트 한국지엠 부사장이 GMC 브랜드와 차량 시에라 드날리를 소개하는 모습. 사진= 박재성 기자

GMC, 9년만에 출범한 산하 브랜드

GMC는 지난 2011년 쉐보레 이후 11년 만에 국내 정식 도입된 지엠 산하 브랜드다. 국내 외국계 완성차 업체가 모그룹의 산하 브랜드를 사업부문으로 편입해 새롭게 출범한 사례로는, 지난 2013년 FCA코리아(스텔란티스 코리아 전신)의 피아트(FIAT) 이후 9년 만에 처음이기도 하다. 지엠은 GMC를 한국에 도입하기 위해 별도 법인을 설립하지 않고 기존 한국지엠의 사업조직과 파트너십 등 역량을 활용할 방침이다.

지엠은 GMC의 브랜드 차별성을 강화하기 위해 시에라 드날리를 전면 온라인 판매할 방침이다. 지엠 전세계 사업장에 걸쳐 처음 한국에서 GMC 차량을 온라인 판매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트렌드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국내 시장 특성에 기대를 걸고 단행한 시도다. 한국지엠은 시에라 드날리의 판매 추이를 분석한 뒤 차기 신차의 온라인 판매 여부도 결정할 예정이다.

한국지엠은 고유 정체성을 갖춘 GMC가 새로 출범함에 따라 국내 시장의 다양성을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예상한다.

카를로스 미네르트 지엠아시아태평양지역본부(이하 지엠아태본부) 부사장은 “한국지엠은 GMC 론칭을 계기로 한국에 다양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제시할 것”이라며 “GMC는 자연을 사랑하고 오프로드를 즐기는 등 활동이 라이프스타일로 자리잡은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최동훈 기자
지엠 미디어 데이 현장에 설치된 전광판에 지엠 브랜드 3개의 로고가 순차적으로 표시된 모습. 사진= 최동훈 기자

연간 50만대 생산목표…2021년 대비 2배↑

한국지엠은 이날 현장에서 GMC를 비롯한 브랜드 전반에 걸친 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현장에는 이날 현재까지 국내 출시된 브랜드별 주요 모델이 순서대로 등장했다. 차량이 무대에 오를 때 브랜드마다 다른 조명과 배경음악 등으로 꾸며진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모습은, 마치 종합격투기대회에 참전한 챔피언이 입장하는 모습을 연상시킬 정도로 화려하고 비장했다. 

한국지엠이 발표한 브랜드 운영계획은 크게 2021~2025년 전기차 10종 출시, 연간 50만대 생산, 올해 손익분기점 달성 등으로 구성됐다. 외국계 기업인 점을 고려할 때 매우 큰 규모의 로드맵이다.

이 중 전기차 출시 계획은 앞서 내놓은 볼트EV와 볼트EUV 등 쉐보레 전기차 2종을 필두로 이미 진행되고 있다. 캐딜락 코리아는 이날 중장기적으로 현재 판매중인 모든 내연기관차를 같은 급의 전기차 모델로 전환시킬 것이란 지향점을 밝혔다. GMC도 허머 EV 등 앞서 북미에 소개된 전동화 모델을 출시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지엠와 지엠아시아태평양지역본부 등 양사의 경영진이 지엠 미디어 데이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모습. 왼쪽부터 서영득 캐딜락 코리아(지엠아태지역본부) 대표, 램펠 사장, 미네르트 부사장, 노정화 상무. 출처 사진= 박재성 기자
한국지엠와 지엠아시아태평양지역본부 등 양사의 경영진이 지엠 미디어 데이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모습. 왼쪽부터 서영득 캐딜락 코리아(지엠아태지역본부) 대표, 램펠 사장, 미네르트 부사장, 노정화 상무. 출처 사진= 박재성 기자

생산능력은 내년 출시할 C-세그먼트(준중형~중형급) 차량과 기존 출시 차량인 트레일블레이저 등 주요 모델의 내수·수출 물량을 크게 늘리는 전략으로 강화할 예정이다. 연간 50만대 생산목표는 지난해 기록한 생산량 22만3600여대의 2배 이상 규모에 달한다. 한국지엠이 내년부터 양산할 신차로 생산 역량을 본사에 어필할 수 있는 점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중요한 사업적 기회로 작용할 전망이다.

사업을 안정적으로 전개해 지난해까지 8년 연속 이어온 적자의 고리를 끊는 것도 한국지엠의 사업 주안점 중 하나다. 한국지엠이 신차 라인업을 늘리고 생산능력을 확장하는 동시에 기업 재무성과를 개선하려는 목표를 세운 점에서 국내 사업에 대한 의구심이나 회의감을 찾긴 어렵다.

카를로스 부사장은 “한국지엠이 표방하는 투트랙 전략은 국내 생산한 차량과 수입 모델을 함께 판매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다양한 브랜드 차량을 판매하는 멀티 브랜드 전략과 병행해 높은 기대치를 갖고 있는 한국 고객들의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에 대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엠 미디어 데이 현장의 전경. 행사장 좌우와 중앙 무대에 걸쳐 지엠 브랜드별 차량이 도열돼 있다. 사진= 박재성 기자
지엠 미디어 데이 현장의 전경. 행사장 좌우와 중앙 무대에 걸쳐 지엠 브랜드별 차량이 도열돼 있다. 사진= 박재성 기자

“경영정상화 계획 달성하는 역사 만들겠다”

이날 지엠 한국 사업장의 경영진들은 그동안 지엠이 한국 시장에 기여해오는 등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온 외국계 기업인 점을 강조했다. 이날 GMC를 론칭한 결정이 앞서 국내 시장에서 일궈온 성과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시장에 소구하려는 취지로 분석된다.

한국지엠은 실제 2002년 이후 업력을 이어오는 동안 일자리 10만개를 창출하고 자동차 1200만대 가량 생산해왔다. 연구개발 전문 법인인 지엠테크니컬센터코리아(GMTCK)는 3000명 정도의 구성원을 두고 있는 등, 미국 사업장 외 가장 큰 엔지니어링 센터로 꼽힌다.

램펠 사장은 “CEO(최고경영자)로서 나의 사명은 모든 자산을 활용해 회사를 번영시키는 것”이라며 “큰 과업이라는걸 알지만 성공전략, 1만2000명 임직원, 지엠 본사 등과 함께 하기 때문에 달성할 것이라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지엠은 최대 현안인 경영정상화를 이뤄 한국 자동차 역사에 새로운 한 획을 그을 것이란 포부를 밝혔다. 지난 군산공장 폐쇄의 아픔을 딛고 2018년 지엠 본사와 산업은행 등 주요 주주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지원받아 재무실적을 개선해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윤을 창출하고 재무건전성을 확보하려는 지엠과 한국지엠의 염원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램펠 사장은 “우리는 오늘 이곳에서 한국에서 지엠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며 “많은 역풍을 맞고 있지만 앞서 약속한 경영정상화를 완수해 과거를 뒤로 하는 역사적 순간을 맞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