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디 작은 리벳 때문에 거대한 타이태닉도 침몰한다.’

타이태닉호나 비행기 사고를 생각하면, 보통은 기체나 기계장치의 엄청난 문제일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작디 작은 미세한 균열에서 시작된다. 1954년 1월 10일 영국 국제항공(BOAC) 소속의 싱가포르발 로마 경유 런던행 드 하빌랜드 DH.106 코메트 781편이 엘바 섬 근처 지중해에서 추락하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35명의 승객과 승무원이 목숨을 잃었는데, 당시 사고를 살펴보던 조사팀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추락한 비행기 잔해와 승객들의 시신 상태가 보통의 추락 사고와는 달랐기 때문이었다.

코메트 781편의 추락 당시에 그 근방에서 사고를 목격했던 어부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진술을 토대로 정밀 조사를 벌인 결과 사고 원인은 단순 추락이 아닌 공중분해로 밝혀졌였다. 조사 위원회에서 각종 시뮬레이션과 정밀한 실험을 통해 알아낸 결과 최초 균열이 시작된 부위를 파악하게 됐고, 원인을 파악하고 나서야 영국항공은 코메트의 운항을 재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뒤 또다시 이집트행 남아공 항공 비행기가 나폴리 근처 해안에서 비슷한 추락 사고를 일으켰다.

왜 멀쩡히 잘 날아가던 비행기가 추락, 그것도 공중분해가 되는 엄청난 사고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었을까? 사고의 원인은 바로 금속판 접합에 쓰인 ‘리벳’이었다. 리벳은 기원전 4,400년에서 3,300년 사이에 있었던 이집트 나카다 문화시기에 만들어졌던 창에서도 발견이 될 정도로 인류가 오랫동안 활용해온 접합 기술이다. 청동기 시대의 검이나 단도에서도 손잡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리벳 구멍이 나 있는 것들을 바탕으로 고대에서부터 활용되어 왔다. 지금도 복잡한 구조물들을 접합시키는 데에 리벳을 광범위하게 사용한다.

당시 비행기에서도 기체 금속판을 연결할 때 리벳을 사용했는데, 비행기가 운항되는 과정에서 금속판에 미세한 균열이 발생한 것이다. 높은 고도에서의 희박한 대기에서는 기압과 온도 등의 차이로 인하여 팽창과 수축이 반복된다. 이때 금속 피로의 원리로 그 균열이 커지게 됐고, 한계에 다다르자 마침내 공중분해라는 어마어마한 결과로 이어졌다. 금속공학 학자들은 타이태닉호의 침몰 역시 리벳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배를 건조할 때 300만개 이상의 리벳이 사용되었는데, 강철로 된 리벳이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품질이 떨어지는 철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때문에 타이태닉호의 앞부분에 사용된 조악한 철로 된 리벳이 빙하와의 충돌 충격을 견뎌내지 못한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강한 철’이 스트레스에는 더 약하다

컴퓨터와 같은 정밀한 기계는 물론, 공장 설비 같은 금속도 피로를 느낀다. ‘금속 피로’라는 것은 금속표면에 조금이라도 상처가 있게 되면, 상처를 중심으로 진동이 있을 때마다 상한 곳이 점점 퍼져 나가게 된다. 그러다 일정한 한계를 넘으면, 금속이 극단적으로 물러지고 균열을 일으켜 작은 힘으로도 쉽게 꺾여 버리거나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되는 현상이다. 결국 작은리벳으로 인해 기체에 손상이 생긴 비행기가 계속된 진동에 의해 버티지 못하고 공중에서 분해되어 버렸다.

공중분해의 원인으로 또 하나의 사실이 밝혀졌는데, 균열은 리벳 때문에 생겼지만 그 균열이 확대된 것은 비행기 창문이 사각형 형태였다는 것이다. 나는 사각형의 비행기 창은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예전에는 지금과 같은 둥근 타원 형태가 아닌 각진 네모의 창문이 비행기에 붙어 있었다고 한다. 당시 각진 형태의 비행기 창에서는 각각의 모서리에 에너지가 집중될 수 밖에 없었고, 네모의 꼭지점 부분에 그 힘이 집중되어 압력을 받게 되는 구조였다. 비행기 창문마다 4개의 약점이 있었고, 금속 피로와 함께 큰 재앙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비행기 창은 곡선 형태로 압력을 고르게 분산시키는 구조가 됐다. 둥근 모양이 예뻐서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안전장치인 것이다.

사람들이 받는 피로나 금속이 받는 피로나 한자로는 피로(疲勞)로 똑 같다. 피곤할 피에 일할 노다. 일을 하면 피로가 쌓이는 것은 사람이나 기계나 같다는 것이다. 금속 피로의 경우 응력이라고 하는 스트레스를 반복적으로 받게 되면 파괴되는 현상을 말하는데, 당연히 이 스트레스이 변동폭이 클수록 더 빨리 파괴가 일어난다. 펜치가 없어서 철사 한 가닥을 끊기 위해서 수없이 구부렸다가 폈다가 했던 경험들이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종이를 일직선으로 자를 때 칼이나 가위가 없던 경우, 반으로 접은 종이를 손톱으로 눌러서 접힌 부분을 납작하게 만들고 반대방향으로 접고, 다시 반대방향으로 접기를 반복해서 조심스레 찢으면 칼로 자른 것 못지 않게 일직선으로 자르곤 했다. 이렇게 접거나 구부리는 것이 과학적으로 표현하면 스트레스가 되겠고, 그런 연속적인 동작은 피로도를 높이고 결국은 약하게 되거나 파괴된다. 자라면서 더 알게 되었지만, 주철 같은 것은 아무리 단단해도 단 한번의 구부리는 스트레스에도 부러져버려 곤란을 겪은 경험도 누구나 있을 것이다. 강한 것이 스트레스에 더 약할 수 있다.

“술 담배를 줄이시고 피로하지 않게 하세요!”

자주 가는 병원이나 약국에서 흔히 듣게 되는 말인데, 언젠가부터 이런 말을 들으면 짜증이 확 밀려오곤 했다. 커뮤니케이션 때문에 스트레스를 달고 살았던 통에 십년 전 쯤부터 툭하면 코가 막히고 코 흘리개가 되어 병원에 갔더니 비염이었다. 혹시 알레르기 물질이 원인인가 싶어 등판을 까고 알레르기 물질 수십 가지를 피부에 직접 반응시켜 봤지만 이상 반응을 일으키는 물질은 없었다. 결론은 스트레스였다. 그 뒤부터 조금만 피로해지면 다른 곳 보다도 코에서 제일 먼저 반응이 왔다. 의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충고를 했는데, 속에서 짜증이 확 밀려와서 “그룹의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고 있고, 매일 같이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스트레스 받지 않을 수 없어서 병원에 오게 된 것’임을 내뱉어 버렸다. 잠시 당황한 표정의 젊은 의사는 “그럼 쨉시다”라고 응수했다. 하지만 그렇게 외과 수술을 했어도 나아지는 건 없었다.

코 흘리개가 되는 것은 미연에 방지하는 수 밖에 없었다. 때문에 이 주에 한번씩 동네 약국에 가서 코 감기 약을 사서 늘 상비하고 다녔다. 그래서 코에 조금이라도 이상 증세가 나타난다 싶으면 바로 한 알씩 삼켰다. 신기하게도 약효는 바로 나타났다. 혹여나 가방에 들어 있는 약이 며칠 분량 이내로 줄어 들기라도 하면 바로 바로 약국에서 사서 쟁여놨다. 그러자 몇 개월 동안 이런 나를 지켜보던 약사가 한 마디 했다. “비염 때문에 힘든 것은 알겠지만, 약에 의존하지 말고 피로하지 않도록 잘 관리하면 되잖아요!” ‘누가 그걸 몰라서 이러고 있는 줄 아나’하는 생각이었다. 그 뒤로 약을 사러 잘 가지 않게 됐다. 코 감기 약이 아닌 비타민과 몸을 보하는 성분이 들어 있는 것들로 챙기면서 웬만하면 견뎌보기로 했다. 덕분에 조금 나아지기는 했고 그 약국은 이제 잘 가지 않는다. 비염이 나아져서가 아니라 그 약사가 보기 싫어서다. 잘못은 내가 했는데 말이다.

피로와 스트레스라는 것은 참으로 오묘하게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나 같은 스몰 A형의 혈액형을 가진 사람들은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일단 사회에 나온 뒤로 생각이라는 것이 많아지다 보니 잠자리에서 잠 들기까지 늘 시간이 제법 걸린다. 피로하지 않으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에 날이 훤해질 때까지 잠을 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피로하지 않게 하루를 잘 관리했음에도 피로하지 않아서 쉬이 잠 들지 못했음으로 인해 기어이 다음 날은 아침부터 엄청난 피로를 안게 되는 결과를 얻는다. 피로해지면 그 피로를 풀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피로하지 않으면 잠 못들게 되어 결국은 피로해지는 뫼비우스의 고리에 갇혀있는 셈이다.

개인의 고리가 연결되어야 조직이다

남들에게야 등산 경력이 십오년이 넘어서 북한산 수백 번, 불수도북에 노고산 수백 번이라고 이야기는 하지만 그 시작은 사실 토요일에 풀어버린 피로를 일요일 낮에 한꺼번에 얻음으로써 일요일 밤의 숙면을 위한 것이었다. 처음 몇 번은 성공했지만, 그 마저도 신통찮다. 몸이 피로도를 견디는 힘이 생기면서 또다시 쉬이 잠 못 이로는 불면의 강도가 더 세어진 것이다.

지금은 훨씬 덜 하지만, 예전에 한참 술을 많이 마실 땐 월요일 저녁식사가 최고의 난제였다. 어찌됐던 이 삼 일 동안 푹 쉰 간이 월요일날 마시는 소주를 너무나 반기는 바람에 나 뿐만 아니라 당시의 직장인 들에게는 ‘월요일 술이 제일 달다’는 말이 흔했다. 술 마시는 편한 팔자라고 뭐라고 할 수 있겠지만,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들에게 술은 99 퍼센트 심각한 업무였다. 특히나 나처럼 근무하는 회사가 리스크를 그것도 회사의 존폐를 가름할만한 엄청난 위기를 안고 있었을 때는 술 자리 하나 하나가 살얼음판 위를 걸어가는 것과도 같은 심각하고도 아슬아슬한 업무의 현장이었다.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 되는.

주말동안 아무리 몸을 잘 관리하더라도 피곤한 월요일 아침을 피할 수 없었고, 스트레스에 찌든 월요일 밤을 벗어날 수 없는 악순환이었다. 그렇게 챗바퀴는 굴러갔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로의 뫼비우스 띠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숱한 오해 속에서 살아왔지만, 나는 그래도 살아있다. 지금도 안타까움 물씬 느껴지는 것은 서울에서 몇 되지 않는 학교 선배 하나가 과로사 한 것이었다. 상급 기관에 근무하는 유능한 선배였지만, 처음 소개 받은 술 자리에서 딱 한번인가 더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과로사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다리가 불편한 분이어서 운동이나 활동에 제약도 많았을텐데, 술 자리와 과중한 업무를 견디다 못해 불귀의 객이 되신 것이다.

사고사도 많지만 과로사도 드물지 않다. 총알배송, 새벽배송, 로켓배송 같은 수식어를 달고 있는 물류업체에서 사망하는 노동자들 수가 심상찮다. 나스닥에 상장을 하고, 코로나로 인해 저하된 경제상황 속에서도 빛나는 실적 성장을 일구어 온 성공기업으로 포장은 되고 있지만, 사실은 누군가의 피와 살을 갈아서 쌓아 올린 것이다. 주 52시간의 허울로 포장은 되고 있지만,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밀린 일처리를 하고 주말까지 노트북을 눈 빠지게 들여다 본 결과로 분기가 그리고 반기가 마감이 된다. 52시간에는 포함이 되지 않지만 소위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주말이며 밤이며 가리지 않고 툭툭 던진 업무에 불철주야 매달린 결과 기업이 조금씩 굴러간다.

6시 퇴근 시간에 직원 카드를 찍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사람들도 있지만, 그 시간에 잠시 쓰린 속에 국밥 한 그릇 밀어 넣고 일하기 위해 들어오는 사람들이 아직도 곳곳에 있다. 억지로 하는 일도 아니고, 52시간과는 상관도 없는 것이라 치부를 하지만 기업이란 생명체는 그런 여분을 갈아 넣은 희생 없이는 제대로 굴러가지 못한다.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잘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너무나 부러운 것이 사실이다. 피로해서도 안 되고, 피로하지 않아도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도 상황을 봐가면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나는 나은 편이다. 이 더운 열기에 정해진 시간까지는 꼼짝도 못하게 묶어 놓는 곳도 많다. 옆에서 쓰러져도 눈치 채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서로를 돌보지 못하는 조직 분위기를 그렇게 만드는 것 자체가 범죄보다 더 끔찍하다. 리더가 서로를 돌보는, 커뮤니케이션이 통하는 그런 조직 문화를 일구지 못한 탓이다. 안전불감증과 남의 피로를 경시하는 이런 것들 모두가 커뮤니케이션 문제와도 직결된다. 조직이 조직일 수 있는 것은 개인의 고리가 서로 연결되게 해야 하는 것이다. 거대한 비행기가 공중분해 된느 것이 작은 리벳의 균열 때문이다. 하지만 리벳이 갖지 못하는 회복력을 사람은 가지고 있다. 리벳은 돌보지 못하지만 사람은 서로 돌볼수 있다. 돌볼수 있게 해야 한다. 리더에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