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구글의 수수료 인하를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가운데 국내 콘텐츠 업체들이 분노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인 인앱결제 강제는 외면하고 주변부 이슈에만 열을 올리며 사실상 "구글을 보호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야당이 소위 구글 갑질 방지법 통과(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 미온적인 행보를 보이며 수수료 인하에만 목소리를 키우자 일각에서는 "국내 콘텐츠 업체들의 호소를 무시하고 구글을 뒤에서 도우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구글 갑질 막을 생각은 있나"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8일 공동성명을 통해 "구글은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수수료를 15% 이하로 인하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구글은 지난해 정책 발표를 통해 10월부터 플레이스토어에서 유통되는 디지털 콘텐츠 앱을 대상으로 인앱결제를 의무화하는 한편 수수료율을 30%로 올리겠다 선언한 바 있다. 그 연장선에서 야당은 후자인 수수료율 인상에 문제가 있다 비판하며 국내 콘텐츠 업체들의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수수료율을 낮춰야 한다 지적한 셈이다.

국내 IT 및 콘텐츠 업계의 시선은 싸늘하다. 구글 갑질의 본질은 수수료율 인상보다 인앱결제 강제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플레이스토어에서 유료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반드시 구글의 생태계 내부에서 결제를 해야 한다는 인앱결제 조항은 콘텐츠 업체들이 구글에 완전히 종속되도록 만든다.

그런 이유로 국내 업계에서는 야당이 인앱결제 강제라는 중요한 문제를 등한시하고 구글이 코로나19 여파로 약간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는 수수료 인하라는 '쉬운 길'만 가려 한다는 비판이 비등하다.

구글 인앱결제 강제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구글 갑질 방지법, 즉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통과에는 미온적이면서 수수료 인하만 주장하는 장면도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구글이 인앱결제 강제를 선언하자 국회에서는 구글의 갑질을 막기 위해 구글 갑질 방지법을 추진한 바 있다. 당장 국회 과방위는 국정감사 현장에서 여야 간사협의를 바탕으로 지난해 10월까지 구글 갑질 방지법을 통과시키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 홍정민 의원과 국민의힘 박성중 의원을 시작으로 발의한 구글 갑질 방지법이 본궤도에 오르는 순간이다.

국정감사 기간 이례적으로 소위까지 열어 법 개정을 추진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그 정도로 구글의 갑질이 심각하다는 점에 여야가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것으로 풀이됐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홍정민 의원은 "(구글의 인앱결제 수수료 인상에 대해) 모두가 한목소리로 공정거래법, 전기통신사업법을 적용한 정부 규제를 바라고 있다"면서 "실태 조사가 빠르게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정부 차원에서 국내 스타트업과 함께 구글과 협상을 유리한 측면으로 끌고가야 한다"면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냈다.

구글의 막강한 시장 점유율 바탕의 횡포도 도마위에 올랐다. 박광온 의원이 지난해 10월 12일 국내 7개 카드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1월부터 9월까지 국내 3대 앱마켓의 전체 신용카드 매출액은 2조6356억원에 이르며 여기서 구글의 비중은 80%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박광온 의원은 "구글이 독점적 지배력을 남용할 수 있다"면서 "최근 인앱결제 및 30% 수수료 인상을 강행하는 가운데 그 정책에 위법성이 있다면 정부가 대응해야 할 것"이라며 구글 갑질 방지법의 조속한 통과를 요청했다.

문제는 야당의 행보다. 구글 갑질 방지법을 두고 논의 초반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던 야당이 돌연 모호한 행보만 보였기 때문이다. 당장 지난달 23일 제2차 정보통신방송법안심사소위(2소위)가 열려 구글 갑질 방지법을 논의하려 했으나 야당은 한미간 통상 마찰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발을 빼고 말았다. 당시 구글도 '글로벌 스탠다드'를 운운하며 시간을 달라는 입장을 보였고, 결국 구글 갑질 방지법은 무산됐다. 다음 소위는 언제 열릴지도 모른다.

국내 IT 업계 관계자는 "야당은 구글 갑질 방지법에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면서 "성명을 통해 수수료 인하만 주장하는 것은 사실상 (야당의) 법제화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시간끌기 아닌가"라 비판했다.

어떻게 봐야하나
구글의 인앱결제 강제 방침은 국내 콘텐츠 업체들에게 악재다. 그러나 구글의 오래된 논란인 세금 탈루 의혹을 걷어낼 수 있는 계기도 될 수 있다. 지금까지 구글은 정당한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다는 비판에 시달린 바 있다. 이런 가운데 구글이 인앱결제를 통해 생태계 내부의 결제 인프라를 한곳으로 모은다면 이를 과세의 근거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야당이 지난 소위에서 주장한 것처럼 한미 통상 마찰이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가뜩이나 디지털세 논란 등이 조금씩 수면 위로 부상하는 가운데 국회 차원에서 구글 갑질 방지법을 통과시키는 것은 미국의 압박을 자초하는 길이 될 수 있다.

구글은 몇년 전 정밀지도 반출을 시도하며 미국 정부를 통해 한국 정부를 압박한 사례가 있고, 화웨이 견제에 나선 미국 정부는 최근에도 아무 꺼리낌없이 한국 정부와 업계에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지 말라 요청한 바 있다.

그러나 인앱결제 강제를 용인할 경우 그 부작용이 더 크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결제 기준으로 국내 앱스토어 시장 점유율 80%를 장악한 상태에서 구글의 생태계 내부에서 인앱결제만 강제된다면 당장 콘텐츠 업체들의 행보는 구글에 종속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 애리조나 주 하원이 3일(현지시간) ‘HB2005’ 법 수정안을 통과시켜 인앱결제 시도에 철퇴를 내린 이유다.

무엇보다 인앱결제 강제를 무력화시킬 경우 수수료 인하는 자연스럽게 얻어낼 수 있다. 구글이 모바일 생태계에 공헌하는 비중을 적정수준으로 인정하는 상태에서 야당의 주장처럼 수수료 인하가 아닌 인앱결제 강제 무력화를 통해 공정경쟁을 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