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한국전력이 2013년 11월 이후 전기요금을 올렸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을 중심으로 이번 전기요금 인상이 정부의 탈원전 정책 청구서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사실일까?

3원 올라...4인 가구 전기료 최대 1,050원 인상
한전은 내달 1일부터 적용되는 4분기 전기요금 연료비 조정단가를 지난 분기 대비 3.0원 인상된 kWh당 0.0원으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4인 가구 기준 월평균 350kWh의 전력을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전기요금은 매달 최대 1,050원 오르게 된다.

전기요금 인상 배경은 국제유가 및 석탄가격 등 원자재 가격 상승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부가 올해 처음으로 연룡비 변동분을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조정요금제를 도입한 가운데 전기를 만드는 원자재의 가격이 올라가자 자연스럽게 전기요금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한전에 따르면 4분기 평균 실적연료비는 kg당 유연탄 평균 151.13원, LNG는 601.54원, BC유는 무려 574.40원에 달한다.

특히 LNG의 경우 수입가격이 지난해 8월 1톤당 183.6달러에서 올해 8월 534.5달러를 기록해 70%의 상승폭을 보여준 바 있다. 여기에 한전의 어려워진 재무구조 등이 영향을 미치며 내년 대선을 앞 둔 민감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한전이 전기요금 인상 카드를 꺼냈다는 것이 중론이다.

산업계는 동요하고 있다. 당장 중소기업중앙회는 성명을 내고 "제조원가에서 전기료 비중이 15%에 이르는 뿌리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현장 충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반 국민들도 커뮤니티 등을 통해 "월급빼고 다 오른다"는 불평이 커지고 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가뜩이나 경기가 얼어붙은 가운데 인플레이션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중이다. 미 연준의 연내 테이퍼링 실시가 예정되는 등 글로벌 경제도 불확실성에 빠졌다. 이런 가운데 전기요금이 인상되면 산업계와 일반 국민의 부담이 커지는 한편 자칫 물가 상승세를 더욱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무엇보다 전기요금 인상이 물가 상승세를 부채질할 것이라는 전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반 인프라에 가까운 전기요금이 인상될 경우 일반 소비재 물가가 덩달아 오를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4인 가구 기준 최대 1,050원 부담이 커지는 것도 문제일 수 있지만 기간 인프라 에너지인 전기요금 인상이 일반 경제의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탈원전 청구서?
전기요금 인상을 두고 비판이 커지는 상황에서 정치권, 특히 야당을 중심으로 격렬한 반발이 나오고 있다.

이번 전기요금 인상이 정부의 무리한 탈원전 정책에 따른 후폭풍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탈원전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로 원만한 전력공급을 끌어내지 못했고, 결국 전기요금 인상이라는 청구서가 국민의 부담이 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야당 대선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24일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정부와 한전은 다음 달 1일부터 전기요금 인상을 발표했다"며 "무리한 '탈원전 정책'의 필연적 결과"라고 지적했으며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고집이 결국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졌다고 비판했다.

정말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전기요금이 인상된 것일까.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장기 국정과제로 추진하는 것은 사실이다. 대통령 직속기구인 탄소중립위원회는 최근 2050년까지 순차적으로 원전을 폐쇄해 현재 25% 수준인 원자력 발전 비율을 6~7%로 축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정부의 정책 기조가 지금 당장 가동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원전 가동률이 오히려 지속적으로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7년 22GWh을 기록한 원전 발전용량은 올해 23GWh 늘어났고 2024년에는 27GWh로 늘어날 전망이다. 올해 7월까지 원전 발전량 비중은 26.8%에 이른다. 신한울 1기, 2기, 신고리 5, 6호기가 상업운전에 들어갈 예정이며 만약 이들이 가동되면 원전 발전량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아직 탈원전은 시작도 안했고, 오히려 원전 발전량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상태에서 전기요금 인상을 두고 탈원전 청구서라 지적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는 비판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23일 해명자료를 내고 이번 한전의 전기요금 인상이 탈원전과 관련이 없다는 메시지를 낸 이유다.

사실 이러한 장면은 지난 여름 전력난이 심해졌을 당시에도 반복된 바 있다. 여름철 폭염에 전력난이 심해지자 일각에서 일제히 정부의 탈원전 때문이라는 비판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월 22일 오전 국회 원내대표 회의실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여름철 전력수급을 두고 탈원전 때문에 전력난이 온다는 가짜뉴스가 판을 친다"고 비판한 배경이다.

무차별 비판, 공론의 장 무너트린다
전기요금은 가계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민감한 사안인데다 정치적으로 소구되기 편리한 아젠다로 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탈원전을 매개로 두고 전기요금 인상을 결정한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묻지마 탈원전'에 전기요금이 올라 국민이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묻지마 정부비판'에 전기요금을 핑계로 삼아 건전한 공론의 장이 무너지는 상황이다.

오히려 이번 전기요금 인상은 2021년 1분기 최초 연료비 조정단가 도입시 –3원/kWh이 적용된 이후 2, 3분기 연속 유보되었던 것이 4분기 0원/kWh로 조정됐다고 봐야 하는 측면도 있다. 업계의 숙원이던 연료비 조정단가 제도가 정착하는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고 전기요금 현실화라는 패러다임에 주목할 필요도 있다는 뜻이다.

업계에서는 소모적인 논란을 지양하고 더욱 발전적인 공론의 장이 펼쳐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더욱 꼼꼼히 살필 필요성이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16일(현지시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10년 만에 원전 발전량 잠정치를 발표하며 지난해 393GW에서 2050년 792GW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탄소중립이라는 큰 목표를 두고 SMR(소형모듈원전) 등을 활용한 유연한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탈원전을 목표로 뒀다지만 최근 석탄 발전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현 상황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다. 신재생에너지 활용 빈도가 낮아지는 장면과, 석탄 대신 신재생에너지를 늘리겠다는 정부의 의도가 제대로 맞아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냉정한 접근도 중요하다. 

이러한 다각적 분석을 통해 탈원전 정책의 미래성을 분석하고 그 방향성을 영점조정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평가다. 여기까지 논의가 이어지면서 탈원전 정책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지금의 전기요금 인상, 즉 현실화를 두고 기계적으로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