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정민 기자] #.희끗희끗 세월에 물든 새치, 우아한 컬이 들어간 헤어, 자수 셔츠에 종아리 기장 호피무늬 스커트까지. 중장년층을 위한 패션 모바일 앱에서 나이와 상관없는 멋스러운 코디를 선보인 화보에 5060세대가 '좋아요'로 찬사를 보낸다. 한 중년 여성은 "여기서 추천해준 코디따라 옷입고 액세서리하고 교회에 가니 한층 즐겁다. 나이에 연연해하지 않고 자신감있게 멋지게 연출할 수 있었다"고 했고, 다른 유저들도 '댓글'을 남기며 공감을 표한다.

# 어느덧 50대에 접어든 주부 A 씨는 유튜브를 시청하다 평소 좋아하던 패션 브랜드 채널을 발견한다. 동영상 카테고리에서 줌마들의 토크쇼 ‘학폭논란 속 부모의 예방 및 대처법'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클릭한다. 10분정도 보다보니 자연스럽게 4명 패널 착장이 눈에 들어왔다. 더보기란에 정보가 있을까 싶어 눌러보니 온라인몰 링크가 떠 쉽게 원하는 원피스를 구매할 수 있었다. 학교폭력 예방 정보에 쇼핑까지 한 번에 가져간 A씨는 만족감을 느끼며 망설임 없이 해당 채널의'구독'을 클릭했다.

'젊.그.송' 유튜브 영상 캡쳐. 출처=세정
'젊.그.송' 유튜브 영상 캡쳐. 출처=세정

패션업계가 5060 '오팔(OPAL)세대'를 위한 온라인 콘텐츠를 선보이며 소비자 점접을 높이기에 분주하다. 중장년층이 코로나19 이후 인터넷, 모바일, 앱 등 어떠한 채널도 마다하지 않고 소화할뿐 아니라 원하는 정보와 제품을 직접 검색하는 등 빠르게 변하고 있어서다. '올드 피플 위드 엑티브 라이프(Old People with Active Life)' 앞글자를 딴 '오팔세대'는 자신을 위해 아낌없이 소비하고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세대를 뜻한다. 이들이 최근 온라인으로 빠르게 유입되면서 패션 브랜드들은 니즈를 반영한 콘텐츠를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중장년층을 주요 고객으로 삼는 패션 브랜드들은 유튜브, SNS 등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과거 잡지, 홈쇼핑, TV광고를 통한 마케팅을 주로 전개하던 고정관념에 벗어나 새로운 플랫폼으로 영역을 넓히는 양상이다.

세정그룹 라이프스타일 패션 전문점 '웰메이드(WELLMADE)'는 전속 모델 임영웅과 함께한 트롯웰송 3탄 '젊.그.송'을 유튜브와 공식 SNS를 통해 공개했다. 지난해 트롯웰송 시리즈 1, 2탄에 이은 이번 3탄은 공개된지 불과 일주일여만인 현재 51만 조회수를 돌파했고, '우리 영웅님과 찰떡', '웰메이드송 대박' 등 2,200여개 댓글이 달리며 중장년층 '팬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번 유튜브 영상은 '국민 옷집'과 같은 트렌디한 용어는 물론 뮤직비디오 구성을 통해 기존 기성세대를 위한 광고의 틀을 깬 것이 특징이다. '젊음을 그대에게'라는 타이틀에 맞춰 댄스를 선보이는 임영웅을 내세우면서도 상품에 대한 직접적인 광고는 덜어냈다. 지난해 임영웅과 함께 선보인 영상을 통해 판매량 최대 8배를 기록한 바 있는 웰메이드는 올해 더욱 다양한 콘텐츠를 전개할 예정이다. 1020세대에 국한됐던 팬덤 문화가 최근 온라인을 중심으로 중장년층에게도 번지면서 모델을 활용한 유튜브 마케팅에 집중한 모양새다.

제품 중심 '광고 마케팅'에서 벗어나 정보를 교환하는 '콘텐츠'를 내세우는 브랜드도 있다. 여성복 브랜드 '올리비아 로렌'은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올리줌톡' 코너를 마련해 고객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 올리줌톡은 중년 여성 크리에이터 4인이 4050세대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쇼다. 시청자 중 약 55%가 4050대 여성이 차지할 만큼 중년 여성들에게 큰 공감을 얻고 있다.

5060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여성복 '블랑코드(BLANCODE)'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브랜드를 론칭하는 혁신을 시도해 눈길을 끈다. 중장년층의 오프라인 방문이 절반 넘게 줄어든 데 반해 온라인을 처음 경험한 기성세대는 빠르게 증가한데 따른 것이란 사측 설명이다. 젊은층 패션 스타일링에 관심이 높은 시니어를 타깃으로, '스타일리시한 옷은 시니어 체형에 맞지 않다'는 편견을 벗어 던지며 세련된 디자인을 선보일 계획이다.

온라인을 통해 중장년층 사이 패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온라인 플랫폼 시장에서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최근 온라인 여성 패션  플랫폼 '지그재그'는 70대 배우 윤여정을 모델로 발탁, 2030 타겟 플랫폼이라는 인식을 뚫는 이례적 행보를 보였다. 미니멀룩을 즐겨 입는 윤여정은 주로 화려한 색상과 디자인의 옷을 통해 체형을 감추는 중년 여성 스타일에  반향을 일으키며 기성세대 사이 '윤여정 패션'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그재그는 그를 모델에 기용함으로써 '틀에 박힌 역할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삶을 사는 가치'를 설명하겠단 전략이다. 

중년 여성의 니즈를 반영하기 위한 모바일 패션 앱도 등장했다. 45세 이상 소비자층에 대응하는 플랫폼 '퀸잇(구 우패션)'은 지난해 첫 선을 보인 이후 프랑스 오리진 골프웨어 브랜드 '까스텔바작'과 '꼼빠니아', '조이너스' 등 중장년층이 선호하는 백화점 브랜드를 입점시켜며 인기를 끌고 있다. 모바일 쇼핑에 익숙하지 않은 이용자들도 사이즈, 색상 등을 선택하고, 개인 정보 입력과 같은 번거로운 구매 절차 및 교환까지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지그재그 모델 배우 윤여정. 출처=지그재그
지그재그 모델 배우 윤여정. 출처=지그재그

5060세대의 디지털화...주체적 '액티브 시니어'로 탈바꿈

오팔세대가 지난해 코로나19로 온라인으로 유입되면서 패션업계의 마케팅 대응이 달라지고 있는 분위기다. 디지털 플랫폼이 2030대 등 특정 연령층에만 활용됐던 과거와 달리 중장년층에서 유튜브를 검색 창구로 사용하고 온라인 구매까지 이어지는 추세가 두드러지고 있어서다. 

실제 최근 미디어 소비행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0~60대 중 평균 48~56%가 유튜브 등을 통해 정보 검색을 한다고 답했다. 특히 지난 2016년 대비 각 연령별 평균 증가율은 여성 23%, 남성 4%로 중년 여성층의 디지털 플랫폼 사용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온라인 쇼핑 대열에 합류한 중년 소비층도 눈에 띄게 늘었다. 온라인을 활용해 명품을 구매한 중년층 비중은 약 29%로 전년(약 17%) 대비 12% 가량 증가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녀에게 스마트 기기를 사용하는 법을 배우거나 스스로 터득하는 등 중장년층의 디지털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온라인 세계를 경험한 중장년층들은 좋아하는 가수에 대한 팬심을 소비를 통해 서스름 없이 드러낸다. 과거 가정에만 희생하는 삶을 지향하던 모습에서 주체적 삶을 살아가는 활동적 장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더군다나 오팔세대는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다는 특징이 있다. MZ세대가 주요 소비 층으로 주목받는 요즘이지만 '머니파워'가 있는 중장년층은 하나를 고르더라도 품질이 좋다면 가격에 연연하지 않는다. 또한 같은 제품을 색상별로, 한꺼번에 많이 구입하기도 한다. 이들이 온라인을 통해 점차 패션으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자는 수요가 늘면서 소비 잠재력이 커지고 있다. 지난 몇 년 간 침체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국내 패션브랜드들이 이들을 주목하는 배경이다. 온라인을 접점으로 브랜드 충성도를 높인다면 현재 위기도 탈출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중장년층은 TV를 주로 시청하고 MZ세대는 온라인을 선호한다는 편견이 깨져가고 있다"며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채널을 통해 고객 연령대에 맞는 컨텐츠를 제공하고 충성고객을 확보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