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특허 전쟁이 LG에너지솔루션의 완승으로 끝났으나 그 여파는 쉽게 잡히지 않는 분위기다. 특히 SK이노베이션이 미 조지아에 건설하고 있는 공장을 두고 현지 주지사가 노골적으로 SK이노베이션의 편을 들어주는 한편 청정 에너지 사업에 관심이 많은 바이든 행정부도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ITC 판결문 일부. 출처=갈무리
ITC 판결문 일부. 출처=갈무리

LG의 승리
미국 ITC는 지난달 10일(현지시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SK이노베이션의 일부 리튬 이온 배터리 셀·모듈·팩 및 관련 부품과 소재 등에 대해 10년 동안 미국 내 생산 및 수입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LG에너지솔루션이 지난 2019년 4월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제소한 배터리 관련 영업 비밀 침해 건에 대한 최종 결정이다.

미 ITC는 이미 수입된 SK이노베이션에 '영업 비밀 침해 중지 10년 명령'을 통해 이미 수입된 침해 품목에 대해서도 미국 내 생산·유통·판매를 금지하기로 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특허 전쟁이 사실상 LG에너지솔루션의 낙승으로 굳어가는 순간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번 판결은 SK이노베이션의 기술 탈취 행위가 명백히 입증된 결과이자, LG에너지솔루션이 제기한 소송이 사업 및 주주 가치 보호를 위해 당연히 취해야 할 법적 조치로써 30여 년 간 수십조 원의 투자로 쌓아 온 지식 재산권을 법적으로 정당하게 보호 받게 되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면서 "이번 판결로 배터리 산업에 있어 특허 뿐만 아니라 영업 비밀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 인식됐으며, 향후 글로벌 경쟁사들로부터 있을 수 있는 인력 및 기술 탈취 행태에 제동을 걸어 국내 배터리 업체의 기술력이 보호받고 인정 받는 한편, 궁극적으로는 대한민국 전체 배터리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 말했다.

다만 SK이노베이션은 당장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의 문을 닫는 것은 면하게 됐다. 미 ITC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현지 완성차 업체인 포드의 전기 트럭 F-150에 탑재될 배터리를 앞으로 4년 동안, 폭스바겐 미국 법인과 계약한 배터리 물량 등은 2년간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미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기아 전기 자동차용 배터리 교체·수리 등을 위한 SK이노베이션 제품 수입도 허용된다.

미국의 국익에 따른 결정이라는 평가다. ITC는 배터리 특허 분쟁에서 LG에너지솔루션의 손을 들어줬으나 자국의 친환경 에너지 인프라를 위해 SK이노베이션에게 최소한의 공급 물량을 배정하는 쪽으로 '영점조정'을 했다.

SK이노베이션 미 조지아주 공장. 출처=SK
SK이노베이션 미 조지아주 공장. 출처=SK

변수
ITC의 판단에 따라 SK이노베이션의 미국 배터리 전략에 차질이 발생한 가운데, 최근 현지 분위기가 심상치않게 전개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SK이노베이션이 미 백악관에 배터리 분쟁의 개입을 요청한 점이 눈길을 끈다. 실제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일(현지시간) SK이노베이션 관계자들은 백악관에 접촉, 자사의 배터리 제품을 10년간 미국에 수출하지 못하게 만든 ITC의 판결을 뒤집어달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ITC가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의 특허를 침해했다 판단했으나, 바이든 대통령은 거부권을 통해 ITC의 판단을 60일 내 뒤집을 수 있다. 이에 SK이노베이션은 백악관에 "2025년까지 현지에서 3400개의 일자리를 추가로 만들 것"이라 제안하며 바이든 대통령의 ITC 판결 거부권을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미 조지아주도 SK이노베이션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ITC의 상위 기관인 USTR이 현재 SK이노베이션의 요청에 따라 최종판결 거부권 행사와 관련된 검토에 돌입한 가운데 조지아주가 SK이노베이션의 편에 섰기 때문이다. 당장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는 ITC 판결을 두고 "조지아의 배터리 공장 건설 프로젝트가 무산될 경우 2600개의 청정 에너지 일자리와 산업 제조업이 위험해질 것"이라 우려했다.

SK이노베이션이 건설하고 있는 미 조지아 배터리 공장이 ITC 판결로 사실상 공전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미 조지아주 주지사가 나서 바이든 대통령의 '재고'를 요청한 셈이다.

미국 조지아주의 첫 흑인 상원의원이자 현지 민주당 돌풍의 주역인 라파엘 워녹도 나섰다. 그는 3일(현지시간) 미국 교통부 차관 후보 청문회에서 "ITC의 결정은 조지아의 일자리에 대한 위협"이라면서 "바이든 행정부의 전기차 로드맵에 타격을 줬다"고 강조했다. 폴리 트로텐버그 교통부 차관 후보도 "동의한다"면서 "관련 사항을 면밀히 분석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출처=이코노믹리뷰DB
출처=이코노믹리뷰DB

업계에서는 사태의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현재 미국은 친환경, 청정 에너지 인프라 구축을 전면에 걸었으나 실상은 '아슬아슬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무엇보다 전기차 배터리의 경우 자동차 반도체와 함께 심각한 품귀 현상의 전조를 보이고 있으며, SK이노베이션의 미 조지아 공장이 셧다운될 경우 바이든 행정부의 전기차 로드맵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공포가 가득하다.

SK이노베이션은 미 조지아에서 9.8GWh 규모의 1공장을 완공해 이르면 올해 말부터 가동할 예정이며 오는 2023년 초 11.7GWh 규모의 2공장도 가동을 시작해 연 43만대 규모의 배터리를 생산할 계획을 공개한 바 있다. 그러나 ITC의 판단으로 이 로드맵이 무너질 경우 미국의 배터리 전략은 시작부터 삐걱댈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이 ITC 판결을 두고 "SK배터리와 미국 조지아 공장이 미국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중인 친환경 자동차 산업에 필수적이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 수 천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 등 공공이익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적으로 전하겠다"고 언급한 가운데, 이 주장이 미국의 고민을 더욱 깊게 만드는 셈이다.

일단 업계에서는 ITC의 특허침해 판단에 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사례가 없다는 점에서 ITC의 판단이 번복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그러나 최근 바이든 미 대통령이 희토류와 반도체는 물론 배터리 글로벌 공급망을 새롭게 구축하며 중국을 배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등 판 자체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점은 심상치않다. 미국의 특수한 사정에 따라 SK이노베이션의 기사회생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