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아이오닉 5(위)와 테슬라 모델 Y. 사진= 각 사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5(위)와 테슬라 모델 Y. 사진= 각 사

[이코노믹리뷰=최동훈 기자] 전세계 전기차 시장의 주요 업체인 현대자동차와 테슬라가 최근 상반된 차량 라인업 전략을 보이고 있다. 현대차가 차세대 전기차 모델 아이오닉 5의 주행거리를 적용 가능한 범위 상한선보다 낮춘 반면, 테슬라는 보급형으로서 낮은 주행거리를 인증받은 모델 Y 일부 트림을 소극적으로 판매하는 등 묘한 전략의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각사별 전기차 상품 전략의 방향성 차이로 인해 엇갈린 행보가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다.

26일 업계 등에 따르면 현대차가 아이오닉 5의 성능별 세부 모델 가운데 가장 먼저 소개한 롱 레인지(Long Range)에 시선이 집중된다.

아이오닉 5 롱 레인지는 1회 완전 충전 후 트림별로 410~430㎞까지 달릴 수 있는 것으로 국내 당국으로부터 인증받았다. 아이오닉 5 세부 모델 가운데 가장 먼 거리에 도달할 수 있는 차량임을 암시하는 이름(롱 레인지)에 비하면 짧은 수준이다. 현대차가 앞서 아이오닉 브랜드의 차량들은 1회 완충 후 500㎞ 넘게 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공개된 아이오닉 5 트림별 최고 시작가는 5750만원(롱레인지 프레스티지 트림)이다. 롱 레인지 외 향후 출시할 아이오닉 5 스탠다드 트림은 라인업 위치 상 롱레인지 트림보다 더 짧은 주행거리와 함께 저렴한 가격을 보여줄 전망이다. 아이오닉 5 스탠다드 트림의 주행거리 경우 328~344㎞로 추산된다. 스탠다드 트림에 장착되는 배터리의 용량(58.0㎾h)과 롱레인지 트림 배터리 용량의 비중을 주행거리에 단순 적용해 산출한 추정치다.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5와 테슬라 모델 Y의 특징 비교. 출처= 각 사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5와 테슬라 모델 Y의 특징 비교. 출처= 각 사

현대차 ‘GO LOW’ 테슬라 ‘GO HIGH’

반면 테슬라는 당초 모델 Y의 세부 트림에 300㎞ 중반에서 500㎞ 초반까지 넓은 범위에 걸친 주행거리를 적용한 뒤 긴 주행거리의 고급 모델 위주로만 판매하고 있다.

모델 Y는 현재 국내에서 퍼포먼스(448㎞), 롱레인지(511㎞) 등 두 트림으로 판매되고 있다. 또 모델 Y의 트림별 가격은 롱레인지 6999만원, 퍼포먼스 7999만원 등에 달한다. 동급 경쟁 모델로 분류되는 아이오닉 5보다 최소 1250만원 가량 비싸다.

테슬라가 당초 모델 Y 세부 트림으로 도입했던 스탠다드 트림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판매됐지만 본사의 라인업 전략에 따라 배제됐다. 모델 Y 스탠다드 트림은 주행거리 340㎞(내부 추정치), 가격 5999만원 등 사양을 갖췄다.

모델 Y가 판매 중단된 이유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려졌다. 머스크 CEO는 지난 23일(한국 시간) ‘모델 Y 스탠다드 트림을 왜 홈페이지에서 배제했냐’는 누리꾼 질문에 “모델 Y 스탠다드 트림의 주행거리는 테슬라 내부의 (차량) 우수성 기준을 여러 주행 조건에 있어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밝혔다. 모델 Y 스탠다드 트림의 짧은 주행거리(미국 기준 244마일)가 전세계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으로 판단한 모양새다.

현대자동차 차세대 전기차 브랜드 아이오닉의 제품별 렌더링 이미지. 왼쪽부터 아이오닉 6, 아이오닉 7, 아이오닉 5. 출처=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 차세대 전기차 브랜드 아이오닉의 제품별 렌더링 이미지. 왼쪽부터 아이오닉 6, 아이오닉 7, 아이오닉 5. 출처= 현대자동차

현대차, 아이오닉 확산 사활…테슬라, 프리미엄 입지에 목매

현대차와 테슬라 양사가 현재 서로 상반된 양상으로 전개하고 있는 전기차 상품 전략에는 현재 각사별로 직면한 사업적 과제가 담겨 있다.

현대차에겐 차세대 차량 전동화 전략의 기반인 아이오닉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전세계 시장에 안착시켜야 할 사명이 주어졌다. 현대차는 이에 따라 낮은 제품 진입장벽을 구축함으로써 수요를 활발히 창출하는 데 아이오닉 브랜드 전략의 초점을 맞췄다. 아이오닉 5보다 외관 규모 상 한급 아래인 코나 일렉트릭이 4000만원 후반대로 수백만원 저렴한 점이 차세대 전기차 브랜드인 아이오닉의 높은 고객 접근성을 방증하는 요소다.

아이오닉 5가 지난 1974년 현대차의 내연기관차 양산 시대를 연 포니의 정체성을 계승한 점에서도 전기차 보편화 시대를 주도하려는 현대차의 브랜드 방향성이 담겼다. 현대차는 아이오닉 브랜드 차량의 수요를 활발히 창출함으로써 국내외 시장 입지를 확장할 방침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대차 포니가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의 시작을 알리는 아이콘이었던 것처럼, 포니가 대변하는 현대차의 도전정신을 디자인에 담은 아이오닉 5도 첫 전용 전기차로서 새로운 전기차 시대를 선도해 나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비해 테슬라는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입지를 유지·강화하기 위해 모델 Y 스탠다드 트림을‘손절’하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테슬라는 지난 2003년 테슬라모터스로 설립된 후 고급·고부가 모델부터 출시하는 하향개발(top-down) 전략을 펼쳐왔다. 오픈 스포츠카(로드스터), 대형 세단(모델 S), 대형 SUV(모델 X) 등 순서로 차량을 선보여 프리미엄 브랜드의 이미지를 구축한 뒤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하위급 차량을 출시했다. 다만 내부적으로 품질이나 가격의 하한선을 두고 이를 넘는 사례를 과감히 배제했다. 테슬라는 모델 Y에 앞서 모델 3의 보급형 모델도 비슷한 방식으로 라인업에서 제거했다.

테슬라의 전기차 라인업. 출처= 테슬라 코리아
테슬라의 전기차 라인업. 출처= 테슬라 코리아

테슬라 ‘돈·명예’ 못 얻는 모델 과감히 배제

테슬라는 지난 2019년 2월 전세계에 출시했던 보급형 모델 3를 수개월만에 미국 공식 홈페이지에서 내리고 1년여 기간 동안 전화, 방문 등 방식으로 찾는 고객에게만 판매했다. 해당 트림은 주행거리 220마일(약 354㎞), 수동 시트, 천 소재 인테리어 등 제한된 옵션을 갖췄지만 3만5000달러(약 3932만원)로 현지에서 저렴한 가격에 판매됐다.

당시 양산 능력이 부족했던 테슬라는 밀려들어오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해당 모델을 많이 파는 것으로 유의미한 규모의 이윤을 창출하지 못했다. 테슬라는 결국 고객 인도 기간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 마진 적은 저가형 모델 3를 지난해 완전히 단종시켰다. 테슬라는 프리미엄 브랜드 전략을 이어온 상황에서 보급형 모델을 판매하는 것은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결정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이후 테슬라는 모델 Y 스탠다드 트림에 대해서도 모델 3 저가형 트림과 같은 수순을 밟고 있다. 현재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모델 Y 스탠다드 트림을 공급하지 않거나 소극적인 방식으로 판매하고 있다. 미국 소비자들의 경우 26일 현재 테슬라 영업 지점에 전화하거나 방문하는 등 방식으로 모델 Y 스탠다드 트림을 구매할 수 있다.

다만 테슬라가 모델 Y 스탠다드 트림을 배제하기로 한 데엔 과거 저가형 모델 3에 대한 결정과 비교할 때 프리미엄 전략을 더욱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중국에서 지난해 기준 연산 15만대 규모를 갖춘 기가팩토리를 운영하는 등 모델 Y 생산 능력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급형 트림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머스크 CEO의 당시 트위터 메시지 외엔 모델 Y의 라인업 전략에 관한 공식 입장을 일절 내놓지 않고 있다.

이호중 한국자동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현대차는 지금 당장 고도화한 스펙으로 타사와 경쟁하기 보단 (최대 다수의) 소비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상품성을 구현하는데 중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며 “테슬라의 경우 전기차 업계의 선두주자로서 입지를 유지하려는 취지를 모델 Y 상품전략에 반영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