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대만 TSMC가 중국에서 차량용 반도체 공장 증설에 나서는 상황에서 두 나라 정치권이 연일 시끄러운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이 심한 가운데 TSMC가 중국에 차량용 반도체 공장을 증설하는 것은 ‘윈윈 전략’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복잡한 노림수들이 뒤엉켜 있기 때문이다.

출처=갈무리
출처=갈무리

4일 업계 등에 따르면 TSMC는 지난달 23일 이사회를 통해 중국 난징에 28억8,700만달러를 투입해 차량용 반도체 공장 증설에 나선다. 28나노 버전이며 12인치 웨이퍼 기준 월 4만장을 생산하겠다는 각오다.

TSMC의 중국 공장 투자 계획은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을 극복하기 위함이다. 최근 반도체 품귀 현상으로 완성차 업체들이 속속 셧다운에 들어가는 가운데 TSMC가 물량 부족 현상을 극복하려 결단을 내렸다는 평가다.

류더인 TSMC 회장도 3일(현지시간) 미국 CBS TV에 출연해 “최대한 공급량을 늘리는 것이 목표”라며 “6월에는 심각한 상황을 모면할 수 있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말했다.

대만의 역대급 가뭄과 일본 지진, 미 텍사스 이상한파 등 반도체 거점이 자연재해로 큰 타격을 받은 상태에서 TSMC가 차량용 반도체 물량 확보를 위해 본격적인 드라이브를 걸었다는 뜻이다.

문제는 정치적인 이슈에서 불거졌다. 최근 미국과 중국의 신경전이 극에 달한 가운데 대만은 미국의 편에서 중국의 맹공을 버티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만 기업인 TSMC가 ‘굳이 중국에 공장을 증설해야 하는가’라는 지적이 대만 정치권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기술유출 우려도 제기된다. 중국의 고질적인 지식재산권 침해 논란이 여전한 가운데 글로벌 반도체 제작 거점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서 대만을 대표하는 반도체 기업인 TSMC가 중국에 공장을 증설할 경우 중국 당국의 ‘지식재산권 탈취’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문제는 중국도 TSMC의 행보를 마뜩치않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중국은 일단 TSMC가 28나노 공정의 차량용 반도체 공장 증설에 나서기 때문에 미세공정 기술력과 큰 관련이 없고, 당연히 기술 유출이 벌어질 이유가 없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10나노 공정 이상의 반도체 제작을 미세공정으로 분류하는 상황에서 TSMC가 28나노 공정을 통해 중국 공장을 건설하는 것은 ‘기술유출의 빌미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다만 이 주장은 차량용 반도체가 28나노 공정으로도 충분히 설계될 수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다. 무엇보다 TSMC가 28나노 공정을 통해 난징에서 차량용 반도체를 제작, 현지 자동차 업계에 납품할 경우 심각한 차량용 반도체 품귀난은 일부 해결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중국 정치권에서 더 심각한 문제로 지적하는 것은 ‘기술 종속성’이다. TSMC가 난징에서 공장을 가동하며 현지 자동차 업계를 지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 중국 당국이 TSMC에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이 지난달 백악관 회동을 통해 각 반도체 기업에게 자국에 대한 투자를 종용한 가운데, 대만의 TSMC가 중국에는 상대적으로 미세공정과는 거리가 먼 28나노 반도체 공장을 증설한다 밝히자 중국 내부에서 반발이 더 크다는 분석도 있다.

여기에는 중국과 TSMC의 ‘애증’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당초 TSMC는 중국 화웨이와 오랫동안 협력하며 트럼프 전 행정부 시절 벌어진 미중 무역분쟁 당시에도 중국의 손을 잡은 바 있다. 그러나 지난해 트럼프 행정부 말기에는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대만 정부와 보폭을 맞췄고, 결국 화웨이와 결별을 선언하고 미국 공장 증설을 매개로 완전한 친미노선으로 갈아탔다.

최근에는 중국 기업들과 연쇄적으로 거래를 끊는 중이다. 당장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지난달 16일 TSMC는 중국의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 설계 업체인 페이텅과의 협력을 중단하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TSMC가 중국에서 반도체 공장을 증설한다는 계획을 밝히자 ‘복잡한 속내를 드러내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