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삼성SDI 등 국내 빅3 배터리 회사들이 미국을 넘어 유럽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중국 배터리 업체와의 글로벌 시장을 사이에 둔 치열한 전투의 주 전장이 바로 유럽이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공장. 출처=LG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공장. 출처=LG

미국 시장 장악전 돌입

지난 한미정상회담 정국을 기점으로 K-배터리의 미국 시장 진출에는 이미 속도가 붙은 상황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2019년 현지에 조인트 벤처 형식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한 후 GM과 보폭을 맞추는 모양새다.

GM과의 조인트 벤처인 얼티엄 셀즈를 통해 3년 뒤 총 70GWh 이상 규모의 공동 배터리 생산 능력을 갖춘다는 설명이다. 2조7,000억원 가량을 투자해 테네시주에 두 번째 공장을 건설하는 가운데 LG에너지솔루션은 글로벌 기준 2024년 75GWh의 독자적인 생산 능력을 포함해 총 145GWh 이상의 배터리 캐파를 확보한다는 각오다.

SK이노베이션은 총 3조원을 투자해 미 조지아에서 1공장 시운전에 돌입했으며 2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포드와 함께 블루 오벌 에스케이(Blue Oval SK)라는 조인트 벤처를 설립하며 총 9조원을 쏟아 붓는다는 각오다.

삼성SDI는 아직 미국에 공장이 없다. 배터리셀 제조 공장이 있으나 셀을 들여와 조립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발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이 발표되며 사정이 달라질 전망이다. 오는 2025년 7월부터 완성차업체가 무관세 혜택을 받으려면 주요 소재 및 부품 75% 이상을 현지에서 조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영현 삼성SDI 사장이 지난 9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1'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국 투자를 검토 중"이라고 말한 배경이다.

SK이노베이선 조지아 공장. 출처=SK
SK이노베이선 조지아 공장. 출처=SK

기회의 땅, 유럽

최근 K-배터리 영토전쟁이 주로 미국 등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가동되고 있으나, 사실 유럽은 이미 K-배터리의 중요한 전진기지로 자리매김한 상태다.

최근 글로벌 배터리 전쟁 경쟁이 심해지며 유럽의 중요성이 더 커진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 시장 조사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중국을 제외한 79개 국가에서 판매된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은 36.0GWh로, 전년 동기 대비 2배 이상 늘어났다.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가운데 LG에너지솔루션이 12.6GWh의 배터리 사용량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6.0% 급증, 일본의 파나소닉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선 장면이 눈길을 끈다. 여전히 탄탄한 글로벌 시장 경쟁력을 자랑하는 셈이다.

전통의 파나소닉은 9.7GWh를 기록해 2위로 밀려났다. 60.6%의 견조한 성장세를 보였지만 시장 점유율이 27.1%로에 그쳐 성장 동력이 흔들리는 분위기다.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은 각각 3.7GWh와 3.5GWh로 3위와 5위를 차지했다.

중국 CATL은 4위 3.6GWh로 4위에 올랐다. 테슬라의 '모델 3'를 비롯해 복스홀 '코르사'와 푸조 'e-2008' 등에 물량을 공급하며 급격히 성장해 전년 동기 대비 4배 이상의 성과를 냈다는 평가다. 중국 시장 점유율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LG에너지솔루션과 CATL이 글로벌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배터리 시장이 팽창하며 LG에너지솔루션과 함께 CATL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으나, 국제정치의 큰 흐름속에서 각 지역별 전략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CATL는 상대적으로 운신의 폭이 좁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 및 안보 신경전이 극으로 치닫는 가운데 CATL이 미국 등 북미 시장에서 외연을 확장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에서 중국 배터리 회사들의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 K-배터리가 그 빈 자리를 성공적으로 메울 수 있으나, 중국 배터리 회사들은 자국의 거대한 내수시장을 통해 K-배터리의 미국 시장 진출을 상쇄할 수 있는 기초체력을 보유한 상태다.

결국 둘의 전투는 유럽시장으로 옮겨갈 수 밖에 없다. 성장의 여백이 크고 자동차 시장이 탄탄한데다 뚜렷한 현지 배터리 업체가 존재하지 않는 유럽에서 한중 배터리 전쟁이 벌어질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유럽연합 차원에서 친환경 에너지 전략이 강해질수록 K-배터리와 중국의 전쟁은 더욱 치열하게 벌어질 전망이다.

헝가리 코마롬에 있는 SK이노베이션 유럽 배터리 제1 공장. 출처=SK이노베이션
헝가리 코마롬에 있는 SK이노베이션 유럽 배터리 제1 공장. 출처=SK이노베이션

K-배터리 고지전 시작되나

K-배터리는 이미 유럽 시장을 정조준한 상태다.

LG에너지솔루션의 유럽 시장 공략 선봉은 폴란드다. 폴란드 브로츠와프 인근에서 배터리 공장이 가동되고 있으며 최근 그 캐파를 70GWh에서 100GWh로 증설하기로 결정했다. 나아가 100km 떨어진 오폴레에 2공장을 추가 건설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헝가리에 2조6,000억원을 순차적으로 투입해 연산 30GWh 규모의 유럽 제3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결정한 상태다. 이미 코마롬에 연산량 7.5GWh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가동하고 있으며 9.8GWh 규모의 2공장도 만들어지고 있다. 삼성SDI는 헝가리를 선택했다. 9421억원을 투입해 괴드의 배터리 공장 증설에 나서는 등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K-배터리 전략이 날카롭게 전개되는 가운데 최근 유럽 배터리 시장이 심상치않은 흐름을 보여 눈길을 끈다.

파이낸셜타임즈는 16일(현지시간) 영국 정부가 자국에서 생산할 기가팩토리 사업을 구상하며 삼성 및 LG 등 6개 기업과 협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포드, 일본 닛산, 영국 스타트업인 브리티시볼트와 이노뱃 오토와 함께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이 영국 정부와 배터리 전략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뜻이다.

아직 협상 초기인데다 삼성 및 LG는 완성차 업체와의 협력이 있어야 영국 정부의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유럽 배터리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이미 K-배터리가 현지 존재감 강화에 나서는 장면에 시선이 집중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스페인 국빈 방문을 계기로 현지의 배터리 전략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스페인은 8개 자동차 회사의 15개 공장이 현지에서 가동되며 유럽에서 독일 다음으로 많은 자동차를 제조하고 있지만 자체 배터리 제작 시설은 전무하다. 여기에서 K-배터리가 스페인과 보폭을 맞추며 배터리 및 자동차 생산으로 이어지는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 길이 보인다는 주장이 나온다. 스페인이 리튬 광산을 다수 보유한 상태에서 K-배터리가 현지와의 협력을 통해 유럽 시장 전반의 로드맵을 가동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유럽 현지에서의 경쟁도 쉬운 일은 아니다. 독일과 동유럽을 중심으로 유럽 배터리 허브 전략이 가동되며 테슬라의 기가팩토리, 파나소닉도 노르웨이 배터리 공장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형 배터리 중심 시장이 조성될 것으로 예상되는 등 변수도 많다. 중국과의 결전을 앞 둔 K-배터리 진영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