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틀몬스터 하우스 도산' 1층. 출처=이정민 이코노믹리뷰 기자
'젠틀몬스터 하우스 도산' 1층. 출처=이정민 이코노믹리뷰 기자

[이코노믹리뷰=이정민 기자] #. 입구를 지나 들어선 1층 공간에서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직원도, 상품도 아닌 거대한 구조물이다. 하늘에서 떨어진 물체에 부서져 전선이 튀어나오고, 각종 부재료가 널브러진 건물 잔해 같은 설치물이 위층(M층)까지 길게 뻗어있다.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잔해물에 장소를 잘 못 찾았나 생각하다 이내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설치물 중앙에는 우주 영화에서 볼 법한 날카로운 철로 이뤄진 3D 작업물 로봇이 알 수 없는 실물화 작업을 하고 있다. 국내 아이웨어 전문기업 젠틀몬스터는 일반적인 선글라스 매장에서 찾아 볼 수 없는 구조물과 로봇을 배치해 오프라인 매장의 고정 관념을 벗어 던지고 혁신을 선언하고 있다.

17일 방문한 '젠틀몬스터 하우스 도산'은 첫 인상부터가 파격의 연속이었다. 상품이 오히려 조연이 된 것 처럼 다양한 구조물, 조형물, 로봇 등이 먼저 시선을 먼저 사로잡는다. 선글라스 매장이 아닌 전시회장에 놀러온 것 처럼 구경하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즐비했고, 평일임에도 하루 최소 600명이 다녀갈 정도로 북적였다.

지난달 말 젠틀몬스터를 운영하는 아이아이컴바인드가 문을 연 이곳이 론칭 10여년만에 최초로 '하우스(HAUS)'란 개념을 입힌 매장이기 때문이다. 그간 선보였던 오프라인 쇼룸, 플래그쉽스토어와 달리 이번 '하우스'는 여러 브랜드가 모여 만든 새로운 유통 공간이다. 

대지면적 646㎡(지하 1층~지상 4층) 규모의 '하우스' 도산에서는 한 공간에 아이아이컴바인드 산하 '탬버린즈',  '누데이크', '젠틀몬스터' 등 모든 브랜드를 만날 수 있다. 3가지 브랜드가 다 같은 회사에서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이번 도산점 방문을 통해 알게됐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다른 브랜드들을 한 곳에 모은 첫 '하우스'이자 발판이될 1호점인 만큼 각기 다른 테마에 맞는 독특한 로봇과 조형물로 정체성을 나타내고 브랜드 이미지를 전달하겠단 전략이다. 

젠틀몬스터, 코로나19 딛고 '하우스' 리테일 공간으로 돌아오다

설립 당시 직원 5명, 자본금 5,000만원이 전부였던 아이아이컴바인드는 지난 2011년 젠틀몬스터를 론칭했다. 수입 명품과 차별화를 두고 한국인 얼굴에 맞는 20만~30만원대에 선글라스를 선보이며 젊은 세대로부터 인기를 끌었고 2020년 11월 기준 30개국에 400여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2015년 572억원에 불과 했던 아이아이컴바인드 매출은 젠틀몬스터 흥행에 2019년 2980억원으로 4년만에 5배 가까이 뛰었다. 

사업 초기부터 공간을 활용한 전략이 흥행에 주요인이었다. 젠틀몬스터 홍대 쇼룸(show room)에서는 한달에 한번 꼴로 다른 테마를 선보이며 다양한 디자인 그룹과 협업해 예술 공간을 구현했다. 2년5개월간 실시한 프로젝트만 무려 36번에 달한다. 일례로 가로수길점은 집과 치유를 주제로 층마다 '감정의 회복'을 실현하기 위한 이색적인 오브제들로 구성했고 북촌플래그십스토어는 낡은 목욕탕의 원형을 살리고, 내부 냉탕과 온탕으로 이용되던 욕조와 빛바랜 타일이 붙은 벽의 선반에 선글라스를 전시했다. 

하지만 젠틀몬스터는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첫 위기를 맞았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여행 및 외출이 줄면서 자연스럽게 선글라스를 찾는 수요도 감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젠틀몬스터는 예술적 영역에 브랜드 역량을 집중하며 공간 활용 전략에 박차를 가했고 새로운 오프라인 공간 탄생과 함께 돌아왔다.

이번 도전에서 눈에 띄는 점은 아이아이컴바인드 산하 모든 브랜드가 한 공간에 총집결한 퓨처 리테일(미래의 유통)이라는 것이다. 이번 도산점은 이 같은 전략을 담은 '하우스 1호점으로, 흥행성 보장보다 시도에 의미를 두고 있다는 회사측 설명이다. 이를 통해 도전의 메세지를 전하고, 한공간에서 모든 브랜드 자체를 자연스럽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단 각오다. 

매장 3층 '프로브' 로봇. 출처=이정민 이코노믹리뷰 기자
매장 3층 '프로브' 로봇. 출처=이정민 이코노믹리뷰 기자

하우스 도산의 하이라이트 3층 젠틀몬스터 선글라스 매장에는 거대한 거미를 연상케하는 6족 보행 로봇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다.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살금살금 기어가는 로봇과 양쪽에 전시된 선글라스들의 조화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2m에 달하는 '프로브'는 젠틀몬스터가 1년여 연구 끝에 직접 개발한 로봇이다.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에게 패션 브랜드가 로봇을 개발할 수 있다는 브랜드의 도전 정신을 전달하고 낯설고 신기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로봇에 대한 질문이 쏟아지자 매장 직원은 "선글라스 공간인 이곳의 테마는 활동성과 진취성이다. 로봇을 통해 표현하고 직접 개발했다는 점에서 끝없이 도전하고 시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며 "쇼핑과 어울리지 않는 로봇을 배치해 독특한 인상을 줌으로서 매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탬버린즈 매장 '갈대' 로봇. 출처=이정민 이코노믹리뷰 기자
탬버린즈 매장 '갈대' 로봇. 출처=이정민 이코노믹리뷰 기자

4층 코스메틱 브랜드 '탬버린즈' 오른편 구석에는 구부렸다 폈다를 반복하는 '갈대' 로봇이 눈길을 끈다. 자연 중에서도 갈대의 움직임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 밖에 다양한 오브제들과 조형물 또한 조개, 숲, 식물을 표현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향'을 추구하는 탬버린즈의 가치를 자연에서 따온 형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이 있어 가보니 아직 판매되지 않은 연구 중인 향을 디퓨져 형태로 가져다 놓았다. 디퓨져들을 직접 맡아본 고객들은 의견을 직원과 공유했고, 직원은 "매장을 찾아주는 고객 피드백을 적극 반영해 조만간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지하 1층 첫 오프라인 정규 매장 디저트 '누데이크(Newdake)' 카페는 빵, 케이크 등 베이커리류 자체가 오브제로 활용됐다. 메뉴가 긴 테이블에 조형물 작품처럼 일렬로 전시돼 있고, 각 제품 앞에는 조그마한 이름표가 놓여있다. 돌덩어리 같이 생긴 케이크, 그릇처럼 생긴 빵 등 모양이 특이해서인지 사람들은 허리를 숙이고 얼굴을 가까이 대며 자세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 테이블 뒤로 보이는 독특한 디스플레이 화면이 눈에 띈다. 카페가 단순한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닌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미술 전시장을 방불케한다. 

'젠틀몬스터 하우스 도산' 전경. 출처=이정민 이코노믹리뷰 기자
'젠틀몬스터 하우스 도산' 전경. 출처=이정민 이코노믹리뷰 기자

'퓨처 리테일', 오감·경험적 가치 제공하는 '차별화'가 과제

'젠틀몬스터 하우스 도산'은 최근 2030세대 사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핫플레이스로 급부상 중이다. 평일 기준 최소 600명에서 많게는 1,000명까지 다녀갈 정도다. 사측은 내년 4월경 6000평에 달하는 하우스 가평점을 오픈할 계획이다. 젠틀몬스터가 기존에도 일반적 리테일 공간의 기능과 효율을 포기하고 차별화된 컨텐츠와 새로운 감정을 전달하는데 초점을 맞췄으나, 이번 하우스라는 새로운 개념이 통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오프라인 매장이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공간을 넘어 브랜드 이미지, 콘텐츠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각 층마다 테마에 맞는 설치물, 조명, 음악, 색감 등을 배치해 브랜드가 추구하는 방향성, 가치, 컨셉을 소비자가 직접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오프라인 채널이 새로운 경험, 가치를 제공하는 차별화 된 공간으로 진화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코로나19로 유통 방식이 온라인으로 완전히 기울면서 오프라인 채널이 큰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오프라인은 더이상 소비자의 지갑이 아닌 시간을 점유하기 위해 직접 손으로 만지고 보고 냄새 맡는 감각적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전환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오프라인이 위기를 맞았으나 앞으로도 중요한 채널로 남을 것"이라며 "다만 젊은 세대와 빠른 변화를 잡기 위해 기존 오프라인 공간의 공식이 아니라 새롭게 변화해 젊은 세대들의 정체성을 대변하고, '힙'한 감각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