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2위 유가공업체인 남양유업의 오너경영이 57년 만에 막을 내렸다. 남양유업은 최근 국내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에 홍원식 전 회장 지분 51.68% 등 오너일가 지분 전체를 3107억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연이은 오너리스크와 홍 회장의 '불가리스' 파문으로 남양유업 나름 쇄신에 나섰지만 소비자 불매운동 여파가 가라앉지 않자 오너일가가 아예 경영권을 넘긴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ESG경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하게 요구되는 상황에서 더욱 주목되는 사건이기도 하다.

남양유업 사태를 통해 잠시 잊혀졌던 내 기억 속의 파편을 맞추게 되었다. 20여년 전, 미국에서의 박사과정 시절에, 한달에 한 번씩 교수님들이 자신의 논문을 발표하는 전략경영 세미나 참석한 적이 있었다. M&A, 다각화, 전략적 제휴 등 다양한 전략경영의 주제를 다루는 시간이었는데, 하루는 아무도 관심 없는 주제인 ‘윤리경영’에 대해 한 교수님이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20년 전만 해도 이러한 주제는 매우 생소함과 동시에 주변의 관심도 현저히 떨어지는 주제였다. 그러한 것을 의식해서인지 발표하시는 교수님도 최대한 청중들로부터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나름 재미있게 발표하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2001년, 미국 역사상 최대 부도 사태인 엔론(Enron)사태가 미국을 뒤흔들었고 그동안 초야(草野)에 묻혀 있었던 윤리경영이란 분야는 어느덧 전략경영 분야 안으로 훅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다 ‘리셋’시켰다. 마치 ‘윤리경영’이 없는 ‘전략경영’은 그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윤리경영은 윤리학이 경영학과 접목된 한 분야로써 기업과 관련된 활동에 윤리이론을 적용한 학문분야로 자리잡았다. 이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윤리적 의사결정’으로 경영활동에 있어서 윤리적인 잣대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지침서가 될 수 있다. 이는 ‘윤리적 자세’를 기반으로 하여 의사결정시 자신의 이익과 타인의 이익을 동일한 가치선상에서 보라는 것이다. 윤리적 의사결정은 개인적 관점을 넘어서서 보편적 관점을 취하는 객관적인 관점을 취하도록 요구한다.

내부자거래, 뇌물증여, 정경유착, 자금횡령 등 우리가 자주 접하게 되는 기업스캔들과 관련된 뉴스는 윤리경영과 부합되지 않기 때문에 파생되는 사건들이다. 하지만 왜 이러한 윤리경영과 부합되지 않는 사건들은 되풀이될까? 위에서 언급된 윤리의식이 제대로 교육되지 않고 구성원들의 윤리관이 없기 때문일까? 물론 그러한 이유일 수도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윤리적 딜레마’가 주요한 원인일 것이다. 오늘날 기업의 구성원들은 지난 수십 년 간 있었던 기업 스캔들과 경영비리와 관련된 사건들을 인지하고 있고 목도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악습이 되풀이 되는 데에는 막상 본인들이 그 현실에 맞닥뜨려졌을 때 단순하게 여겨질 수 있을 이슈가 복잡하게 꼬이게 되는 것이다. 즉 객관적인 시각을 갖고 사안을 접근해야 하는데 일단 본인의 주관적 입장이 개입되고 그리고 자기와 관련된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을 다각도로 고려하다 보면 투명성과 객관적인 접근방식으로 문제해결을 할 수 없고 이는 본인이 갖고 있고 가져야만 할 윤리관이 흐려지게 되는 것이다.

한 조직의 윤리의식을 점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구성원들이 어떠한 인식을 갖고 있고 그것을 다 일일이 파악한다는 것은 경영자로서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다만 이러한 블랙박스를 열어보기 전에 조직에서 드러나는 적신호가 있다면 그 조직의 윤리의식을 점검할 수 있는 기회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적신호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전문가들은 그 조직이 단기적인 성과에 치중하거나 윤리문제가 발생했을 때 급하게 수습하려고 하며 윤리의식을 보완하고자 하는 시스템을 만들려고 하면 비용문제를 운운한다거나 윤리문제를 대외홍보적인 차원에서만 접근하는 경우 매우 위험한 조직이라고 평가한다.

최근 추세로는 어느 기업이나 윤리경영의 표준을 설정해 놓는 추세이다. 그러나 허울 좋은 표준보다는 그러한 표준과 기준이 어떻게 구성원들 안에서 체감되고 활용되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즉 조직차원에서 모든 구성원들이 ‘윤리적 리더’가 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한 예로 IBM의 경우 지속적인 윤리적 리더 워크숍을 통해 어떠한 의사결정, 즉 윤리적인 딜레마상황을 제공하고 그 의사결정이 내일 자 조간신문 헤드라인에서 어떻게 나오게 될지를 상상하게 하고 구성원의 윤리적인 의사결정을 유도하도록 한다. 우리와 같은 아시아권 국가는 개인의 체면이 중시되기에 비윤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게 될 때 ‘패가망신’ 할 수 있다라는 반복학습과 같은 리더십교육도 매우 유효할 수 있다.

하지만 윤리적 의사결정은 말처럼 쉽지 않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윤리경영이 쉬운 것이라면 우리가 경험했던 수많은 기업비리, 스캔들은 빈번하게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힘과 자력으로 어렵다면 어떠한 시스템과 과정에 의해서 의사결정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윤리적 의사결정이 도출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과정을 따르게 된다. 일단 구성원들이 진지하게 기업이 제시하는 윤리강령을 이해해야 하고 윤리적 문제를 접하게 될 때, 기업이 비윤리적 행위를 했을 때의 다양한 파급효과를 파악해야 한다. 즉 기업을 둘러싼 경쟁사, 이해당사자, 여론 등을 고려해 기업에게 미치게 될 영향을 다각도로 시뮬레이션해야 한다.

한 예로 어느 기업의 신제품의 불량률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됨에도 불구하고 신제품 출시를 강행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파급효과를 다각도로 분석해야 한다. 이를 통해 경쟁사는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고 기업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투자금을 회수할 수 없게 되며, 고객은 이탈하게 되고 직원들의 사기는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무엇보다도 기업에 대한 여론은 싸늘해 질 것이며 향후 기업의 명성에도 타격을 입게 된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기업의 윤리적 문제의식으로 연결되며 이는 곧 최종적인 윤리적 의사결정으로 도출된다. 위의 사례의 경우 만약 기업이 신제품의 불량률을 심각하게 인식하게 된다면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최종적으로 신제품출시를 낮추고 품질관리에 더 힘을 쏟을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윤리적 의사결정이 기업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낳게 될 것이고 단순한 윤리적인 문제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는 기업의 전반적인 실적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양유업의 홍 전 회장은 사퇴 당시 "성장만 바라보다 구시대적인 사고의 틀에서 못 벗어났다"고 했는데 이는 비단 남양유업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일은, 당신의 기업이 혹하는 사이, 어느 기업에게나 부지불식(不知不識)간에 일어날 수 일이다. 기업을 창업할 때에는 뼈를 깎는 듯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기업이 망하는 것은 바로 한 순간이다. 어쩌면 전략경영에서의 진정한 ‘센터’는 바로 ‘윤리경영’일지도 모른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