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카 '글레시 네일 컬러' 화보. 출처=라카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캡쳐
라카 '글레시 네일 컬러' 화보. 출처=라카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캡쳐

[이코노믹리뷰=이정민 기자] 단순히 남녀공용으로 쓸 수 있는 '젠더리스(Genderless)'를 넘어 성별 구분 자체를 허무는 '젠더 뉴트럴(Gender Neutral)' 뷰티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뜨겁다. 시대적 가치관의 흐름을 타는 유연성과 브랜드가 추구하는 윤리적 신념을 마케팅으로 삼으면서 설득력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고유한 가치와 철학을 가진 뷰티 브랜드들이 트렌드를 선도하는 시대가 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11일 뷰티 브랜드 '라카(LAKA)'는 업계 최초로 젠더 뉴트럴 컨셉을 담은 네일 컬렉션을 공식 론칭했다. 이번에 출시된 ‘글래시 네일 컬러’는 티 그린·이브닝 퍼플·셉템버 블루·문 베이지·스프링 브라운·미스트 그레이 등 뉴트럴 컬러 6종으로 구성됐다. 공개된 화보컷에서는 여성은 물론 남성 모델도 네일 스타일링을 대담하게 연출한 모습이 등장한다. '뷰티는 원래 모두의 것'이라는 메세지와 함께 여성 중심의 네일 제품에 대한 편견을 깨며 기존 메이크업 제품들을 넘어 네일 컬렉션까지 카테고리를 확대한 것이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이번 컬렉션 오픈 직후 라카 공식 인스타그램에 따르면 '남자에게 더 잘 어울린다', '신기하다. 홀린 듯 6개 전부 구매', '시대를 앞서가는 브랜드를 응원한다'는 댓글이 달리고 있다.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사흘간 진행 예정이던 프리오더 이벤트 첫날에는 오픈 직후 19분만에 1만개 물량이 모두 소진되며 조기 종료되기도 했다. 2개, 4개, 6개 컬러로 이뤄진 3가지 세트의 옵션 중 6개 컬러 세트는 프리오더 오픈 2분 만에 완판됐고, 이에 추가 물량까지 투입했으나 이 역시 1분만에 재차 소진됐다. '워터리 쉬어 립스틱'의 경우 '레너드' 색상 제품은 공식 온라인 몰 기준 남성 판매 비중이 30%를 차지하며 남녀 모두 구매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특정 성별에 편중되지 않고 시대의 흐름을 쫒아 '사람'에 무게중심을 둔 철학이 소비자에게 통하고 있는 모양새다. 젠더뉴트럴은 단순히 남녀공용과 같은 '유니섹스'에서 더 나아가 성별이라는 구분 자체를 부정하고 '나 자신'을 중요시 하는 개념을 뜻한다. 즉, 남성성과 여성성을 통합시켜 양성성을 표현하거나, 사회가 낳은 남녀 구분에서 벗어나 자신의 취향을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남녀 구분 자체가 모호해지는 뷰티 제품들이 소비자들로 하여금 성별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을 제공한다. 소비자들은 다양한 선택지에서 오로지 자신의 취향으로 제품을 고르면서 개성을 표현한다. 남성이 여성스러운 옷을 입고 여성이 남성적인 스타일을 추구하는 젠더리스는 빠르게 변하는 현 시대에서 이미 보수적인 트렌드로 전락한 것이다. 

라카 관계자는 "최근 성인지감수성이 늘고 있고 성차별 문제에 대한 젋은 층의 관심이 뜨거운 만큼 젠더뉴트럴 콘셉트 브랜드를 지지하는 소비자들이 늘고있다"며 "윤리적 가치를 추구하는 브랜드를 구매하고 사용한다는 자부심을 느끼는 고객들이 많이 찾아주고 있다"고 말했다.

비건 뷰티 브랜드 리듀어(Réduire) 화보. 출처=리듀어
비건 뷰티 브랜드 리듀어(Réduire) 화보. 출처=리듀어

성별 구별없는 '아름다움' 추구한 브랜드...소비자 마음 열었다

젠더뉴트럴 뷰티 브랜드는 기존에 탄탄한 여성 고객들에다 남성이라는 새로운 고객층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에 최근 패션, 미용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남성을 뜻하는 이른바 ‘그루밍족’이 늘어나면서 젠더뉴트럴 브랜드의 성장 가능성도 동반 상승 중이다.

지난 1월 취업 포털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성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그루밍족 현황과 인식' 조사 결과 20대 남성의 43.3%, 30대 남성의 42%가 스스로를 그루밍족이라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른 남성 화장품 시장 규모도 지난해 1조4,000억원대로 2년 새 2,000억원 증가했다. 젠더뉴트럴 브랜드는 여성 및 남성 화장품 시장을 모두 끌어들일 수 있어 사업 저변 확대에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남녀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브랜드와 제품들이 늘고 있다. 뷰티 업계의 경우 시대 변화가 가장 활발하게 반영되는 만큼 MZ세대가 주목하는 젠더 뉴트럴 트렌드가 업계 내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기존 비건 뷰티 브랜드였던 리듀어(Réduire)는 젠더 뉴트럴 비건 스킨케어 브랜드로 새롭게 재탄생했다. 이와 함께 출시된 '데일리 프로텍트 라인(Daily Protect line)'은 기존 선크림, 메이크업 외에도 피부에 부착된 외부 환경 유해요소를 말끔히 클렌징해주는 아이템도 함께 선보여 남녀 구분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간 전 성분 EWG 그린 등급 인증과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PETA 인증 비건, 크루얼티 프리 브랜드로 소비자들과 만나 왔으나 여기에 젠더뉴트럴이라는 콘셉트를 더해 성별에 제약과 한계를 넘어서고자 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031430)의 럭셔리 니치 향수 브랜드 바이레도도 브랜드 최초의 메이크업 라인을 국내에 론칭하며 젠더뉴트럴 콘셉트를 강조했다. 기존에도 '남성과 어울리는 향'과 '여성에게 어울리는 향'이라는 개념을 없애며 향수계의 젠더리스 바람을 이끈 브랜드지만 이번 메이크업 라인을 통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포용적인 콘셉트를 선보였다. 업계의 보수적이고 관습적인 부분을 타파하고 주관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모든 제품이 남녀 구분 없이 사용 가능한 독창성과 자유분방함이 담겼다.

17일  MZ세대 겨냥해 리뉴얼 오픈한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사진=박재성 기자
17일 MZ세대 겨냥해 리뉴얼 오픈한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사진=박재성 기자

이러한 뷰티업계 내 젠더뉴트럴 물결은 최근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MZ세대가 뷰티업계 주류 소비층으로 부상하면서 하나의 생존 키워드로 자리잡은 모습이다. MZ세대의 '가치소비'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부합하다고 생각할 경우 가격과 상관없이 소비하는 특징이 있다. 친환경, 윤리, 인권 등 사회적으로 건강한 영향을 미치는 가치관을 선호하며 이를 수용하는 마케팅과 브랜드들에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한다. 시대에 뒤떨어진 브랜드는 불매운동도 불사하며 사회 구성원으로써 성과급 공유 운동을 주관하기도 한다. 

실제 이에 앞서 성별, 외모와 관계없이 모든 신체를 동등하게 존중하자는 운동인 '바디 포지티브(자기 몸 긍정주의)' 운동에 뒤쳐졌던 미국 속옷 업체 빅토리아시크릿은 몇년간 지속된 매출 부진을 견디지 못하고 사모펀드에 팔렸다. 이에 반해 편한 속옷과 보정없는 화보 등을 내세운 미국 브랜드 에어리(Aerie)는 지난해 기준 21분기 연속 두자릿수 매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에는 작은 스타트업이라 하더라도 가치소비에 맞는 콘셉트를 가지고 있다면 SNS나 다양한 유통망을 통해 소비자들을 더 쉽게 만나고 선택을 받을 수 있다"며 "신생 기업일 수록 이러한 온라인 신유통 방식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각종 이벤트, 라이브방송, 인기 유튜버와 협업을 통해 브랜드를 알리는데 유리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