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민규 기자] 지난해 코로나19발 경기 침체 속에서도 꾸준히 선방하던 LG에너지솔루션·SK이노베이션(096770)·삼성SDI(006400) 등이 올해 들어서는 중국 배터리 업체들에 밀리는 모습이다.

심지어 톱10에 이름을 올린 다수의 기업도 중화권을 무대로 활동하는 기업들이라 K-배터리가 일종의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국내 배터리 업계 안팎에서는 그간 우려해 온 K-배터리 약화가 가시화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지난 1월부터 2월까지 집계된 글로벌 전기 자동차용 배터리 사용량. 출처=SNE리서치
지난 1월부터 2월까지 집계된 글로벌 전기 자동차용 배터리 사용량. 출처=SNE리서치

2일 에너지 시장 조사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2월까지 세계 79개국에서 판매된 전기 차(EV)·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카(PHEV)·하이브리드 카(HEV) 등에 탑재된 배터리의 규모는 총 25.2기가와트시(GWh)로, 전년 동기 대비 2배 넘게 늘어났다. 지난 2020년 3분기와 4분기에 이어 2021년 초에도 전기차 및 전기차용 배터리에 대한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양상이다.

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K-배터리다. 국내 배터리 3사도 성장 모멘텀을 이어 가고 있으나 시장 지배력이 눈에 띄게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위협적인 성장세까지 맞물리면서 그 간극은 더 두드러지는 모양새다.  

실제로 중국 CATL이 배터리 사용량 8.0GWh로 무려 31.7%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며 글로벌 배터리 업계 1위를 수성한 가운데,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점유율은 모두 전년 동기보다 하락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6.6%에서 19.2%로,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은 각각 8.6%와 6.0%에서 5.3%와 5.0%가 됐다. 한국 배터리 3사의 시장 점유율을 합쳐도 CATL에 미치지 못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의 왕좌를 두고 CATL과 자웅을 겨루던 LG에너지솔루션으로서는 위기감을 느낄 만한 상황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2위를 지키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CATL과의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사용량과 시장 점유율은 각각 4.8GWh와 19.2%로, CATL에 비하면 사용량은 60%에 그치고 점유율은 12.5%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같은 기간에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은 각각 5.3%와 5.0%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며 5위와 6위에 올랐다.

한편 올해 2월만 따지면 SK이노베이션이 삼성SDI를 제치는 '서프라이즈'도 있었다. 이 기간에 집계된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사용량은 0.7GWh로, 0.6GWh의 삼성SDI를 압도했다.

한 풀 꺾인 성장세

앞서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12월 세계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에서 6.9GWh를 기록, 26.8%의 시장 점유율로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그러나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1월부터 배터리 사용량이 2.5GWh로 급격히 쪼그라들더니 시장 점유율도 18.5%로 전월보다 8%포인트 급락했다.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의 사용량이 2.6GWh로, 시장 점유율은 23.4%로 소폭 개선된 올 2월은 차라리 나은 상황이다. 

그렇다고 LG에너지솔루션의 전기차용 배터리 판매량이 역성장한 것은 아니다.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사용량의 전년 동기비 성장률은 2020년 12월부터 2021년 2월까지 석 달 동안 꾸준히 플러스(+)를 유지해 왔다.

다만 둔화세가 명백했다. 작년 12월에 365.8%라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나타냈던 LG에너지솔루션은 한 달 만에 두 자릿수 성장률로 복귀했다. 1월 50.6%였던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사용량 성장률은 2월 62.1%로 다시 상승했으나, 이가 반등의 시작인지는 지난달 통계가 나와야 판단할 수 있다.

사정은 SK이노베이션과 삼성SDI도 다르지 않다.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은 2020년 12월에서 지난 1월로 넘어가면서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이 반토막 났다. 이는 성장세 둔화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12월에는 국내 배터리 3사 모두 세 자릿수 성장률을 시현했지만, 올 1월 두 자릿수대로 크게 하락했다. 삼성SDI는 166.1%에서 18.6%로, SK이노베이션은 675.9%에서 68.5%로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계절적 비수기에 따른 현상이라는 말도 나오지만 개화하고 있는 전기 자동차 시장만큼은 예외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연말연시에는 전기 차를 싸게 파는 경우가 종종 있어 특별히 계절의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또한 국내 배터리 3사는 물론 파나소닉을 포함한 일본 배터리 업체들 일제히 시장 점유율이 감소한 마당에 CATL을 비롯한 중국 업체들은 오히려 점유율을 늘린 모습이다.

중국 배터리 업계가 국내 및 일본 배터리 업체들의 파이를 잠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갑작스러운 중국의 '버닝', 비결은

국내 배터리 3사의 성장 속도가 느려진 반면, 중국 배터리 업체들은 그야말로 '폭풍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 전기차용 배터리 1위 업체인 CATL을 필두로 BYD 등이 전체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BYD와 CATL의 배터리 사용량 성장률은 2020년 12월에만 해도 두 자릿수였지만, 2021년 들어 세 자릿수로 급등하더니 지난 2월에는 400% 후반대를 기록했다. 올해 2월 시장 점유율만 놓고 봐도 CATL이 27.8%로, 2위인 LG에너지솔루션을 4.4%포인트 앞선다. LG에너지솔루션이 시장 점유율 3.1%포인트 차이로CATL을 따돌렸던 3개월 전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이외에도 중국의 CALB와 궈쉬안 등이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고 있다. 이들의 배터리 사용량이나 시장 점유율이 아직 그리 위협적인 수준은 아니나, 중국 '배터리 굴기'의 든든한 후방 지원군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K-배터리가 중국에 포위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1~2월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에서 BYD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1.8% 늘어난 18GWh로 7.0%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며 4위에 올랐다. 7위인 CALB는 전년 동기와 비교해 배터리 사용량이 8배로 증가했으며, 시장 점유율도 0.4%에서 3.0%로 덩치가 커졌다. 9위 궈쉬안도 153.2% 증가한 0.5GWh의 배터리 사용량을 기록하며 시장 점유율 역시 0.4%포인트 끌어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가파른 성장세에는 세계 전기차 판매량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중국 시장의 회복세가 주효했다는 평이다. 또한 미국을 제외한 비중국 지역에서 CATL을 비롯한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입김이 거세지는 분위기다.

실제로 중국 배터리 업체들은 최근 들어 K-배터리의 텃밭인 유럽에 거래선을 확장하고 있다. 세계 최대 자동차 업체인 독일 폭스바겐이 각형 배터리 체제를 선언한 것도 중국 전기차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되고 있다. 각형 배터리가 주력인 CATL 등 중국 배터리 업체들과 협력을 타진해 당국 정부의 보조금 등 혜택을 노리는 전략이다.

한편 폭스바겐의 새로운 배터리 전략은 국내 배터리 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에 있어 악재다. 이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 점유율 2위 업체를 놓칠 위기이기 때문이다. 폭스바겐이 파우치형 배터리를 납품해 온 기존 배터리 공급사들에게 사실상 결별을 선언한 것이라는 평이다.

특히 SK이노베이션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은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인 미국 테슬라와 미 전기차 스타트업들을 중심으로 원통형 배터리 공급도 확대하고 있지만, SK이노베이션은 아직 파우치형 배터리만 생산하는 데다 미국 배터리 사업에서도 폭스바겐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폭스바겐은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용 배터리를 두 번째나 세 번째로 많이 공급 받는 주요 고객사로 알려졌다.

폭스바겐의 '변심'이 LG에너지솔루션-SK이노베이션 소송전의 나비 효과로 거론되는 가운데, 최근에는 유럽에서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들이 연이어 리콜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유럽 연합(EU) 집행 위원회(이하 EC)는 올해 초 폭스바겐 전기차 'e-UP'과 폭스바겐의 자회사인 스코다 및 시아트의 전기차 '시티고'·'E-Mii' 등 총 213대를 리콜 대상으로 지목했다. EC는 해당 차량에 장착된 배터리 셀이 손상됐으며, 이로 인한 화재 위험성이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LG에너지솔루션 측은 배터리 셀이 아니라 모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이미 외관 손상을 확인했으며, 선제적으로 회수를 요청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앞서 프랑스 르노도 지난해 4월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가 들어간 '조에'를 리콜한 바 있다.

이러한 가운데 중국은 배터리 소재 산업까지 빠르게 육성하면서 우리나라와 일본을 압박하는 모습이다.

세계 최대 배터리 분리막 업체로 꼽히는 중국 창신신소재는 2019년을 기준으로 세계 분리막 시장에서 18%, 중국 분리막 시장에서 41%의 파이를 점한 것으로 알려졌다.

창신신소재 경우 1억8,300만유로(약 2430억원)를 투입해 연산 4억㎡ 규모의 분리막 공장을 헝가리에 짓겠다고 발표하는 등, 물량 공세에 힘 쏟고 있다. 실제로 창신신소재는 분리막 생산 능력을 2017년 3억9,000㎡에서 2020년 33억㎡로 약 3년 만에 8배 넘게 확대하는 저력을 보여 주기도 했다. 창신신소재는 오는 2023년까지 분리막 캐파(생산 설비 용량)을 63억㎡까지 확장해 경쟁사들과의 격차를 벌리겠다는 목표다.

창신신소재가 만드는 분리막은 아직 성능 면에서 일본 및 한국 기업들의 분리막에 비해 뒤떨어지지만, 중국 배터리 소재 업체들이 기술 연구 개발(R&D)에 대한 투자도 강화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기술적 우위에 취해 있을 수만은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