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글로벌 반도체 슈퍼사이클(장기호황)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가격이 급등하는 한편 일부 품목의 경우 품귀 현상이 극에 달하고 있다. 다만 미국 반도체 생산 거점 확대 등 변수도 존재하기 때문에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귀하신 몸' D램, 하반기 기대주 낸드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24일 기준 PC용 D램(DDR4 8Gb)의 현물 가격(평균가)은 4.20달러를 기록해 전일 대비 1.21% 올랐다. 2019년 4월 이후 D램 현물가가 4달러를 처음 넘어섰다. DDR4 8Gb 현물가는 지난해 12월 불과 2.77달러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상승세다. 석 달새 무려 51.6%나 급상승했다.

비대면 트렌드가 코로나19를 거치며 완전한 일상이 됐으며 클라우드 인프라 확장, 스마트폰 보급 등으로 반도체 수요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메모리 반도체의 또 다른 기둥인 낸드플래시 분위기도 심상치않다. 판 자체가 흔들리며 시장 분위기도 들썩이고 있기 때문이다.

격변의 신호탄은 키옥시아와 웨스턴디지털이다. 24일 6세대 162단 3D 플래시 메모리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히며 업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신제품은 기존 8스태거(eight-stagger) 구조의 메모리 홀 어레이를 능가하는 고도화된 아키텍처와 5세대 대비 10% 증가한 측면 셀 어레이 밀도를 특징으로 하며 162단 수직 적층 메모리와 결합해 112단 적층 기술 대비 40% 감소된 다이(die) 크기와 이를 통한 비용 최적화를 지원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6세대 3D 플래시 메모리에 ‘서킷 언더 어레이(Circuit Under Array)’ CMOS 배치와 ‘4플레인(four-plane)’ 방식을 함께 적용했으며 무엇보다 162단의 벽을 뚫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다만 마이크론과 SK하이닉스도 더블스택 기반의 176단 낸드플래시를 공개한 가운데 시장 1위 삼성전자는 여전히 128단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100단 이상을 싱글스택으로 쌓을 수 있는 유일한 기술력을 가졌고 7세대 V낸드플래시를 조만간 공개할 예정이라 시장의 기대감이 큰 편이다.

그 연장선에서 가격 상승세가 점쳐진다. 기술 고도화 전략이 불을 뿜고 있는 가운데 각 제조사들의 공급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출처=테슬라
출처=테슬라

차량용 반도체는 '심각'
일부 반도체의 경우 품귀 현상이 상당히 심각한 수준에 이른 분위기도 눈길을 끈다. 대표적인 사례가 차량용 반도체다.

차량용 반도체 시장이 성장하면서 수요는 커지고 있으나 공급이 한정적이라는 점이 문제다. 코로나19 당시 자동차 판매량이 낮아지며 차량용 반도체 공급량이 줄었으나 백신이 출현함에 따라 소비심리가 살아나며 자동차 판매량이 상승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맞춤형 차량용 반도체가 필요한 완성차 업체들이 눈물을 머금고 셧다운에 들어가는 상황이다. 심지어 각 국 정부도 각 차량용 반도체 제작사들에게 SOS를 보내는 실정이다.

실제로 미국 자동차업체 제네럴모터스(GM)가 차주 한국 부평 공장을 비롯해 글로벌 4개 공장의 가동을 중단하거나 물량 감산에 들어갔다. GM은 미국과 캐나다 및 멕시코 공장의 가동을 중단하는 한편 한국의 부평 공장 가동률은 절반으로 낮출 계획이다.

TSMC와 미국의 퀄컴 고위 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미국 정부는 대만 정부에 차량용 반도체 공급량을 늘려달라 요청하기도 했다. 페터 알트마이어 독일 경제장관이 직접 왕 메이화 대만 경제부장관에 서한을 보내 차량용 반도체 공급을 늘려달라 요청했고, 대만은 이를 승인하는 대신 언제든 독일 바이오업체들이 생산하는 코로나19 백신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해달라 요청하는 역제안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테슬라도 차량용 반도체가 없어 공장 셧다운에 들어갔다. 블룸버그는 25일(현지시간) 테슬라가 캘리포니아주 공장에서 보급형 세단인 ‘모델3’ 생산을 2주 동안 일시 중단했다고 보도했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 때문이다.

현대차도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3월 감산이 불가피하다는 말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차량 가격 인상 가능성까지 점쳐진다.

출처=갈무리
출처=갈무리

자연재해, 그리고 파운드리
반도체 가격 상승 및 일부 반도체 품귀 현상이 벌어지는 가운데 최근의 자연재해도 시장에서 의외의 성장 동력이 되어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당장 지난해 12월 10일 대만 북동부 부근 해역에서 진도 9.7의 지진이 발생해 대만 TSMC의 북부 신주 과학단지 내 공장 일부 직원이 대피하는 사고가 발생했으며 이 과정에서 공급량이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영국 다이얼로그 인수를 타진하고 있는 일본의 르네사스도 마찬가지다. 지난 13일 일본 후쿠시마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르네사스의 12인치 웨이퍼 조립라인 가동이 중단되며 물량 공급이 차질이 벌어져 궁극적으로 공급량이 하락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지난 17일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 불어닥친 역대급 한파로 공장 가동이 중단됐다. 전기가 차단되며 공장 자체가 셧다운됐다. 이 과정에서 시장에 풀리는 반도체 물량이 상당부분 감소, 결과적으로 가격 상승에 따른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물론 사태가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면 제조사들에게도 좋을 것이 없다. 그러나 TSMC부터 르네사스, 삼성전자 등 주요 반도체 제조 기업들은 이번 자연재해를 두고 "충분히 콘트롤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입장이며 현 상황에서 필요이상의 장기화 가능성은 엿보이지 않는다.

삼성 오스틴 공장. 출처=삼성
삼성 오스틴 공장. 출처=삼성

한편 파운드리 시장은 호황 그 자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글로벌 10대 파운드리 업체의 매출은 전년 대비 20% 증가해 실적 호조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됐다. TSMC가 25%, 삼성전자가 11% 증가세가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여세를 몰아 TSMC 맹추격에 나설 전망이다. 우선 오스틴 공장 증설에 나선다. 당장 오스틴 아메리칸 스테이츠맨은 4일(현지시간) 주정부 문서를 인용, 삼성전자가 오스틴에 공장 증설을 검토하며 주정부를 대상으로 세금 감면을 요청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나아가 퀄컴의 5G 모뎀 - RF 솔루션인 스냅드래곤 X65 5G 모뎀-RF 시스템, X63의 위탁생산 계약을 따내며 4나노 틈새시장 공략에 나서는 한편 국내 평택 라인의 조기 가동에 돌입해 시장 수요에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유독 인텔과의 밀월이 강해지고 있는 TSMC의 행보를 의식해 인텔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는 엔비디아 및 퀄컴 등과 협력을 강화하는 전략도 눈길을 끈다.

변수는 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슈퍼사이클에 들어갈 것이라는 증거는 많다. 그러나 변수도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원자재 동맹을 강화하며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 생태계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반도체 및 전기차 배터리, 희토류 등 핵심 소재와 부품 공급망을 새롭게 짜는 국가전략 수립 명령을 완성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중국을 원자재 공급망에서 배제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반도체의 경우 미국의 뜻대로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한다면 이미 많은 거래를 하고있는 한국 입장에서는 잃을 것이 많아진다. 무엇보다 미국과 중국의 파워게임에서 한국은 상대적으로 미국의 손을 잡은 일본 및 대만과 달리 운신의 폭도 좁다. 추후 반도체 슈퍼사이클과 함께 반드시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