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막스가 고조될 때, 다음 회를 알린다.

TV를 자주 보지는 않지만, 주말에 비는 시간이면 습관적으로 뭔가를 틀어 놓고 있다. 갈수록 드라마들 수위가 올라가는 느낌이다. 선정적인 화면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의 질이다. 어느 채널을 돌리건 간에 웬만한 드라마들에서는 등장하는 배우들마다 악다구니를 쓰고 있는 것 같다. 때문에 멀리한다 하면서도 채널이 돌아가는 중에라도 악다구니를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자연스레 눈길이 가곤 한다. 수십년 차의 여배우임을 익히 알고 있기에 연기가 서툴러서 악을 쓰는 것이 아니라, 센 역할을 맡은 이상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 연기가 사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는 쉽다. 채널을 돌리다가도 멈추게 만드는 힘이 있다.

매일 방송되는 일일방송이나, 한 주에 두 번 방송되는 드라마나 할 것 없이 공통적인 것이 있다. 그 날 드라마가 시작되는 초반부에는 좀 더 눈길이 가는 장면들을 끼워놓고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아 매 놓고선, 중반에 접어들면 한없이 극의 전개를 잡아 늘인다. 안물안궁인데도, 홀로 등장하는 배우가 혼잣말로 중얼중얼 이야기를 한다. 마치 누구랑 대화라도 나누는 것처럼, 책상에 앉아서 생각하는 것들도 독백으로 들려주고, 차를 마시거나 길을 걸으면서도 생각하는 것을 자꾸 시청자들에게 들려준다. 그래야 개연성이 있어지는 지는 모르겠으나 사실 그런 장면들은 삭제되어도 이야기 전개에는 지장이 없어 보인다.

그러다가 귀신 같이 드라마가 끝날 무렵이 되면 극의 전개가 좀 더 극적으로 치닫는다. 배경음악의 톤도 달라지고, 등장하는 배우들의 숫자도 늘어난다. 전개가 지지부진하던 극의 전개가 속도감이 붙으며 뭔가 사건의 고리가 밝혀지거나 등장인물들의 갈등이 고조되는 그 순간 화면이 멈춘다. 그리고 하단에 뜨는 자막이 있다. 다음화를 예고하는 것이다. 늘 같은 패턴이다. 극 중반에 진행되던 느릿느릿한 전개의 독백 같은 것들은 궁금하지 않지만 중간 중간에 끼워져 있는 반면에,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그런 배우들의 연기는 막판에 나온다. 그러면서 다음화를 위해 낚시질로 남겨둔다. 그래야 내일 또 그 시간에 아니면 다음주 같은 시간에 시청자를 TV 앞으로 불러오게 되는 것이다.

인터넷 결제, 마트 계산대 앞에도 소소한 낚시터가

요즘은 누구나 방송을 하는 시대다. 이미 공중파 방송이 이런 1인 미디어에 밀리고 있는 부분도 많다. 특히 십대들에게는 1인 미디어가 절대적이다. 사실 시청자를 낚기 위한 경쟁에서는 공중파가 1인 미디어를 당해낼 재간이 없어 보인다. 요즘 청소년들은 TV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손바닥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이나 테블릿으로 언제든지 보고자 하는 것들을 불러낼 수 있는 상황인데, 굳이 수동적으로 TV 잎에서 기다리고 대기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할 애들은 없다. TV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짜야 하지만, 1인 미디어는 성향이 맞는 소수를 대상으로 하기에 형식과 내용 면에서 훨씬 더 와 닿기 마련이다.

하지만 둘 다 공통점이 있다. 기가 막힌 낚시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갈수록 1인 미디어들의 낚시질이 가관이다. 제목이 먼저 노출이 되어야 영상으로 연결이 가능하기 때문에 내용과는 상관도 없는 자극적인 제목을 띄워 놓는다. 팩트에 기반하여 젊잖게 달아 놓은 제목은 낚시질에서 밀리기 마련이다. 일단 첫번째 낚시질이 성공을 하여 몇 번의 클릭을 유도라도 하게 되면 그 다음엔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알아서 한다. 그 비슷한 영상들을 계속에서 리스트 업 하여 대기 시킨다.

요즘엔 어디를 가더라도 이런 낚시질이 흔하다. 늘 할인된 값으로 책을 살 수 있기에 서점도 인터넷을 주로 이용하는데, 새로 나온 책이나 어떤 것이 베스트 셀러에 올라와 있는 지를 살펴 보다가 한 권이라도 고르게 되면, 득달같이 달리는 것이 있다. 이 책을 구입한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책이라고 추천해주는 알고리즘의 낚시질이다. 사실 이게 도움이 되기는 한다. 그러다 보니 한 권 보려고 들어 갔다가 너댓권을 주문하고 나온다. 서점도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 지향하는 바가 이런 것이다. 거기에 더해서 몇 년 전부터는 책을 주문하려면 자동적으로 기념품 고르는 페이지를 지나가야 한다. 소위 끼워팔기 식으로 1~2 천원 정도의 가벼운 쇼핑거리들을 열거 해 놓고서는 책 사서 계산하러 나가는 손님들이 집어서 갈 수 있게 배치했다. 마치 마트에서 계산대 앞으로 카트를 밀고 나가서 기다리는 동안 그 통로 양 옆에 껌이며 음료수, 초콜릿 바나 물티슈 같은 저렴한 것들을 늘여놓고 집어가게 하는 것과 같다. 어디서나 낚시질이 횡행하고 있다.

이런 낚시질은 갈수록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버스 창문에까지 낚시질이 등장했다. 언제부터인가 버스의 좌석에 앉아서 창 밖의 풍경을 바라 보고기라도 하자면, 바로 그 눈 높이에 광고 스티커들이 붙어 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문구와 아기자기한 꾸밈으로 과히 눈에 거슬리지는 않지만, 눈길을 받기에는 충분한 것들이다.

낚시질에 실망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자신이 낚시질을 당했다는 것에 기분 좋을 리가 없다. 기분만 상하는 것이 아니라 반감이 드는 것이 보통의 마음이다. 그래서 낚시질도 좀 고상해야 한다. 반전의 스토리를 품고 있는 맛이 있어야 한다. 글이나 영상의 내용이 길든 짧은 간에 뭔가 던져주는 내용이 있어야 한다. 최근에 본 몇 가지 간단한 사례를 소개하고 싶다. 첫번 째는 ‘휘파람 부는 농부’다. 비닐하우스에서 일을 할 때면 늘 휘파람을 불면서 일을 하는 사람을 봤다. 늘 즐거움이 넘치는구나 싶어서 말을 걸었다. “일을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하시네요?” 그런데 그 대답이 뒷통수를 강타한다. “아내가 시각 장애인이라 휘파람을 불어야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고 안심합니다.” 아주 짧은 내용이었지만, 마지막 줄이 가져다 주는 여운은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또 한 가지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가 본 일이 없다. 상식이라면 상식일 수도 있지만, 사실 부끄럽게도 부족한 상식이 넘쳐난다. 거기 국립박물관 입구에는 처음 보는 사람에겐 다소 민망한 그림이 걸려 있다고 한다. 젊은 여인이 부끄럼도 없이 젖가슴을 드러내고 있고 거의 헐벗다시피 한 노인이 그 여인의 가슴에 입을 대고 있단다. 처음 이 내용을 접했을 때는 자유분방한 유럽 사람들은 예전부터 이런 민망한 그림도 잘 그렸나 보구나 하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글을 계속 읽고 있자니 그게 아니었다. 몇 자 더 읽지도 못하고 눈물이 맺이는 바람에 지하철에서 한동안 고개를 들지를 못했다.

바로크 미술의 거장 루벤스가 그린 작품인데, 그림 속의 노인은 푸에르토리코의 독립을 위해 싸운 독립운동가 키몬이라는 사람이고, 여인은 그의 딸 페로다. 키몬은 독립운동을 위해 싸우다 국왕의 노여움을 사는 바람에 감옥에 갇힌다. 교수형에 쳐해 지는데, 사형이 될 때까지 아무런 음식도 제공이 되지 않는 형벌을 받았다. 노인은 목마름과 굶주림으로 감옥에서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연락을 받은 딸은 해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힘겨움을 무릅쓰고 감옥으로 찾아간다. 거기서 물 한 모금 먹지 못하고 힘없이 쓰러져있는 아버지를 바라보고는 자신의 가슴을 풀어서 내 준 것이다. 푸에르토리코 인들은 이 그림을 민족혼이 담긴 ‘최고의 예술품’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이런 정도의 낚시질이라면 그 어떤 사람이라 하더라도 감동스럽게 받아들일 것이다.

B2B 위주의 제품을 생산하여 고객사에 납품하던 사업만을 위주로 해 오던 기업이 어느 날부터 작지만 소비재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유통라인으로 밀고 들어갈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다 돈이기 때문에, 포탈 사이트에서 직구매를 할 수 있도록 판매 사이트를 열었다. 하지만 이미 그런 제품을 판매하는 수 많은 기업들이 진을 치고 있던 판이라,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여 판매고를 올릴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거기다 보유하고 있던 제품군의 특성상 국책사업을 비롯한 여러 사업에 참여해야 나중을 바라 볼 수 있었다.

뻔한 낚시질이 반복되면 도외시 될 수 밖에

그 전에도 그렇게는 해 왔지만 계약 체결이나 공시 사안에 대한 정도로 나름 타당한 근거를 갖추고 있었다. 비교적 팩트에 기반한 이슈를 중심으로 여론의 주목을 받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B2C 제품이 출시된 이후부터는 소비자의 관심이 너무나 절실했다. 온라인 뉴스라도 한 줄 나가는 날이면 제품의 판매고가 눈에 띄게 달라졌기 때문에, 기사감이 되건 말건, 스토리가 있건 없건 어느 순간부터는 회사 이름이 포탈에 한 줄 걸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

회사는 며칠이 멀다하며 뉴스거리를 계속 만들어 냈다. 제대로 된 보도자료의 요건도 갖추지 못한 글들이 생성이 됐다. 하고 싶은 욕망만 있을 뿐 이를 받쳐주는 이벤트나 근거도 없는 상황인데다가, 단 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기를 바랬다. 충분한 자료를 가지고 아침 일찍 언론에 전달해서 기사 발제가 이루어지게 하는 등의 보통의 진행과도 동떨어진 의도가 계속 됐다. 금요일 오후에 무리수를 가진 자료가 나가기도 비일비재 했다. 제대로 된 이슈와 타이밍을 잡는다면 여러 언론에서도 관심을 가질 법 했건만, 통상적이지 않은 타이밍에 사사로운 이슈의 남발은 역효과를 불러올 뿐이었다.

웬만한 기업이라면 언론에 한 줄 나가는 것조차 언감생심이라고 생각하는 곳도 많다. 가까이 하고 싶어도, 알리고 싶어도 사실 수없이 많은 기업들을 대상으로 취재해야 하는 기자들의 속성상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 어느 누구의 노력이나 능력으로 인해 그런 관심의 대상이 되는 단계까지 올라갔다면 그 다음부터는 시간을 두고 다듬어 나가야 한다. 우선은 글에 대해 잘 아는 언론에서 그런 무자격 자료는 걸러지게 되는 것이 첫번째다 그렇게 뉴스는 다음어지고 품질이 올라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언로를 쥐고 있게 되면 말이 달라지는 기업들이 많다. 남들이야 한 줄 노출되기 위해 똥줄이 타든 말든 자신의 별 것 없는 이슈로 세상을 낚고 싶은 것은 보통의 마음이다. 그렇게 하루 이틀, 한 이슈 두 이슈 지나면서 신뢰는 한꺼풀씩 나가 떨어지게 된다. 작은 이익에 눈 먼자의 말로가 펼쳐진다.

코로나가 덮친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잘 없지만, 일본에서 꽤 유명한 백화점이 있었다. 1831년에 창업해서 10여년 전에 9천억 엔,,, 그러니까 거의 10조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고, 1만 여의 종업원을 거느린 일본 내 최고의 백화점이라는 다카지마야(高島屋)라는 곳이다. 이 백화점이 유명해진 일화는 여럿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창업주였던 이다신치 (飮田新七)가 당부한 것이 있어서다. ‘물건이 좋고 나쁜지를 미리 고객에게 알리고 판매하라,’ ‘손님을 빈부귀천에 따라 차별하지 마라’는 유지를 남겼다. 우리나라에서도 웬만한 상인이라면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는 기본도 예전에는 그러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다카지마야는 무려 190년이라는 오랜 동안 그 신념을 지켜오고 있기에 상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는 것이다.

큰 믿음을 주기 보다는 낚시질로 이름만 크게 알리는 시절이 되었다. 오랜 세월동안 노력하기 보다는 한 번의 낚시질로 이름을 알리고, 두 세 번의 낚시질로 일확천금을 꿈꾸는 세상이다. 셀럽들이 만나면 팔로우 숫자가 얼마고, 조회수가 화제가 되고 있다.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기업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위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낚시질에도 정도가 있다. 시간과 공을 들인 낚시질은 티가 나는 법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못한 낚시질이 많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서 걸맞지 않은 조잡한 낚시질에 참여 한 부끄러움도 많다. 지금에서야 하는 변명은 그런 얄팍한 낚시질임에도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대신할 수 밖에 없지만, 아직도 포탈의 한 구석에 떡 하니 자리잡고 있는 뉴스들을 대하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