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자연 기자] 기존 식품에만 국한된 ‘할랄(Halal)’ 산업이 화장품·패션·의약품 등 소비재 분야로 점차 확대되고 있다. 할랄은 단순 종교를 넘어 모든 일상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할랄 화장품은 무슬림들의 윤리적 소비와도 개념이 일치해 최근 불고 있는 ‘비건 뷰티’로까지 범위가 넓어졌다. 의약품 시장 또한 국내 기업들이 연이어 할랄 인증을 획득하거나 중심 지역에 교두보를 마련하는 등 이슬람 시장 개척에 열을 올리고 있다.

K-푸드의 ‘매운맛’...중동 홀리는 ‘K-할랄’

글로벌 할랄 산업 규모가 연평균 6.2%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그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식품 부문은 2018년 1조3,690억 달러에서 2024년 2조 달러에 근접할 전망이다. 실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글로벌 식품시장에서 할랄 푸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20%를 넘긴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식품업계는 한국인의 ‘매운맛’을 강조해 할랄 푸드 시장에서 존재감을 넓히고 있다. 사조대림은 지난 2018년 ‘사조 할랄고추장’ 2종을 선보이며 할랄 시장에 진출했다. 이후 2019년도 판매량은 진출 첫해 대비 1,360% 신장했고, 지난해 11월까지는 전년도 대비 약 300% 가량 성장했다. 고추장으로 무슬림을 사로잡는데 성공한 사조대림은 올해 ‘K-장류’ 라인업을 강화할 예정이다. 이미 할랄 인증을 마치고 상반기 출시를 목표로 ‘사조 고추장 떡볶이 양념’과 ‘사조 쌈장’을 출시 준비 중에 있다.

신세계푸드의 ‘대박라면’도 할랄 푸드 시장 공략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지난해 연간 판매량 1,000만 개를 돌파하면서 전년(305만 개) 대비 3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말레이시아가 ‘대박라면’ 해외 판매량 중 약 20%를 차지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전 세계적으로 라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말레이시아 또한 3~6월, 10~12월 두 차례에 걸쳐 국가차원의 강력한 이동제한 조치가 내려지면서 매월 80만 개 이상의 높은 판매량을 이어갔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한 쇼핑몰 내 '대박라면' 부스에서 현지 소비자들이 제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출처=신세계푸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한 쇼핑몰 내 '대박라면' 부스에서 현지 소비자들이 제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출처=신세계푸드

대상은 올해 대표적인 할랄 식품 시장인 인도네시아 사업 강화에 나선다. 현재 4,000억 원 수준인 인도네시아 매출을 10년 내 매출 1조 원을 더 늘려 인도네시아 톱 10위 종합 식품기업과 동남아시아 소재 선도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다. 특히 대상은 인도네시아 카라왕 지역에 연 생산 2만톤 규모의 식품 공장을 운영하며 전 품목 할랄 인증을 획득한 제품을 생산, 판매하고 있다. 대상은 추후 인도네시아를 교두보로 활용하면서 인접국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 할랄 국가에 제품 수출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이처럼 K-푸드의 매운맛은 여러 동남아 음식과 잘 어울리면서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한류열풍과 함께 떡볶이, 라면, 김치 등 다양한 K-푸드가 인기를 끌고 현지에서도 한국의 맛을 즐길 수 있는 제품의 수요가 높아진 점도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또한 한국 제품이 갖고 있는 프리미엄 이미지도 중동 소비자들의 선택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무엇보다 철저한 할랄 인증을 통해 무슬림 소비자들이 걱정 없이 제품을 선택할 수 있었던 점이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K-푸드 관심, 한국식 매운맛, 할랄 인증을 통한 제품 신뢰도 삼승 등 삼박자가 모두 잘 맞아 떨어졌다”면서 “기업들이 계속해서 중동 시장에서도 국가별 취향에 맞는 제품 개발과 판로 개척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이 허용한 화장품...무슬림 여심 잡는 ‘K-뷰티’

식품에 한정됐던 할랄 산업은 패션, 뷰티, 의약품 분야로 다양하게 확대 중이다. 특히 몸속에 흡수되는 식품과 같이 화장품은 피부에 직접 닿는 제품으로 식품 다음으로 각광받는 분야다. 이미 중동 시장은 미국, 일본, 중국에 이어 네 번째 글로벌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영국 시장 조사 기관인 ‘테크 나비오(Tech Navio)’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2년에 이르면 할랄 화장품의 영향으로 뷰티 시장 규모가 2배 이상 증가해 약 500억 유로의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향후 3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13%를 넘어간다.

국내 화장품 기업들은 할랄 인증 획득에 속도를 내고 동물 실험을 하지 않거나 동물성 원료를 쓰지 않은 ‘비건 뷰티’를 내세워 할랄 화장품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무슬림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할랄 인증이 필수적인데, 비건 화장품의 경우 인증이 쉬워 판매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LG생활건강의 자체 브랜드인 ‘더페이스샵’은 이미 요르단, 아랍에미리트 진출을 시작으로 현재 아랍권 7개국에 매장을 80여 개 이상 운영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를 비롯해 중동 6개국에 진출한 바 있고, ‘더 히스토리 오브 후’와 ‘빌리프’는 말레이시아에 매장을 운영 중이다. 식물 성분을 주로 사용하는 LG생활건강의 주요 브랜드들이 할랄 인증을 받지는 않았지만 무슬림 사이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는 평가다.

아모레퍼시픽은 보다 전문적인 접근으로 할랄 시장 공략에 나섰다. 지난 2016년 자연주의 화장품 브랜드 ‘이니스프리’가 중동 지역에 할랄 인증을 받은 제품 3종을 출시했고, 해당 제품 생산을 위해 공장 일부 라인에서 할랄 인증을 받았다. 최근에는 이를 기반으로 향후 다른 브랜드에 할랄 인증 제품을 확장하려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본래 국내 화장품 제조사들은 콜라겐, 글리세린 등의 동물성 소재를 화장품에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전용 생산 시설 구축이 필요한 할랄 화장품을 빠르게 도입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해외에 공장을 가지고 있는 국내 ODM(제조자개발생산) 업체들은 일찍이 할랄 뷰티 시장에 진출할 준비를 끝냈다.

히잡을 두른 코스맥스 인도네시아 직원이 립스틱 제품을 살펴보고있다. 출처=코스맥스
히잡을 두른 코스맥스 인도네시아 직원이 립스틱 제품을 살펴보고있다. 출처=코스맥스

글로벌 뷰티 브랜드의 제품 생산을 도맡아 하고 있는 코스맥스는 이미 인도네시아 현지 공장을 운영 중이다. 해당 공장은 2016년 세계 3대 할랄 인증기관인 무이(MUI)에서 업계 최초 할랄 인증을 받았고, 최근에는 현지 자생식물 소재를 활용해 할랄 화장품 개발을 연구 중이다. 한국콜마 역시 말레이시아 현지 할랄 인증기관인 자킴(JAKIM)으로부터 할랄 인증을 받고 관련 화장품을 수출하고 있다.

정민경 코스맥스인도네시아 법인장은 “2022년까지 동남아시아 고유의 소재를 활용해 천연화장품은 물론 할랄 화장품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라며 “세계 최대 무슬림 국가인 인도네시아의 고유 원료와 한국의 화장품 기술 융합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