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 일 있으면 연락해!”

우리에게 너무나도 흔한 말이다. 언제 어느 때고 사용되는 말이다. 가족이나 친구 그리고 조직에서도 너무나 자주 사용한다. 회사라면 주로 아랫사람들이나 보호자가 피 보호자에게 사용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연락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웃픈 일도 자주 발생한다. ‘뭔 일’이라는 것도 너무나 주관적이어서 연락하는 사람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연락 하지 않은 일을 ‘대단한 뭔 일’로 생각한다면서 야단을 듣기 일쑤다. 또,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하고 연락을 했는데, 뭐 그런 시시콜콜한 것까지 연락하느냐며, ‘머리는 모자 쓸 때만 써 먹으라고 있는거냐?’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그래도 샐러리맨들 대부분은 ‘뭔 일’을 스스로 판단하여 후환을 키우기 보다는 ‘일은 일인데, 뭔 일’의 범주에 들어가는 지에 대한 판단마저도 연락해서 물어보게 된다.

이 말을 한번 더 파고 들어 가 본다면, ‘무슨 일이 생길 경우 함부로 행동하거나 대응하지 말고, 보고해서 지시를 받아서 행동하라’는 뜻이 담겨있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하는 경우에는 염려가 되기 때문에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쓰게 되겠지만, 조직의 경우에는 경솔하게 판단하지 말고 보고를 해서 상사의 지시를 받아서 움직이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책임질 군번이 아니기에. 담당자를 현장에 내 보내서 현장의 모든 것을 사사건건 보고를 하게 만들고, 거기에 대한 생각이나 판단을 일일이 해서 조종을 한다. 경헙치가 쌓여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흔한 상황이다.

생각나는 만화가 하나 있다. SNS 상에서 많이 나돌아서 대부분이 접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카투사병으로 근무했던 사람이 ‘폭설이 내린 날’의 상황을 간단한 만화로 그려서 올렸다. 그때가 2010년 1월이라고 나온다. 교통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니, 상당한 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군과 미국군은 함께 근무를 하지만 서로의 지휘체계가 다르기에 벌어지는 상황이 달라진다. 한국군과 미국군은 각각의 지침을 하달했다.

우선 한국군 병사는 전원 출근, 부사관은 근속년수 10년 이하까지는 출근 그리고 소령이하의 장교들도 출근을 했으나 그 이상의 고위급들은 힘든 출근은 하지 않고 각자 집에서 대기 명령이 떨어졌다. 반면에 미국군은 장군은 전원 출근하되 자차로 직접 운전할 것, 그리고 대령급 이상과 주임원사 이상의 간부들도 자차로 직접 출근해야 했으나, 병사들은 출근하지 않고 대기토록 했다. 이로 인해서 상황실에서 비상 연락을 맡은 인원은 한국군 쪽에는 병장이 그리고 미국군 쪽에서는 대령이 각각 전화 대기를 했단다.

상식과 규칙, 무엇이 먼저인가?

사실 나도 군대에서 군사령부에 근무를 해서 소령 중령 대령은 지겹도록 봤지만, 대령이라면 사실 웬만한 부대에서는 볼 일이 없을 정도 높은 사람이다. 대대의 대대장이라고 해봐야 중령이니까. 아무튼 비상대기를 하던 병장과 대령이 서로 어색한 상황임을 느끼고 있던 차에, 병장이 미국 대령에게 ‘왜 미국군은 병사들은 안전한 곳에서 대기 시키면서 대령 이상만 나와서 이렇게 고생하느냐?’고 물었다.

미군 대령의 답이다. 게급이 높을수록 권한과 책임이 많을 수 밖에 없고, 의사결정의 범위가 넓다. 지금 긴급한 일이 벌어지면 한국군은 상황병이 행정담당관한테 보고하고 그러면 행정담당관은 그 보고를 다시 중대장 대대장 거치면서 위로 위로 보고한 뒤에 최종적으로 장군에게까지 보고를 하게 된다. 최종 책임자의 판단에 따른 지시를 받아서 다시 아래로 아래로 상황병까지 하달하게 된다. 그리고 그 상황병은 그 지시사항을 전 부대에 전파해야 조치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미군 쪽은 대령인 자기가 알아서 판단 결정하고 조치한 뒤에 장군한테 보고하면 끝이다. 결론이 좋든 나쁘든 책임은 상황판단을 내린 자신이 지면 될 뿐이라 했다. 사건이 터지면 신속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결정을 내려서 대응해야 하는 데,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비상상황에 직접 나와서 대기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었단다.

아마 군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그리고 회사라는 조직 생활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나와 같은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싶다. 뭐가 더 우월한 시스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느 쪽이 더 상식적이고 합리적인가가 문제다. 폭설이 내려서 길을 다니는 그 자체가 위험한 상황이다. 이럴 때 고귀한 윗분들은 안전한 곳에 모셔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상식일 수도 있겠다. 우리 군은 지금도 눈이 오면 눈을 치우는 것은 사병들의 손이니, 그 많은 눈을 치우기 위해서는 사병들이 직접 연병장이며 도로에 나가서 빗자루와 삽으로 눈을 치울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군대 곳곳에 위치한 장비와 시설들의 안전을 점검하고 야외 훈련이나 그 밖의 수많은 상황에 따른 대응은? 적절히 판단을 하여 취소하거나 연기라는 것이 필요하다. 양쪽다 규칙에 부합하여 움직이고는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 좀 더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면서도 효율적이라는 것은 두 말 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머스크 (Maersk Line)라는 기업이 있다. 세계 최대의 해운회사로 덴마크 기업이다. 1904년에 설립되어 1999년 미국의 Sealand사를 인수했으며, 2006년에는 Nedlloyd사도 합병했다. 120여 개국에 370여개의 전용터미널을 보유하고 있다. 본사는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데 종업원 숫자만 13만 여명에 달한다. 포탈에서 머스크로 검색하면 일론 머스크가 제일 위에 자리하고 해운회사 머스크는 잘 나오지도 않는다. 이처럼 우리에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해운분야에서는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이런 대단한 기업이지만, 2017년 이맘 때에 엄청난 사건이 있었다. 그해 6월 27일 머스크는 대규모 사이버 테러 공격을 받게 된다. 어떠한 경고도 없이 상황이 벌어졌는데, 전 세계에 분포되어 있던 머스크 사무실의 컴퓨터란 컴퓨터는 모두가 먹통이 되어버린 것이다. 일단은 추가적인 피해를 막기 위해서 나머지 시스템도 차단해야 했는데, 이 때문에 전 세계를 운항중이던 선박의 20퍼센트 정도가 통신이 두절되는 일도 생겼다.

그 전에는 한번도 이런 일이 없었기에 머스크에서 일하는 베테랑 직원들조차 당황해서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때였다. CEO인 쇠렌 스코우 (Søren Skou)는 당시 전세계 각지에 퍼져있던 모든 지사에 이런 메시지를 전달했다. ‘고객과 기업의 입장에서 바람직한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본사의 지시를 기다리지 마세요. 그에 따른 비용은 우리가 모두 감수할 것입니다.’ 전 세계에 걸쳐 있으면서 세계 최대의 컨테이너 운송량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머스크의 모든 업무는 언제나 노선, 운임, 물동량 등등 복잡한 테이터가 주를 이룰 수 밖에 없다. 수없이 많은 컨테이너에 담긴 화물들과 화주들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컴퓨터와 이를 연결한 네트워크의 지원이 절대적이라 볼 수 있다.

사실 머스크가 1904년에 출범했다고 하지만, 이런 사이버 공격에 의한 네트워크 차단이라는 대형사고에 대해 경험이 있을 리가 없었고, 이럴 경우에는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가 처음 겪게 된 이런 엄청난 일을 어떻게든 대응해 나가기 위해 그 어디에서도 참조가 될만한 지시나 지침을 찾을 수도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그랬을 때 CEO가 전달한 메시지는 참으로 효과가 컸다. 사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전 세계 곳곳에 포진해 있는 터미널에서 맞이 하고 있는 각각의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그 터미널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일 수 밖에 없다. 아시아나 남미의 어느 화물터미널에서 발생한 상황에 대한 대응을 제 아무리 코펜하겐의 본사에 보고를 한다고 한들 제대로 된 지시가 나올 리가 만무했다.

결국 물어 뜯기는 건, 큰 일 보다 사소한 누락과 태도

사이버 테러는 머스크에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혔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상황들이 나타났다. 수직 체계가 가동이 중지되자 직원들이 스스로 판단해서 나설 수 밖에 없었다. 모든 개별적인 상황에서 직원들은 스스로가 생각하고 결정해서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머스크의 CEO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메시지를 전달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머스크 직원들은 먹통이 되어버린 컴퓨터를 붙들고 있기보다는 그 전의 아날로그 방식으로 되돌아가서 고객들을 직접 찾아가 만났다. 직급이 높고 낮음이 문제가 아니었다. 터미널에 들고 나는 화물차의 기사에게 직접 말로 전달해야 했고, 그 전에는 메일이나 메시지를 보내면 그만이었지만, 곳곳을 직접 발로 뛰며 설명하고 전달해야 했다. 비용 절감과 효율화 측면에서 디지털로 진화했지만, 당시 상황은 모두를 아날로그로 몰아 넣었다. 수 많은 지역에서 벌어지는 개개의 상황을 일일이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불가능이었다. 때문에 모든 직원들은 스스로가 판단하는 능동적인 자세를 견지할 수 밖에 없었다.

결과는 조직 전반에 걸쳐 긍정적인 변화로 나타났다. 데이터와 숫자로만 대하던 고객들 그리고 임직원들 서로가 ‘사람’이었음을 느끼게 된 것이다. 항의하던 고객들도 없진 않았으나 그 힘든 상황을 함께 하며 고객과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고, 조직과 임직원들도 전보다 끈끈해졌다. 마인드가 달라졌고 사기가 전보다 더 높아졌다. 수리를 해서 컴퓨터가 다시 가동을 하게 됐을 때는 임직원들의 아날로그 파워와 합체가 되어, 회사는 그 전보다 훨씬 더 나은 조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고객과 임직원 간에는 그 전보다 훨씬 더 높은 ‘공감대’라는 것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머스크의 사이버 테러라는 것에서, 머스크 대신에 ‘우리’를 대입시켰다면 어떨까? 아마 ‘함부로 경거망동 하지말고, 매 상황을 재빨리 유선으로라도 보고하고 지시를 받아 움직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다. 다시 말 하자면 ‘책임질 수 없는 일 함부로 하지 마라’ 정도가 되겠다.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책임은 내가 질테니, 니가 알아서 잘 하라’ 같은 생각이나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직장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변명이 ‘보고는 했는데, 아직 지시가 내려오지 않아서 기다리는 중’이라는 것이다.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거나, 앞에 두고 상대하는 사람에게 약간의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상부에 보고를 하고 지시를 받아야 하니 다음 번에 결정하겠다고 물러서는 경우가 허다하다.

회사들마다 구인광고에서는 창의력 있는 인재, 주체적인 인재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조직에 몸 담기 전까지의 스펙이고 조직이 들어와서 함부로 창의성을 발휘하거나 주체적으로 행동하면 큰 일 난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웬만큼 연세 있는 경영진도 수백 수천억 원의 유상증자, 감자 또는 기업 인수 합병 같은 건에 있어서는 함부로 감놔라 배놔라 하지를 않는다. 때문에 극도로 본인의 판단을 아끼고 아껴서 실무진과 전무가들이 모인 회의체를 통해 내린 판단을 좇는 경우가 많다. 사실은 그게 다 옳진 않은데도 말이다. 직장생활하면서 그런 큰 일은 사실 횟수가 기억나지 않을만큼 많이 겪었다. 배가 산으로 가고 있지만, 모두가 찬성하면 배를 하늘로 띄우기 일쑤였다. 그렇게 하늘로 날아 오른 배가 처참하게 쳐박혀도 뒷탈은 없었다. 모두가 한 배에 타고 있었다. 그거 하나만으로도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판단이나 결정은 자기 집 장롱 서랍에 넣어두고 다녔다.

하지만 사소한 것에 대해서는 태도가 달라진다. 만만해 보이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따지지도 않고 입을 대고 공격하기 좋아들 한다. 난해한 과학기술과 스펙들이 전문용어로 뒤범벅 되어 있던 브로슈어의 글들을 읽기 쉽게 스토리로 바꿔 보려던 시도를 했다가 낭패를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결론은 원점회귀였다. 아무도 찾지 않는 웹사이트에 사람들이 볼만한 글을 써서 올렸다. 하루하루 사이트 방문자들 숫자가 쑥쑥 늘었다. 몇 개월 가지 못했다. 불과 얼마 뒤에 복잡한 기호와 상업적인 냄새만 물씬 풍기도록 갈아 엎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사이트가 되었다. 사실 본사의 지시를 기다리지 말고 알아서 하라는 말처럼 무서운 말도 없다. ‘뭔 일’ 있으면 연락하라고 했는데, 결국 나중에 뒤통수를 후려 갈기는 것은 대형 이슈 상황이 아니라 그런 ‘뭔 일’에 대한 사사로운 감정일 때가 많다. 그래서 조직 생활이 무서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