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시작된 가운데 각 국가들은 자국 중심 제조거점 확보에 속도를 내는 한편 미중 신경전도 극한을 향해 달리는 중이다. 그 연장선에서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연합을 결성해 바이든 행정부에 지원을 요구하는 한편, 한국 기업인들은 대거 방미길에 오르며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힘의 충돌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전쟁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반도체 슈퍼사이클 및 차량용 품귀현상 등 시장의 이상현상이 광범위하게 벌어지는 가운데 트런프 전 행정부 당시부터 시작된 미국의 중국 반도체 굴기 견제가 여전하다.

이런 가운데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2월 글로벌 원자재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행정명령 카드를 꺼내는 한편 지난 4월 삼성전자 등 주요 반도체 업체들을 불러 자국 중심의 반도체 제작 로드맵에 시동을 걸었다.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이 코로나19 등으로 한 차례 붕괴된 상태에서 유럽은 물론 미국까지 자국 중심 생산 전략에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미국 반도체 업체들은 반도체 연합까지 구축하며 실력행사에 나서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이상현상으로 반도체 품귀 현상이 심해지는 가운데 미 정부가 자국 반도체 기업들을 더욱 강하게 지원해야 한다는 취지다.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에서 ‘미국반도체연합(SAC·Semiconductors in America Coalition)’이라는 로비단체가 결성된 배경이다. 이들은 500억달러 규모의 반도체 업계 지원금을 조속히 지원하라는 입장을 미 상하원에 전달했으며, 무엇보다 반도체 쟁탈전이 국가 대항전으로 벌어지는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거국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글로벌 반도체 업계 상황이 복잡하게 흘러가는 가운데 일단 바이든 행정부는 오는 20일(현지시간) 주요 반도체 업제들을 또 한 번 불러들여 대책회의를 한다. 삼성전자도 포함된 이번 회의에서는 4월 1차 회의와 마찬가지로 미국 반도체 생산 거점에 대한 각 기업의 투자를 독려하는 자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반도체 기업, 어디로?

한국 정부도 최근 반도체 시장의 이상기류를 감지하고 추가대책 마련에 고심하는 모양새다. 이와 관련해 시스템 반도체 전략 고도화 등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는 가운데 각 기업들도 미중 갈등의 파도와 시장의 흐름을 주시하며 유연한 대응에 나서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처음 열리는 한미정상회담 일정에 맞춰 방미 경제사절단을 꾸릴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들의 행보에 업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에서 투자를 진행하거나 혹은 진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인들이 총출동하는 가운데 삼성전자에서는 구속중인 이재용 부회장 대신 김기남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부회장)이나 최시영 삼성전자 DS부문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사업부장(사장)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는 물론 배터리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미국 내 사업을 진행하는 경제사절단이 미국 현지에서 한국 정부와 보폭을 맞추며 최근의 시장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로드맵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기초체력을 키우는 노력도 병행된다. 삼성전자는 삼성 반도체 비전 2030을 가동하는 상황에서 발표 당시 수립한 133조원의 투자계획에 38조원을 추가해 2030년까지 총 171조원을 투자한다는 전략을 13일 공개했다. 2022년 하반기 완공될 평택 3라인의 클린룸 규모는 축구장 25개 크기에 달하며 국내 반도체 생태계의 발전을 위한 상생협력과 지원∙투자도 더욱 확대한다는 설명이다.

SK하이닉스도 승부수를 던진다. 박정호 부회장이 파운드리 사업 집중을 예고한 가운데 13일 SK하이닉스는 파운드리 생산능력을 기존 대비 2배 끌어올리기로 결정했다.

SK하이닉스 박정호 대표이사 부회장은 “현재 대비 파운드리 생산능력을 2배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하는 한편 국내 설비증설, M&A 등 다양한 전략적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당사는 8인치 파운드리 사업에 투자해 국내 팹리스(Fabless)들의 개발 및 양산은 물론, 글로벌 시장 진출을 지원하겠다”며 “글로벌 기업들에게는 모바일, 가전, 차량 등 반도체 제품 공급 범위를 넓힐 수 있다”고 기대효과를 강조했다.

다만 SK하이닉스가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부를 인수하며 중국에만 무려 3개의 생산기지를 가져가는 상황에서 이를 둘러싼 국제정치의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질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결국 반도체 시장에서 힘의 충돌이 벌어지는 한편, 국가 대항전 성격의 전투가 더욱 격렬하게 벌어질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