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확률형 아이템 논란을 둘러싼 파장이 커지고 있다.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 등 국내 게임사들 모두 전전긍긍하는 가운데 이들에게 ‘K-파친코의 첨병’이라는 주홍글씨마저 새겨지는 분위기다.

이 문제는 이제 정치권으로 비화되어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대로는 곤란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한편 넥슨처럼 전향적인 입장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출처=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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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 의원실이 쏘아올린 공

이상헌 의원이 발의한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법률안이 공개된 후 게임업계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게임사들이 직접 실태조사에 나서게 하는 한편 불법환전 행위 등에 대한 책임을 대부분 게임사에 전가하는 방안이 담겼기 때문이다.

가장 큰 반발이 나온 것은 확률형 아이템 관련 내용이다. 게임사들에게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 종류별 공급 확률정보 및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을 등에 관한 정보의 표시 의무를 부과하는 한편(59조제1항). 이를 위반할 경우 영업정지, 등록취소, 폐쇄 조치, 벌칙(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 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담겼기 때문이다.(제68조, 제76조, 제78조, 제89조).

쉽게 말해 게임사들의 캐시카우인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공개적으로 알리도록 법제화하는 개정안의 내용이 게임사들의 ‘심기’를 건든 셈이다.

한국게임산업협회가 총대를 맸다. 협회는 개정안의 내용대로 게임사들이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명명백백하게 공개할 경우 게임사들에 대한 과도한 규제가 시작되는 한편 10인 미만의 소규모 게임 개발 업체들이 자본과 인력 면에서 법 규제에 대한 실질적 대응이 어렵다는 논리로 맞섰다.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은 영업비밀이며, 이미 한국게임자율정책기구를 통해 자율적으로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종류와 확률을 고시하고 있다는 점도 부각시켰다.

출처=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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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없는 로또는 진짜였다

영업비밀인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공개할 경우 게임업계가 위축되는 한편, 이미 자율형 규제로 게이머들의 우려를 덜어내고 있다는 협회의 주장은 일견 타당해보였다.

‘정부의 과도한 규제와 이에 신음하는 유망 IT 업계’의 프레임은 그럴듯해 보였으며, 여기에 개정안이 가동될 경우 소규모 게임사들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프레임도 상당히 영악한 ‘기획’으로 평가된다. 여론전에 있어 우위를 잡을 수 있는 전략으로 보였다.

그러나 상황은 심상치않게 돌아갔다. 게임산업협회를 중심으로 업계가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공개할 수 없다 버티며 다양한 프레임 카드를 빼들었으나 게이머들을 중심으로 하는 일반 여론은 오히려 불리하게 전개됐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막대한 ‘현질’로 좋은 아이템을 얻으려 했으나 생각보다 낮은 확률에 분통을 터트리는 게이머들이 많았다. 이런 가운데 개정안에 대한 협회의 반발은 오히력 강력한 역풍의 단초가 됐다.

실제로 법안을 대표발의한 이상원 의원실은 <이코노믹리뷰>와의 인터뷰에서 "게임산업협회는 게임 업계의 이익 단체인 만큼 개정안에 대한 반박 의견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최근 ‘트럭 시위’ 등 이용자들의 집단화가 이루어지고 있고 게임사와 이용자 간 심리적 간극이 먼 상태였는데 (협회가) 기존의 입장과 달라진 게 없어 아쉽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기에 게임사들의 확률형 아이템 ‘확률’이 게이머들 입장에서 사실상 사기에 가까웠다는 점이 확인되며 논란은 더욱 증폭됐다. 메이플스토리 사태가 터졌기 때문이다.

넥슨이 지난달 18일 메이플스토리 업데이트 과정에서 아이템에 부여되는 추가옵션을 동일한 확률로 수정하자 더 큰 논란이 시작되며 문제가 불거졌다. ‘지금까지는 아이템 확률이 조작된 것이냐’는 비판이 나왔기 때문이다.

넥슨이 이후 관련된 아이템 확률을 공개하며 ‘의심은 곧 사실’이 됐다. 메이플스토리의 아이템을 강화하기 위한 큐브를 구매할 경우 '보스 몬스터 공격 데미지’와 ‘몬스터 방어율 무시’로만 채워지는 ‘로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논란은 정치권으로 비화됐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16일 메이플스토리와 관련된 논란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이첩하는 한편 마비노기, 리니지에도 비슷한 의혹이 있다고 폭로했다. 마비노기에서 세공 시스템, 자이언트 종족과 관련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으며 자이언트 종족과 관련해서는 제로 확률 의혹을 제기했다.

리니지도 비슷한 문제다. 하태경 의원실은 “리니지도 아이템을 계속 사용하면 숙련도가 올라가면서 아이템의 능력까지 좋아지는데 이때, 더 좋은 능력을 얻으려면 엄청난 돈을 들여서 뽑기를 해야 한다”면서 “한 게이머가 600회에 걸쳐 숙련도 시스템을 실험한 결과, 특정한 능력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제로 확률’ 의심 증거”라고 말했다.

냉정한 문제해결 필요하다

개정안 등장 당시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공개를 두고 ‘영업비밀 공개이자 중소 개발사들을 힘들게 만들며 시장의 자정활동을 부정하는 행위’라 핏대를 세우던 게임산업협회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확률형 아이템을 두고 벌어진 의혹은 사실이었으며, K-파친코였기 때문이다. 게임업계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협회 입장에서는 별 도리가 없었겠지만, 결과적으로 협회의 ‘몰염치’는 역풍을 키웠고 사태해결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다.

다만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두고 게임 내 밸런스를 염두에 둔 장치라는 게임사들의 주장에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또 ‘K-파친코’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지고는 있으나 한국 게임사들이 급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확실한 캐시카우인 확률형 아이템 전략이 나름의 역할을 수행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이유로 이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피상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게임사들과 게이머들 사이에 벌어진 인식의 간극을 조금씩 좁히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넥슨의 최근 행보가 시선을 끄는 이유다.

넥슨은 비록 확률형 아이템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또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게이머들에게 제대로 공지하지 않은 원죄도 있지만 이는 한국의 모든 게임사들이 부담해야 할 책임이기도 하다.

그 연장선에서 메이플스토리 확률형 아이템 확률을 공개하는 한편 최근 피파온라인4 확률 데이터까지 공개한 결정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평가다.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첫 단추는 과거부터 축적된 논란을 직시하는 것에서 시작되며, 그 순간 서로의 간극을 메울 수 있는 전략이 수립되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넥슨에 대한 비판이 비등하겠지만, 넥슨은 현재 유일하게 올바른 길로 가고있는 게임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