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유럽을 중심으로 디지털세 부과 움직임이 빨라지는 가운데 미국이 보복을 준비하고 있다. 국경이 사라지는 ICT 시대를 맞아 디지털세 공포가 선명해지고 있다.

출처=갈무리
출처=갈무리

"디지털세에 보복 관세"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26일(현지시간) 디지털세를 도입한 오스트리아, 영국, 인도, 이탈리아, 스페인, 터키 등 6개 나라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주로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을 겨냥한 디지털세에 맞서 직접적인 행동에 나서겠다는 의지다.

디지털세는 외국 디지털 기업이 특정 국가에서 매출을 올릴 경우 법인세와 별도로 매기는 세금이다. 서버 운영 여부와 관련 없이 이익이 아닌 매출이 생긴 지역에 세금을 내는 것이 특징이며, 이를 두고 미국과 유럽은 첨예하게 대립한 바 있다.

디지털세 논란은 2019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프랑스는 일정 규모의 글로벌 디지털 기업을 대상으로 매출의 3%를 세금으로 걷는 디지털세 법안을 통과시켰고 이탈리아도 2020년 1월부터 디지털세를 전격 도입했다. 오스트리아도 2019년 10월부터 글로벌 매출 7억5000만달러의 경우 5%의 디지털세를 부과하고 있다. 주로 미국의 디지털 기업들을 겨냥한 행보다.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도 좌시하지 않았다. 2020년 6월 프랑스의 디지털세와 관련한 조사에 착수하며 자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불이익을 그냥 넘기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심지어 무역법 301조를 발동하며 프랑스 등을 대상으로 24억달러 상당 수입품에 100%의 관세 부과를 할 수 있다는 엄포를 놓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양측은 협상 테이블에 앉았으나 성과는 없었다. 2020년 6월 당시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디지털세 부과를 조율하고 있는 프랑스,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등 4개국 재무장관을 대상으로 서한을 발송해 협상 결렬을 공식 선언했다. 명분은 코로나19라는 비상사태를 맞아 우선 방역 시스템 점검에 힘을 기울이자는 취지지만, 유럽의 디지털세 부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경한 프레임이다. 그는 "디지털세나 이와 유사한 단일 세금에 반대한다"면서 "미국은 적절한 대응 수단을 내놓을 것"이라며 사실상 무한대결을 선언했다.

유럽도 반격했다. 프랑스,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4개 나라가 공동으로 미국의 협상 결렬에 맞서기로 했으며, 무조건 디지털세 부과에 나선다는 입장을 밝혔다.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무장관은 미국의 협상 결렬 통보 직후인 2020년 6월 18일(현지시간) 방송에 출연해 협상을 계속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는 전제로 "므느신 장관의 서한은 도발"이라며 거칠게 반발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바이든 행정부는 디지털세 논란에 있어 일부 '양보할 수 있다'는 시그널을 보냈다. 그러나 유럽연합은 강경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4일(현지시간) 마거릿 베스타거 유럽연합 부집행위원은 디지털세 부과는 원칙대로 진행될 것이라 강조했으며, 이에 미국이 26일(현지시간) 보복 관세 부과안으로 응수한 셈이다.

전투의 전개는?
미국은 슈퍼 301, 즉 무역법 301까지 시사하며 디지털세에 맞선 보복 관세를 시사하고 있다. 브라질, 체코, 인도네시아, 특히 유럽연합을 직접적인 보복 대상에서 배제하기는 했으나 유럽 개별 국가에 보복 관세를 매길 수 있다는 점에서 사태는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평가다.

ICT 업계에서는 바이든 행정부가 비국의 국익을 위해서라면 전임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를 충실히 따르는 장면에 집중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중국 압박도 다자주의에 방점을 찍었을 뿐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국 압박 전술은 지금도 유효하다.

이런 가운데 바이든 행정부가 다자주의의 강력한 동맹인 유럽과 불편한 관계까지 감수하며 디지털세에 대한 보복 전략에 나서는 점은 그 자체로 의미심장하다는 평가다. 최근 미국 빅테크 기업의 과도한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기업 쪼개기' 전략까지 나오는 상태에서 국익을 위해서라면 국제전략의 핵심인 다자주의의 중요한 파트너와도 날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 연장선에서 유럽에 침투한 미국 디지털 기업들의 과도한 영향력을 우려한 유럽의 디지털세 공격과, 역시 디지털 기업의 과도한 영향력 확대에는 우려하면서도 외국과의 분쟁에서는 적극적으로 자국 기업의 권익을 보장하려는 미국의 공방전이 치열하게 벌어질 전망이다.

한편 이번 디지털세 및 보복 관세 전투를 두고 한국 기업들도 냉정한 상황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특히 국내에서도 외국 기업에 대한 디지털세를 부과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는 가운데 그 이해득실을 따져봐야 한다는 논리다.

다만 유럽의 경우 단일 시장권내 강력한 디지털 기업이 없기 때문에, 그나마 미국과 전면전을 벌일 여지도 있다. 동남아도 풍부한 소비시장을 가진 상태에서 단일 시장권내 강력한 디지털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 사례가 많지 않기 때문에 역시 공격적인 디지털세 부과에 나설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소비시장이 작으면서 글로벌 시장에 다수 진출한 디지털 기업이 많다. 이는 ICT 강국의 상징이지만, 그 만큼 디지털세라는 각 국의 함정에 볼모로 잡힌 기업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에서 디지털세 도입에 신중한 이유다.

지나치게 공세적인 입장으로 나서며 '우리도 디지털세를 도입하자'며 강공모드를 거는 순간 미국의 슈퍼301을 만날 수 있다. 신중한 상황판단이 필요한 이유다. 만약 한국 정부가 실리콘밸리 디지털 기업에 디지털세를 부과한다는 방안을 내놓을 경우 즉각 무역보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파급력은 디지털 시장을 넘어 삼성전자와 같은 제조업 기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