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창민 기자] 금융권에 ESG 경영이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 개선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최근 들어서야 금융지주들이 ESG 경영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이유는 ‘투자유치 풍향계’에 변화가 감지돼서다.

기관투자자들이 ‘ESG 모범생’ 위주로 투자하기로 하면서 ESG를 소홀한 기업은 투자자들로부터 외면 받는 시대가 열렸다. 이에 ESG 경영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투자풍향계 ‘ESG’로…연기금·블랙록 투자척도 활용

최근 금융권에 따르면 블랙록(BlackRock)과 핌코(PIMCO) 등 대형 자산운용사들은 투자 기업에 ESG 요구 수위를 점차 높이고 있다. 자본시장의 큰손인 국민연금공단도 오는 2022년까지 전체 운용 자산 절반을 ESG 기업에 투자한다고 공식화했다. 해외 진출에도 ‘ESG 여권’이 필요해지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ESG가 경영·투자의 이슈를 넘어 규제 형태로 가시화될 전망이다.

한국금융연구원 이시연 연구위원은 “투자자들은 Paris Cop21(제21차 파리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과 2015년 UN SDGs(UN 지속가능개발목표) 이후 기후, 환경 변화의 영향에 인식이 늘면서 투자 정책을 재평가하기 시작했다”라고 진단했다.

국민연금은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의 최대주주며, 우리금융지주의 2대주주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KB금융과 신한금융의 2대주주다. 국민연금의 지분 보유율은 각 금융지주별로 9% 후반대다. 국민연금과 블랙록의 보유 지분을 합하면 KB금융의 15.95%, 신한금융의 15.44%에 달한다. ESG를 고려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

이는 ESG 경영에 앞서가는 금융지주에 기회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블랙록 등 ‘까다로운’ ESG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유치한 이력은 국내외 투자설명회(IR) 활동에서 향후 ‘ESG 경영 보증수표’가 될 전망이다.

금융지주, ESG 조직 정비로 ‘첫 단추’

금융권도 ESG 혁신 요구에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ESG 경영을 본격화하기 위한 첫 단추는 ESG 전담조직 구축과 중장기 전략 수립이다. 금융지주들은 지난해부터 위원회·협의회·TF(태스크포스) 형태로 조직을 만들고 그룹 내 ESG 성과를 평가·보상체계와 연동하면서 ESG 경영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고려대학교 박경서 경영학과 교수는 “최고경영자(CEO)는 ESG 활동을 공개해 투명성을 높이고, 주주의 동의를 얻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라면서 “이러한 점에서 기업의 ESG 경영은 이사회가 주도하는 것이 적절하다”라고 평가했다.

금융권 최초로 그룹 이사회 내 ‘ESG위원회’ 명패를 단 곳은 KB금융이다. KB금융은 지난해 3월 그룹 ESG 전략 컨트롤타워인 ESG위원회를 신설했다. ESG 경영 중장기 로드맵 ‘KB 그린웨이브 2030’, 탄소배출제로 달성을 위한 ‘KB 넷제로(Net Zero) S.T.A.R’ 등 선이 굵은 전략도 ESG위원회에서 나왔다.

신한금융은 현 ESG전략위원회의 모태인 ‘사회적책임경영위원회’를 2015년부터 설립해 이사회 내 위원회로 두고 있다. 신한금융은 ESG 사업 성과관리체계 구축에서 앞서가고 있다. 지난해 국내 금융사 최초로 ESG 사업 성과를 화폐 가치로 정량화 한 사회적가치 측정모델(신한 SVMF)을 개발해 전 그룹사에 적용했다.

올해 들어 하나금융, 우리금융, NH농협금융지주도 ESG위원회를 만들며 ESG 경영에 속도를 더했다. 하나금융은 작년 말부터 그룹 ESG 경영 TF를 운영해오다 올 3월 ESG조직을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함영주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ESG 전담 부회장 직제로 체제를 전환하면서 ESG위원회인 ‘지속가능경영위원회’를 신설했다.

우리금융은 작년 말 ESG 전담조직을 만든 데 이어 지난 1월 그룹사 최고경영자(CEO)를 위원으로 하는 ‘ESG경영협의회’를, 2월에는 그룹 이사회 내 ‘ESG경영위원회’를 연달아 신설했다. 농협금융지주도 ESG위원회인 ‘사회가치 및 녹색금융위원회’와 손병환 회장 주관의 ‘ESG전략협의회’를 신설했다. 우리금융과 농협금융은 ESG 항목을 성과평가에 반영하는 시스템 구축을 마쳤다.

중장기 전략 ‘E’ 방점…“일관성 있는 ESG 경영 추진 필수”

금융지주의 중장기 전략은 ESG 중 ‘E(환경)’에 무게를 싣고 있다. 탈석탄과 탄소배출 제로 선언이 대표적이다. 환경 분야가 정량화하기 쉽고 대외적으로 성과를 내보이기 수월해서다.

이시연 연구위원은 “최근에는 기후, 환경 변화가 가져오는 금융 리스크의 발생과 영향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라면서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발생으로 ‘E 리스크’의 측정이나 관리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희수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글로벌 자산운용사, 연기금 등도 기후 변화를 유발하는 투자 대상에서 배제하는 기후변화 주주행동주의를 대표하고 있다”라면서 “(이에 맞춰) 국내외 은행들도 석탄 화력발전 산업 등에 대한 금융지원을 과거 대비 적극적으로 축소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5대 금융지주는 모두 2050년까지 자산 포트폴리오 상 탄소배출 제로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다. 신한금융은 지난해 11월 ‘제로 카본 드라이브’(Zero Carbon Drive) 추진을 선언했다. KB금융도 지난달 2040년까지 내부 탄소 배출량 제로,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한다는 내용이 담긴 ‘KB 넷제로 S.T.A.R’를 선언했다.

하나금융과 우리금융도 각각 그룹 ESG 중장기 로드맵인 ‘2030&60’과 ‘플랜 제로 100’(탄소배출 Zero, ESG금융 100조 지원) 실행으로 2050년 탄소배출 제로 달성을 목표로 삼았다. 농협금융도 탄소정보 공개프로젝트(CDP) 등 국제협약 참여를 준비 중이다.

중장기 전략에 따라 그룹사들도 밑단에서 ESG 투자에 나섰다. 금융사들의 ESG 투자 전략은 ‘네거티브 스크리닝’(Negative Screening)이다. 네거티브 스크리닝은 ESG 요소에서 문제가 있는 기업은 투자 대상에서 배제하는 전략이다. 석탄 투자 배제가 대표적인 스크리닝이다.

민간 금융사 가운데 탈석탄 금융의 포문을 가장 먼저 연 곳은 KB금융이다. 지난해 KB금융의 그룹사는 국내외 석탄 발전소 건설과 관련 신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채권 인수 사업 참여를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ESG 잘하는 기업을 선별하는 포지티브 스크리닝(Positive Screening) 전략도 구사 중이다. 은행 계열사들의 ESG 우수기업 금리 혜택이 대표적이다.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ESG 경영 우수기업에 우대금리 혜택을 제공하고 있고, 농협은행은 친환경 기업에 운전·시설자금 대출 한도를 늘려주고 금리를 낮춰주는 상품을 출시했다. 블랙록 등 투자자의 ESG 경영 요구가 금융지주와 그룹사를 거쳐 일반기업의 ESG 경영 강화로까지 이어지는 낙수효과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권의 ESG 투자 확대 추세는 한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라면서 “(ESG 워싱이 일어나 않도록) 일관성 있는 ESG 경영 추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