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동훈 기자] 전세계 각국이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 내연기관차 퇴출을 시도하는 상황에서 업계에선 ‘최후까지 버틸 수 있는 내연기관 승용차(passenger car) 모델은 과연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고개를 들고 있다.

자동차의 배기가스를 배출하는 배기구. 출처= 픽사베이
자동차의 배기가스를 배출하는 배기구. 출처= 픽사베이

“대세는 전기차”

전기차 시대는 기정사실이다.

1일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독일 완성차 부품업체 콘티넨탈(Continental)이 주요 5개국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당신은 나중에 전기차를 운전할 것이라고 상상하십니까?’라고 설문한 결과 ‘그럴 것 같다’(more likely)라는 답변의 비중이 독일 35%, 프랑스 28%, 미국 44%, 중국 86%, 일본 25%(추정) 등 순으로 나타났다.

독일 완성차 부품업체 콘티넨탈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5개국 소비자 설문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만든 도표. 2013년에 비해 지난해 전기차를 구매할 의사가 있는 소비자들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출처= 콘티넨탈  Continental Mobility Study 2020
독일 완성차 부품업체 콘티넨탈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5개국 소비자 설문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만든 도표. 2013년에 비해 지난해 전기차를 구매할 의사가 있는 소비자들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출처= 콘티넨탈 Continental Mobility Study 2020

국가마다 전기차 구매 의사를 보인 응답자의 비율은 격차를 보인다. 다만 지난 2013년 동일한 설문조사에서 나타난 국가별 응답 비중에 비해 지난해 미국 28%P, 중국 27%P, 독일 18%P, 프랑스 3%P, 일본 1%P씩 높아졌다.

전기차 시장의 소비 추세가 이 같이 변화한 배경에는 완성차 업체의 친환경차 개발 전략뿐 아니라 각국의 내연기관차 퇴출 방침이 자리잡은 것으로 분석된다.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이 주행중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내연기관차를 시장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유럽 국가 가운데 노르웨이가 오는 2025년부터 내연기관차 신차를 판매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것을 시작으로 영국(2030년), 중국 및 미국 캘리포니아주(2035년) 등 주요 시장의 정부가 이 같은 정책을 펼칠 예정이다.

콘티넨탈은 전기차 시장의 확장세가 과거 업계 일각의 예상보단 더디게 이어지고 있지만 전기차는 완성차 산업의 주류로 떠오르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콘티넨탈은 “전기 구동차량의 보급 추이는 최근 제시된 기대치보다 훨씬 뒤처져 있다”면서도“한편 생태적 지속 가능성이라는 주제가 사회·정치적 분야에서 받아들여짐에 따라, 전기차는 많은 기업들에게 선택적 사치품에서 비즈니스 모델의 중심 기둥이 됐다”고 주장했다.

폭스바겐의 SUV 라인업(기사 본문과 특별한 관련없음). 사진= 이코노믹리뷰 DB
폭스바겐의 SUV 라인업(기사 본문과 특별한 관련없음). 사진= 이코노믹리뷰 DB

전기차 패러독스, 전동화 위해 내연기관차 더 팔려야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고 있지만 완성차 업체의 속내는 복잡하다. 전기차에서 내연기관차로 넘어가는 과도기, 일단 수익원인 내연기관차를 지속 판매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기차로 수익을 내기 위해선 업체별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신차 가격을 현저히 낮출 수 있도록 제품 수요와 제조기술이 모두 뒷받침돼야 하지만 현재로선 이를 달성한 기업이 많지 않다.

테슬라가 의외로 허약한 기초체력을 가진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현재 전세계 순수전기차 시장 1위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미국 완성차 업체 테슬라의 경우 지난해 당기순이익 7억2,100만달러(약 7,996억원)를 기록했다. 지난 2003년 창립된 이후 첫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친환경차를 판매함에 따라 확보한 규제 크레딧(credit)을 타사에 판매함으로써 얻은 영업외수익 15억8,000만달러(약 1조7,522억원)를 제외하면 8억5,900만달러 수준의 적자를 냈다.

SUV·고급차 등 고부가모델 전동화 가속

업계에선 전세계 내연기관차 시장에서 이제 비주류로 구분되는 저가 소형차들이 자리를 가장 오래 지킬 것이란 의외의 전망이 나왔다. SUV, 고급차 등 최근 시장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인기모델들이 가장 먼저 내연기관차 시장을 떠나는 추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내놓고 있는 전기차 라인업 전략에서 내연기관차 배제 계획을 가늠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는 준중형 SUV(아이오닉5), 중형 세단(아이오닉 6), 대형 SUV(아이오닉7) 등 SUV와 중형급 이상 고급 세단을 중심으로 차세대 전기차 브랜드 아이오닉(IONIQ)의 라인업을 구성할 방침이다. 기아도 준중형 SUV(EV6)로 차세대 전기차 EV시리즈의 포문을 열었다.

미국에서도 SUV, 픽업트럭 등 인기있는 차종의 전동화 모델을 먼저 내놓음으로써 고객 관심을 끌고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제너럴모터스(지엠)는 연말 전기차 전용 얼티엄(Ultium) 배터리 플랫폼을 기반으로 개발한 첫 모델인 픽업트럭 ‘GMC 허머 EV’를 출시할 예정이다. 포드도 첫 전기차 모델로 고성능 SUV인 ‘머스탱 마하-e (Mustang Mach-e)’를 내놓은데 이어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을 내년 봄께 출시할 예정이다.

이밖에 르노 조에, 폭스바겐 e-업, 피아트 500e, 우롱 훙광 미니 EV 등 소형 전기차도 전통적으로 작은 차를 선호하는 유럽이나 가격에 민감한 중국에서 주로 호응을 얻고 있다.

포르쉐·람보르기니도 전기차 바람

벤츠, BMW, 아우디 등 고급차 브랜드들도 기존 내연기관차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던 중형급 이상 제원의 차량을 전기차 라인업에 우선적으로 투입하고 있다. 럭셔리카 브랜드 가운데에서도 포르쉐에 이어 람보르기니, 벤틀리 등이 순수전기차 모델을 이미 출시했거나 향후 내놓을 계획이다. 수익성과 관련이 큰, 내연기관차 시장 먹이사슬의 상위에 속한 브랜드들이 속속 주류 모델을 전동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시장별 업황을 고려할 때 전세계적인 전기차 개발·출시 추세는 인기 많은 차종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비해 세단이나 소형차 등 시장마다 적은 수요를 창출하는 차종은 전기차 라인업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업계 일각에서는 개발도상국에 판매될 소형차들이 내연기관차 시장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할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글로벌 자동차 전문매체 오토모티브 월드는 오는 2030년까지 승용차와 소형트럭 등을 포함한 경자동차(light vehicle) 시장에서 ‘대중적인 소형차’(maas market smaller vehicles)가 가장 가장 더디게 전동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오토모티브 월드는 “배터리팩 제조 비용이 갈수록 줄어 전기차의 가격대가 내연기관차와 동등해질 것이란 전망은 B, C 등 세그먼트 차종에는 적용되지 않는 말”이라며 “이 같은 비용, 접근성 격차 등 요인으로 인해 (일부) 내연기관차는 아시아, 중동,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에서 수년 동안 해답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